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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키포키 May 02. 2023

그녀와 그남과 양성구유에 관한 아직은 어려운 이야기

단편소설 수업을 들을 때 화자를 10살의 남자아이로 설정해서 글을 썼다. 그 소설은 어린 시절 겪은 일들의 그림자를 아주 조심스럽게 투영한 소설이었다. 도저히 화자를 여자 아이로 쓸 수 없었다. 여자아이가 이야기를 해버리면 내게서 이야기가 너무 가까워졌다. 거리를 두고 바라보지도 못할 만큼 여전히 고통스러운 채로 옛 이야기의 아주 먼 윤곽을 썼다. 몇 주간 고심했고 과제를 제출하기 전 날에 하룻밤만에 80매 분량을 써서 퇴고하지도 못하고 제출했다.


합평을 받을 때에 분에 넘치는 좋은 평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그 후 소설을 쓸 수 없었다. 내게 다시 마감이 주어지고 긴 시간과 하룻밤을 버틸 척추 힘이 생긴다면 소설을 쓸 수 있을까. 지금은 이야기에 관한 생각을 아주 많이 하고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쓴 소설을 읽고 있다.  


단 한 사람에게 혹평을 받았는데 그것은 내가 이야기에서 말하고자 한 바와 별 연관성 없이 느껴졌다. 하지만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이 나이의 남자아이는 이런 식으로 절대 생각할 수 없어요. 그래서 이 소설은 말이 안 돼요.”


근교위성도시에서 서울로 소설수업을 들으러 오는 중년 여성이었다. 온몸에 기름기라고는 없는 사람이었다. 깡마른 몸에 맨얼굴은 윤기 없이 푸석했고 짧은 쇼트커트에 어떤 헤어제품도 바르지 않아서 정수리는 착 가라앉아 사방으로 끝이 거칠게 뻗쳐있었다. 늘 심각하고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그가 레즈비언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그는 아들을 셋 키운다고 자기를 소개했다.  


그가 내 소설을 혹평한 다음 순서로 그 수업에 몇 안 되는 남성 세 명이 발언했다. 그들은 “나의 어릴 때를 생각나게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며 자랐다.”라고 말해주었다. 그들은 내가 결코 말도 안 되는 것을 쓰지 않았다고 위로해 주었다. 나는 그 소설을 쓸 때에 남자아이로서, 여자아이로서의 자아를 의식하지 못했고 그저 ‘아이’ 입장의 글을 쓰고 싶었다. 어쩌면 나 같은 남자아이도 어딘가 있으리라. 아니 그저 나 같은 유년의 사람이 있으리라.


남편은 청결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타인에 대해 조심스러운 예의를 가진 사람이다. 성적인 취향에 있어서 로맨틱하고,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원한다. 나는 청결에 있어 둔감하다. 상대를 편안히 해줄 수 있는 배려를 갖추지 못하고 내 위주의 행동을 한다. 가학적이고 피학적인 성적 욕망을 주로 느낀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남성 성별 중에 유독 특이한 걸까?

내가 남편에게 편안하게 느끼는 부분을 남편에게 항상 이야기해서 그것들을 배신하지 않기 위해 남편이 부단한 노력을 하는 걸까?


남편을 만나기 전 나는 남성 성별에 대한 혐오감을 자주 느꼈다. 그들은 나를 가지고 싶어 하거나 망가뜨리고 싶어 하며 내 곁을 지나쳤다. 내 의지나 느낌은 애초에 이 세상에 없는 것처럼 자신의 감정을 우선시해서 나를 대했다. 나와 사귀고 싶어 하거나, 너는 이런 부분이 못생겼다고 대뜸 말해버리거나, 너는 살을 조금만 더 뺀다면 남자들에게 잘 보여서 직장생활을 편하게 할 수 있겠다 같은 말을 면전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식이었다.


그런 사람들을 나는 여전히 아직까지도 혐오한다.


하지만 나의 남편은 남자다. 나는 남편을 사랑한다. 내가 남편을 사랑하는 것은 어떤 여자들에게는 가부장제의 노예, 남자에 미쳐서 자기 인생을 길바닥에 내다 버리는 삶, 여성 해방 최대의 적 같은 것으로 분류된다.


세상에 그런 여자도 있고, 그런 남자가 있다. 또는 양성구유가 있다.  

자기 인생을 내다 버리고 싶을 만큼 사랑에 미친 인생도 있다.


글을 쓸 때 “그녀”라는 표현을 쓰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인터넷에서 “그남”이라는 비아냥을 보고 피식 웃었다. 그러고 나자 그남만큼은 아니지만 그녀 역시 내게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표현이 되어버렸다. ‘그’보다 ‘그녀’는 어떤 인위성을 가진 사회적인 형태를 작정하여 느껴진다. 분명 반드시 그녀라고 표현해야 하는 말의 순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글에서 그녀이고 싶은 순간은 대체로 없었다. 내가 그녀로 존재하고 대접받은 순간 나 같다고 스스로 여긴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나는 글을 쓸 때 그녀, 남자, 여자보다는 그, 사람이라는 단어를 쓰려 노력한다. 하지만 특정 성별인 것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순간도 분명 있다. 그런 문제에 대해 단정 짓기가 나는 아직 어렵다.


“그런 마음은 저들에게 결코 존재하지 않아요.”

라고 말해버린다면 어떤 이야기도 시작할 수 없게 된다고 오늘은 생각했다. 어쩌면 그 이야기는 성별에만 한정해서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저들은 남자이기도 하고 여자이기도 하다. 아이이기도 하고 노인이기도 하다. 창녀이기도 하고 정치에 화가 난 사람이기도 하다. 배우지 못한 사람이기도 하고 자신의 상처를 여기저기에 화풀이하고 다니는 악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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