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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키포키 May 03. 2023

엄마

엄마랑 연락하지 않은 지 몇 주 되었다. 매일 아침에 모닝페이지 쓸 때마다 엄마 이야기를 한 바닥 넘게 썼다. 엄마에 대해 말하고 끝까지 다 쓰지 못한 글은 아이패드에, 컴퓨터에, 핸드폰 메모장에 몇 억 만자는 넘을 것 같다. 내 머릿속에는 나보다 엄마가 많다. 엄마 머릿속에는 엄마보다 외할머니가 많았다. 외할머니 머릿속에는 무엇이 있는지 할머니에게 직접 듣지 못했다. 엄마는 외할머니 머릿속에 외삼촌과 죽은 큰 이모가 많았다고 그랬다.  


친구 만나서 엄마에 관해 몇 마디 하다가 울음이 나왔다. 내 모습이 부끄러워서 무슨 말하는 지도 잊어버리고 주절댔다. 그러다 친구네 작업실에서 도망치듯이 나왔다. 작업실 가려고 근처 마트에 차 대어 놨었다. 주차비를 내야 해서 마트 식료품코너에서 이것저것 샀다. 팽이버섯, 베트남쌀국수, 우유 두 팩, 마트 특가 치킨을 샀다. 지갑을 깜빡하고 안 가져왔는데 애플페이가 된다. 키오스크에 서서 엉뚱한 곳에 핸드폰을 대고 이게 왜 안되나 한참 멈춰 서 있었다. 직원이 알려줘서 계산하고 나왔다. 2만 원어치 사서 주차비는 무료가 되었다.    


방금 전까지 울다가 커다란 치킨통을 품에 안고 주차장으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그러면서 친구들에게 카톡으로 방금 내가 그랬다고 애꿎은 소리 해댔다. 차에 앉아서 짐 내려놓고 보니 치킨통 바깥에 묻어있던 벌건 양념이 윗옷에 잔뜩 묻어 있었다. 시동 걸고 집으로 갔다. 주차장에서 뱅글뱅글 돌아내려갈 때 한 번도 브레이크를 밟지 않았다. 집까지는 대로에서 우회전 한번 하고 계속 직진이었다. 지금 액셀을 밟는지 브레이크를 밟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기계처럼 운전했다. 계속 울었다. 브루노마스 노래를 들었다. 브루노마스가 카디비랑 부른 노래가 나왔는데 원래는 19금 노래인데 19금 딱지를 뗀 버전이었고 온갖 비속어들이 다 삭제되었다. 카디비는 거의 음.음.어.어.만 했다. 웃었다. 차 안에서 양념치킨 냄새가 났다.         


미친 것 같다.


엄마는 나를 때렸다.

아빠가 죽고 나서 어느 날 낮에 나를 때리려는 엄마를 두 손으로 떠밀어 버렸고 엄마는 뒤로 넘어졌다. 그 후로 엄마는 나를 때리지 않았다. 그 후에는 욕만 했다.

씨발년. 개 같은 년. 더러운 년. 아가리를 찢어버린다. 대갈통을 부숴버린다.

그래서 나도 어느 날 엄마에게 욕했다.

씨발년아. 너 때문에 아빠가 죽은 거야.

우리 집 고양이가 엄마랑 내 앞에서 오줌을 쌌다.  

엄마는 그날 이후로 나를 욕하지 않았다.

더 이상 나를 손으로도 말로도 때리지 않았다.  

엄마는 내가 아빠가 자기 때문에 죽었다고 말했다며 내 앞에서 울었다. 엄마는 아빠가 죽었던 날에 니가 아빠를 버리고 우리를 떠났기 때문에 이렇게 된 거라고 말했던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엄마는 그날 나를 더럽다고 말한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엄마는 괴로운 것들은 모두 잊어버린 것처럼 행동한다.  

그리고 나에게 이제 그만 잊어버리라 그런다.

남편도 이제 그만하라고 그런다.

나도 이제 나에게 그만하라 그런다.


내가 졸업전시를 한다고 엄마 아빠가 나를 보러 홍대까지 온 날. 엄마가 나를 위해 사 온 고양이 인형을 홍대 한복판 길거리에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집어던졌다. 내 방에 들어와 책장에 꽂힌 “나는 엄마가 좋아”라는 동화책 제목을 엄마가 입으로 읽어서 나는 그 책을 방바닥으로 집어던졌다. 엄마는 아홉 살인 나를 방에서 집어던졌다.


이 세상 모든 엄마가 같다고 말해버리면 슬픈 기분이 든다.  

이 세상 모든 사랑이 아름답고 유순하다고 말해버리면 괴로운 기분이 든다.

내게 사랑을 포기하라 하면 견딜 수 없는 기분이 든다.


나는 사랑에 대해서라면 아주 작은 것이라도 잘 찾아내어 크게 받아들이는 재능을 가졌다. 나는 남편을 사랑한다. 나는 친구를 사랑한다. 나는 더 이상 연락하지 않는 예전의 사람들을 사랑한다. 나는 공원에서 노는 아이들의 동그란 머리통 중앙의 가마를 사랑한다. 나는 길가에 떨어진 얇은 잎이 다닥다닥 모인 작은 잎사귀를 사랑한다.


나는 나를 죽일 수도 있었던, 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한다.


어느 것에서도 비참과 최악을 느끼지 않는 이유는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제 더 이상 사랑할 기회를 잃어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이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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