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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라힘은 누구인가

by 우주만화가

'옛날 옛날 예루살렘에 이브라힘이라는 남자가 살았다.'


이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그리고 이렇게 끝난다.


'이브라힘은 누구인가.'


나는 그 이음새를 채운다.


사실, 이브라힘은 옛날 사람이 아니다.


그는 스마트폰을 갖고 있고, 페이스북을 한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는 흔적들에 따르면, 아직 살아 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을 보면, '옛날 옛날 예루살렘에 이브라힘이라는 남자가 살았다'라는 문장이 저절로 떠오른다.


나는 2010년의 어느 봄날 그를 만났다.


예루살렘 구 시가지 동편의 사자문을 지나 올리브산을 올라가면, 아랍어로 된 간판들이 즐비한 팔레스타인인 주거지에 닿을 수 있다.


연한 회색이 인상적인 집들 사이로 뻗은 골목의 골목, 그리고 그 골목의 골목으로 접어들면 어느 순간 PEACE MAKER IBRAHIM이라는 간판이 붙은 높고 좁은 모퉁이 건물이 나오는데, 그곳이 바로 이브라힘의 집이다.


문을 열면 시원하게 냉기가 올라오는 대리석 바닥과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보인다.


조명이 별로 없는 복도는 어둡다.


불빛과 말소리가 삐져나오는 곳은 좌측에 작게 딸린 부엌이다.


그곳에서 언제나 붉은 녹두죽을 쑤고 있는 이브라힘 할아버지를 발견할 수 있다.


그는 비슈트 차림이고, 어딘가 유럽 축구 리그의 콧수염 난 감독들을 닮았다.


"웰 컴. 웰 컴."


그가 말한다.


작은 식탁에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옹기종기 앉아서 녹두죽을 먹고 있다.


때마침 식사를 마친 할머니 한 분이 자리를 내게 양보해 준다.


나는 자리에 앉아, 다른 이들에게 눈으로 인사를 하고, 녹두죽을 받아 든다.


색은 붉지만, 맛은 내가 알던 녹두죽과 같다.


그렇게 나는 이브라힘 게스트 하우스의 손님이 된다.


이브라힘 게스트 하우스는, 자신을 피스메이커로 지칭하는 이브라힘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무료 게스트하우스다.


사실 게스트하우스라기보다는, 은신처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공간이었다.


3층 정도 되는 건물이었지만 결코 공간이 넓지는 않았다.


방이 몇 개 있는지 아는 이는 아무도 없으리라.


어떤 이들은 침대가 있는 방에서 자고, 어떤 이들은 소파가 있는 거실에 침낭을 깔았다.


종종 자기 공간이 없는 이들은 더위를 피해 냉기가 올라오는 복도에 누워서 잠을 청했다.


나 역시 그랬다.


이브라힘 게스트하우스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북적였다.


자기 몸통만 한 배낭을 멘 본격적인 여행객들도 있었고,


어떻게 산을 오르셨을지 걱정이 될 정도로 몸이 약해 보이는 노인들도 있었다.


어떤 이들은 마치 예루살렘에서 남은 인생을 보내기 위해 온 구도자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복잡하고 불균일한 공기가, 오히려 안락함을 주었다.


마치 사람이 아주 많은 기차역에서 진정으로 혼자 있는 것 같은 편안함을 느끼는 것처럼.


때때로 게스트하우스에서는 종교전쟁이 벌어졌다.


녹두죽을 먹거나 커피를 마시던 사람들은 종종 정치와 종교를 대화의 주제로 삼았다.


그러면 빵이 부풀어 오르는 것처럼 서서히 긴장이 고조되다가 빵, 하고 터졌다.


이슬람교인이 운영하는 무료 게스트하우스에서 종교적 견해 차이로 싸우는 이탈리아인과 핀란드인을 보는 건 아주 운치 있는 경험이었다.


대부분의 경우, 이브라힘 할아버지는 아주 참을성 있게 그들의 언쟁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러다 누군가가 주먹이나 손바닥으로 식탁을 내리치면, 마치 그 신호를 기다렸다는 듯 이브라힘 할아버지의 불호령이 식탁 위로 날아들었다.


그는 강력한 카리스마로 종교전쟁을 끝냈다.


언제나 내 관전은 거기까지였고, 나는 괜한 불똥이 내게 튀기 전에 시원하게 식은 이불이 기다리고 있는 내 침낭 속으로 도망치곤 했다.


이브라힘 게스트 하우스는 무료로 운영되었다.


기부금을 낼 수 있는 플라스틱 통이 있었지만, 통이 가득 찬 것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대신에 게스트 하우스에서 묵는 이들이 알아서 생필품을 사 와서 채워 넣었다.


휴지와 빨랫비누. 주스와 과자.


나는 항상 우유를 사서 채워 넣었는데, 냉장고에 우유를 넣어두고 샤워를 하고 오면, 이미 절반이 사라져 있었다.


