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세 사람이 대화하는 자리로 돌아와서 이야기를 이어가 본다. 우리는 추억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더 했다. 우리 대화의 마지막 부분은 다음과 같았다. 유 형이 이렇게 말했다.
“내가 대학 1학년 2학기 때 교양 일본어 수업을 들었었어요. 당시 강사 선생님이 한 오십 세 정도 된 여자 분이었는데, 학기 중에 몇 번 우리한테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너무 공부만 하지 마세요. 그러면 나중에 추억이 없어요.’ 난 당시에는 이 말씀을 이해를 못했지만 지금은 조금은 알 거 같아요. 추억이 우리 마음을 부요롭게 하니까 . . . 과거로 돌아가서 추억을 더 발굴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기억의 추억화라고 할까?”
“오빠 말씀은 . . . 진부합니다. 똑똑한 초등학교 6학년도 할 수 있는 얘깁니다.” 정희씨는 직설적으로 말했다. 나는 유 형이 기분이 나쁘지 않을까 염려되었다. 그러나 그런 것 같지 않았다. 형은 빙긋이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맞아요. 그게 내 한계에요.”
“한계령 가보셨어요?”
“아주 옛날에 한 번 . . .”
“올가을에 한번 가보세요. 단풍이 정말 좋대요. 그냥 불탄다고 그래요. 한계령을 넘으면 오빠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지 않을까요?”
“맞아요.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오빠는 고작 목성 사람이니까.”
유 형은 웃음을 머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희씨가 이렇게 말한다.
“추억은 긍정적으로 해석된 과거이고, 그러니까 현재의 내 가치관을 반영하고, 내가 미래에 대해 무엇을 희망하는가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지요.”
“맞아요. 그렇게 말하니까 떠오르는 윤동주 시가 있어요. “사랑스런 추억”이라는 신데 . . .”
“오! 역시 오빠답게 윤동주!”
“추억 속의 자기를 ‘희망과 사랑처럼 그리워한다’라는 구절이 있어요. 추억과 희망을 명시적으로 연결시키는 것이지요.”
“그런데 오빠는 지난 몇 년을 되돌아봤을 때 정말 좋은 추억이 있으세요?” 정희씨가 묻는다. 유 형은 잠깐 생각하고 이렇게 말한다.
“그렇지요. 강민경을 좋아한 거.”
“좋아해서 뭘 하셨나요?”
“그 양반 노래를 듣고 또 듣고, 또 이 사람을 위해서 시도 쓰고 시 아닌 글도 쓰고 어떤 글은 보내기도 하고 그랬지요.”
“그게 왜 좋은 추억인가요?”
“내가 정말 살아있다는 느낌 . . .”
“정말 진부합니다.” 정희씨는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유 형은 아까와는 달리 좀 슬픈 표정을 지었다. 몇 초 동안 침묵이 흘렀다. 정희씨가 말한다.
“저는 추억이 과거를 좋게 해석하는 것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싶어요. 왜냐하면 자기 만족에 빠질 위험이 있으니까요. 추억에 포함되는 과거 미화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더 중요하고 위대한 일을 하지 못했음을 깨닫지 못하게 합니다. 또는 더 나은 일을 못한 것을 이미 안다고 해도 내가 그 대신 한 일을 정당화하게 합니다. 더 나은 일을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경감시키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오빠는 강민경의 노래를 듣고 그를 위해 글을 쓰고 한 것이 좋은 추억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그 경험을 미화함으로써 오빠는 자신이 무의미한 일을 했다는 사실, 이 추억이 오빠의 미래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외면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내가 강민경을 연모한 것이 쓸데없는 일이었다는 말인가요?”
“그렇지요. 오빠는 감히 이를 부정할 수 있나요?” 유 형은 곧바로 대답했다.
“아니요. 정희 말이 맞아요.” 정희씨는 곧바로 이렇게 말한다.
“추억이 많은 게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봅니다. 오히려 이미 추억인 기억으로부터 추억의 지위를 많이 박탈해야 할 것입니다. 추억의 탈추억화, 추억의 기억화. 이것이 우리의 오늘과 미래에 더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봐요. 우리는 오직 중요하고 위대한 일만을 추억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유 형이 이렇게 물었다.
“정희가 말하는 중요하고 위대한 일이란 어떤 건가요?”
“하하하! 오빠가 그렇게 물을 줄 알았습니다. 진부한 질문입니다. 저는 이만 가볼게요.” 선우정희씨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서 형과 나에게 인사를 하고 출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