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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BFirefly Sep 21. 2020

별 이야기

선우정희(鮮于精希)씨를 강유(姜幼) 형님과 내가 다시 만난 것은 며칠 전 9월 20일 일요일 저녁이었다. 우리는 홈플러스 6층에 있는 무인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 분은 보통 아메리카노를, 나는 연한 아메리카노를 먹었다. 둘 다 1500원이다. 어느 순간 선우정희씨가 그 전 주 토요일에 처음으로 평창 안반데기에 가서 별을 보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유 형이 묻는다.

   “어땠나요?”

   “좋았어요. 하지만 제가 별을 그렇게 많이 볼 준비가 안 되어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아, 무슨 말씀인지 알 거 같아요!” 내가 말했다. 이어 정희씨가 말한다.

   “영화를 볼 줄 모르는 사람이 좋은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 . . . 좋지만 많이 이해하고 느끼지 못하는 거 . . . 내가 이 경험을 장악하지 못한다는 느낌 . . .”

   “아, 그렇군요! 별을 보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군요 . . . 우리 모두 윤동주 시인처럼 별을 자주 보아요.” 유 형이 말했다.

   “하하! 역시 오빠답게 윤동주!” 정희씨가 웃으며 말했다. 이어서 이렇게 말한다.

   “거기서 별똥별이 떨어지는 것도 몇 번 봤어요. 같이 간 동무들은 이때 소원을 빈다고 했습니다. 저는 떠오르는 소원은 없고 대신 제갈공명 생각을 했어요.”

   “제갈공명이 천문을 보면서 별이 떨어지면 누가 죽었다 그런 얘기를 하니까!” 유 형이 말했다.

   “그렇지요. 그런데 저는 이런 의문이 들었어요. 과연 제갈공명이 점성술을 믿었을까? 제갈공명은 병법을 비롯해서 정치, 경제, 지리, 심리, 기상, 기술, 과학 등등 여러 분야를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아주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이었다고 봐야해요. 그런데 점성술을 믿었을까?”

   “음 . . . 안 믿었을 수도 있겠네요.”

   “안 믿으면서도 별이 떨어졌으니 누가 죽었다 이런 말을 했다고 생각하면 더 재미있어집니다.” 내가 말했다.

   “그렇다면 자기 말을 직간접으로 듣는 사람들이 점성술을 믿으니까 일부러 그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언어로 말을 한 것이다 . . .?” 유 형이 말했다. “일부 목사들이 자기는 성경을 문자 그대로 안 믿지만 교인들 수준에 맞춰서 축자적으로 풀이하듯이?” 이어 정희씨가 말한다.

   “예. 당연히 그렇게 봐야겠지요. 그리고 그에 더해 심미적인 차원이 있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점성술로 자기 주장을 뒷받침하는 걸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 . .?”

   “예. 하지만 그건 ‘점성술을 안 믿었지만 믿는 것처럼 말했다’라는 우리의 가정만 갖고서는 추론할 수 없는 부분이지요.”

   “이럴 때 우리는 오히려 마음 놓고 우리 멋대로 해석하면 되지요.” 유 형이 말했다. “제갈공명이 순전히 기능적인 이유로만 별 이야기를 했다기보다는 별을 논거로 삼는 걸 아름답다고도 생각했다고 나는 믿고 싶어요.”

   “저도 그래요.” 정희씨가 말했다.

   “저도 그렇습니다.” 나도 말했다.

   “그런데 때로 어떤 아름다운 것이 가짜라는 것을 알면 그것이 더 아름답게 느껴질 때가 있잖아요.”

   “예를 들어서 . . .?” 내가 물었다.

   “오, 나는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하는 그대와 그대의 물음을 사랑하노라!” 유 형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 같은 말투로 이렇게 웃으면서 말한다. 그리고 내 물음에 답한다. “얼마 전에 <정여울의 문학 멘토링>이라는 책을 읽다가 이런 구절을 마주쳤어요. 


영웅의 본질은 그가 얼마나 유명한가, 그가 얼마나 성공했는가가 아니라, 그가 얼마나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적 사명에 충실했는가, 그가 얼마나 타인의 고통에 깊숙이 관여하여 다른 존재를 구원해 내는가에 있다.


정말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이 허구라고 생각하니 더 아름답게 느껴졌어요..”

   “참말도 아닌 것이 이렇게 아름다우니 기특해서 . . .?” 정희씨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런 거 같아요.” 유 형이 말했다.

   “그런데 오빠가 이 말에 감동을 받았다는 건 이 말이 진실이길 바라는 마음이 있어서가 아닐까요?”

   “그럴까요?” 

   “오빠는 영웅이 되고 싶어하시잖아요?” 선우정희씨는 이렇게 말했다. 유 형은 이 말에 좀 놀라는 표정이었다. 몇 초 동안 가만히 있다가 조용히 말한다.

   “그런가요?”

   “오빠는 별이 되고 싶어합니다.” 정희씨는 이어서 짐짓 차갑고 느린 어조로 이렇게 말한다. “감히 이 말을 부정하시겠습니까?” 우리 강유 형님은 지체없이 말한다.

   “아니요. 정희 말이 맞아요.” 그리고는 아무도 말이 없다. 십 초 정도 침묵이 흐른 다음 정희씨가 말한다.

   “안반데기에서 오빠의 고향 목성도 봤어요. 그래서 오빠 생각도 났어요.” 유 형은 여전히 아무 말이 없다. 표정도 없다. 정희씨는 이어서 묻는다.
    “오빠는 왜 지구에 오신 건가요?” 유 형은 곧바로 말한다.

   “위에서 가라고 해서.”

   “역시 목성은 뒤쳐진 동네예요.”

   “하지만 지금은 지구에 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선우정희씨가 왜 그리 생각하느냐고 물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그는 아무 말도 없다. 수 초 있다가 내가 궁금증을 못이겨 묻는다. “왜서 그렇게 생각하세요?”

   “정희는 왜 지구에 왔나요? 자원해서 온 거잖아요.” 유 형이 남의 질문을 이렇게 대놓고 무시하는 일은 처음이어서 나는 매우 놀랐다. 하지만 정희씨는 그냥 형의 물음에만 차분하게 답한다.

   “저는 모험을 하고 싶었어요.”

   “내가 지구에 와서 좋다고 생각하는 건 어떤 별 같은 사람을 만나서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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