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BFirefly Nov 15. 2020

남의 오류를 안 고쳐주는 이유

여러 해 전에 어떤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읽었다. 어떤 사람이 여관을 운영하는데 나름 최선을 다하지만 손님이 없어서 죽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어떤 지혜로운 분을 찾아가서 조언을 구했다. 그 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관 이름을 'Seven Bells'라고 바꾸고 처마 밑에 종 6개를 달아놓으시오." 

    "아니, 'Seven Bells'면 종을 7개 달아야지 왜 6개입니까?"

    "이유는 묻지 말고 그냥 그렇게 하시오."


그런데 이 양반이 시키는 대로 했더니 과연 장사가 잘 되었다. 왜 그랬을까? 이유는 이러하다. 이 여관 앞을 지나가던 사람들 가운데 여관 이름은 'Seven Bells'인데 종은 6개만 달려있으니 주인이 실수한 거라 생각해 이를 고쳐주려고 여관에 들어왔다가 안을 둘러보니 깨끗하고 분위기 좋고 설비도 잘 되어있고 한 걸 보고 여기에서 묵어보기로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리고 내가 읽은 이야기 자체에는 없는 내용이지만, 꼭 여기서 그날 묵지는 않아도 이 여관이 좋은 곳이란 걸 알고 다른 사람들한테 얘기도 하고 다음에 묵을 데가 필요할 때 이 여관에 오기도 했을 것이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사람에게는 남의 잘못을 고쳐주려는 강력한 욕구가 있다는 것이다. 여관 주인을 도왔던 현자는 이런 인간본성을 이해했고 이를 현실의 구체적인 문제해결에 적용했던 것이다.


남의 잘못을 고쳐주고 싶은 욕구는 인정욕구의 한 예인 것 같다. 흔히 인간의 2대 욕구가 식욕과 성욕이라고 하는데, 만일 3대 욕구를 말한다면 이 두 가지에 인정욕구가 더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사람들은 때로 인정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식욕이나 성욕을 충족하기를 포기하기도 한다. 공자의 말씀을 적은 <논어> 첫머리에 세 가지 설의적 물음이 나오는데 그 중 하나가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않으면 군자라 하지 않겠는가?"이다. 여러가지 욕구 가운데 하필이면 인정욕구를 언급한 것은 공자도 이 욕구가 끝까지 떨쳐버릴 수 없는 욕구임을 알고 있어서가 아니었을까? (다른 곳에서 공자는 "덕보다 색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으니" 안타깝다는 말을 한다고 한다. 색을 좋아하는 건 성욕충족을 추구하는 것이다. 어쩌면 공자도 성욕과 인정욕구가 같은 정도로 강력하다고 인식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남의 오류를 고쳐주고 싶은 욕구가 강하지만 우리는 늘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왜 그럴까? 이런저런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남들한테 잘난 척 하는 재수없는 인간으로 보일지도 모른다는 염려가 아닐까? 또 하나 가능한 이유는 '지적질은 필요한 일이지만 나 같이 수준 높은 사람에겐 어울리진 않지'라는 생각일 수도 있다. 또 다른 이유로서 지적해봤자 고쳐지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론이 가능하다. 또 지적해서 고쳐주는 일이 뭔가 정말로 창조적인 일이 아니라는 판단이 한 이유가 될 수도 있다. 물론 그냥 귀찮아서 안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이유들 말고 좀 음흉한 이유도 가능하다. 곧 오류를 범한 사람이 계속 이 사실을 모르게 함으로써 그에 대해 심리적 우월감을 느끼고 싶다는 동기이다. 어떤 오류를 보았을 때 우리는 단지 이것이 잘못되었다는 지적인 판단에 더하여 이를 범한 사람을 무시하는 심리적, 사회적 판단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오류를 지적함으로써 우리는 그 순간 우월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이 우월감은 지속되기 힘들다. 그런데 오류가 고쳐지지 않으면 '내가 저 사람보다 낫지'하는 은밀한 우월감을 계속 누릴 수 있다. 이런 어두운 우월감이 우리 사는 세상에서 사소한 것이라고 쉽게 말할 수 있을까?

작가의 이전글 허태수 목사는 내 글을 도용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