매번 내 우유를 가장 먼저 반겼던 이는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어느 유럽인이었는데, 그는 우유를 먹다가 내게 들킬 때면 매번 이 말을 했다.


"한국어는 다른 나라 말과 달라. 우랄-알타이 어족에 속해있지. 그래서 일본어와도 전혀 달라. 아주 우수한 언어지."


처음 그가 내게 이 말을 했을 때 나는 진심으로 놀랐고, 그의 해박한 어학 지식에 찬사를 보냈다.


하지만 하루에 한 번씩, 내 우유를 마실 때마다 이 말을 하자 서서히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앞으로도 우유를 마시고 싶으면 다시는 내게 한국어의 우수성에 대해 이야기하지 말라고 했다.


"너는 한국어를 좋아하지 않는구나."


그가 말했다.


"아주 싫어하지."


내가 대답했다.


반면 이브라힘 할아버지는 나를 좋아했는데, 내가 매일 낮시간 동안 그의 손자에게 노트북을 빌려주었기 때문이었다.


밤에 노트북을 회수해 와서 켜면, 웹 브라우저에 이상한 툴바들이 깔려있었다.


그래서 인터넷 접속 기록을 보았는데... 어이쿠.


역시 종교와 상관없이 10대 소년들의 관심사는 똑같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게스트하우스를 떠나던 날, 이브라힘 할아버지는 로비에 걸려 있는 사진들을 내게 설명해 주었다.


세계의 여러 나라에서 온 여행객들.


그는 그들의 기억 속에 예루살렘이 분쟁의 대지가 아닌 평화의 땅으로 남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해외여행을 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나라가 없어서 여권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언젠가 여권이 생긴다면, 자기네 게스트 하우스에 묵었던 사람들의 진짜 집을 찾아가 시간을 보낼 거라고 했다.


나는 한국에 온다면 내게 연락을 달라고 했고, 그는 흔쾌히 알겠다고 했다.


나는 작지만 복잡한 감동을 느끼며 예루살렘을 떠났다.


몇 달 후, 나는 이스라엘 북서쪽에 있는 아코라는 도시에 갔다.


그곳에서도 아랍인이 운영하는 호스텔에 묵었는데, 비수기여서인지 손님이 나 혼자 뿐이었다.


그래서 마음씨 좋아 보이는 호스텔 주인아저씨와 함께 저녁을 먹었다.


화제는 자연스럽게 예루살렘 이야기로 옮겨갔는데, 내가 이브라힘 할아버지 이야기를 하자 갑자기 그의 얼굴이 굳어지는 것이었다.


"나는 아주 문제가 많다고 생각해."


그가 말했다.


"그는 자기가 살고 있는 곳을 인정하지 않아. 그는 많은 것을 누리지만,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고 있어. 그러면서 돈을 벌어들이고 있지."


나는 그의 게스트하우스는 무료로 운영되고, 여행객들이 자발적으로 내는 기부금이 많지는 않아 보였다고 대답했다.


"아니야. 그는 다른 나라의 여러 단체들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어. 그리고 그는 아랍 사회의 슈퍼스타야. 방송에도 나가고, 인터뷰도 하지. 이스라엘로부터 지원금도 받아. 그리고 그 돈으로 무장단체들을 돕고 있어."


그는 답답하다는 듯 주먹으로 가슴을 쳤다.


"그 사람 같은 이들이 계속 분쟁을 만들고 있어. 나도 유대인들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죽을 때까지 싸울 것이 아니라면 같이 사는 법을 익혀야 해. 거부하고 자기 방식이 옳다고만 하면 같이 살 수 없어. 그러면서 그는 자기 이득은 모두 취하고 있지."


그는 자신은 떳떳하게 세금을 내고 있으며, 지역 커뮤니티에서 봉사활동도 하고 있고, 자기 가게에는 유대인 손님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내가 갔던 많은 아랍인 호스텔에서는 유대인 손님을 받지 않았다)


아코는 십자군 시대의 성채와 지하감옥이 있는 도시다.


나는 언뜻언뜻 박쥐가 보이는 지하감옥 사이를 돌아다니며, 호스텔 주인아저씨의 말을 생각했다.


피스메이커 이브라힘도, 호스텔 주인아저씨가 알고 있는 이브라힘도, 둘 다 전혀 거짓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모두 진실도 아니다.


모든 사람들의 내면에는 순간의 진실이 겹겹이 쌓여 있다.


어느 층위에 시선을 두느냐의 문제다.


옛날 옛날 예루살렘에 이브라힘이라는 남자가 살았다.


그에게는 두 개의 진실이 있다.


무료 게스트하우스 운영을 통해 사랑과 평화를 전파하는 마음씨 좋은 아랍 할아버지.


두 사회 간의 배척을 단단하게 하고, 그 속에서 실리와 명분을 챙기는 노인.


이브라힘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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