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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책을 제일 좋아하는 사람

by 우주만화가

이라는 주제로 독서클럽에서 발제를 한 적이 있다.


다들 얌전하게 "아이, 저는 아니에요."라고 말하면서도 눈빛은 '당연히 나지!'라는 느낌으로 타오르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모임은 평소보다 훨씬 고양된 분위기로 진행되었고,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나는 책을 좋아하긴 하지만, 엄청나게 좋아하지는 않는다.


피자에 딸려 나오는 핫소스를 좋아하는 정도라 할 수 있겠다.


있으면 기분이 좋고 기꺼이 뿌려 먹지만, 없다고 좌절하거나 호들갑 떨며 찾지는 않는다.


물론 누가 취미를 물으면 독서라고 대답하기는 한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국어 선생님이 이런 이야기를 해 준 적이 있다.


대학 입시를 위한 자기소개서 쓰기 연습을 하던 중이었다.


한 학생이 '취미와 특기' 칸에는 무엇을 써야 하냐고 물었다.


코가 아주 컸던 국어 선생님은, 콧볼까지 내려온 뿔테 안경을 미간 사이로 밀어 올리며 대답했다.


"취미나 특기는, 지구에 있는 사람들의 절반보다 좋아하거나 잘하는 것을 말한다."


대체 그게 뭔 말이냐는 표정으로 본인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시선을 가볍게 받아넘기며, 선생님은 말을 이어갔다.


"예를 들어 피아노. 많은 사람들이 태어나서 한 번도 피아노를 만져 본 적이 없다. (나도 그렇다) 그러니까 만약 여러분이 피아노 건반을 한 번이라도 두드려 봤다면, 피아노는 너의 취미인 것이다!"


오호라.


그렇다면 내 취미이자 특기는 '한글로 된 책 읽기'라고, 나는 생각했다.


왜냐하면 전 세계에서 한국어로 된 책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애초에 십 분의 일도 되지 않으니까.


그렇게 국어 선생님으로부터 면죄부를 받은 이후로 지금까지 나는 언제나 취미란에 '독서'를 당당히 기재하고 있다.


아주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나는 어렸을 때부터 어느 정도는 책을 읽는 시간을 즐겼다.


당연히 순수하게 독서를 좋아했기 때문은 아니다.


나는 겨드랑이에 털이 나기 전부터, 혼자 있는 시간이야말로 진정으로 즐거운 시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야지만 콧구멍도 편하게 후빌 수 있고, 방귀도 마음대로 빵빵 뀔 수 있고, 혓바닥으로 이빨 청소도 원 없이 할 수 있으니깐.


문제는 대한민국의 높은 인구 밀도 속에서는, 놀이기구도 혼자 못 타는 키를 가진 꼬마가 '나 홀로 시공간'을 갖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혼자 좀 있고 싶은데요?"라는 투정은 자기만의 방을 허락받을 이유가 되지 못한다.


그럴 때는 독서보다 좋은 핑계가 없었다.


"어라 이 녀석. 책을 읽고 있잖아?"


그러면 가족들도, 친척들도, 친구들도 더 이상 나에게 축구하러 가자거나 폭죽을 터뜨리러 가자고 하지 않았고, 나는 나만의 공간을 오롯이 확보할 수 있었다.


만약 '만화 영화 보기'나 '컴퓨터 게임하기'가 동일한 결과를 가져다줄 수 있는 취미였다면, 나는 주저 없이 책 읽기를 포기했으리라!


어쨌건 그런 이유로 시작된 독서였지만, 장단을 맞추기 위해 어느 정도는 진짜로 책을 읽다 보니 정말로 조금은 재미를 붙이게 되었다.


이따금, 책 읽기는 생각지 않은 즐거움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가령, 사춘기 소년에게 책은 아주 많은 것을 제공해 줄 수 있다.


커티스 시튼펠드가 쓴 [사립학교 아이들]이라는 청소년 소설이 있는데, 내가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청소년 권장 도서 목록에 들어가 있었다.


지금도 인터넷 서점에서 [사립학교 아이들]을 검색해 보면, '금세기 최고의 성장소설!', 또는 '호밀밭의 파수꾼을 뛰어넘는 역작!'같은 홍보문구를 쉬이 접할 수 있다.


그러나 여러분, 고백컨대 나는 지금까지 수많은 책을 읽었지만, 중학생 때 읽은 이 책만큼 강렬하게 상상력을 자극하는 책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텍스트로 촉발되는 인간의 상상력은 얼마나 세밀하고 다채로운지!


나는 교육청에서 배포하는 청소년 권장도서를 단 한 권도 끝까지 본 적이 없지만, 이 책만큼은 한 호흡에 끝까지 읽었다, 그것도 여러 번.


내 여동생이 [사립학교 아이들]의 비밀을 발견하고 부모님께 일러바치지만 않았더라면, 세 번은 족히 더 읽었으리라.


(그러니 만약 자녀의 책장에서 [사립학교 아이들]을 발견한다면, 그들과 한 번쯤은 대화를 나누어 보는 것을 추천한다.)


대학에 입학하고 자취를 하게 되면서, 더 이상 '나 홀로 시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책을 읽을 필요가 없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또 다른 장벽이 결국 나를 독서의 늪으로 내몰았는데, 바로 방학이었다.


대한민국 대학생에게는 일 년에 넉 달이라는 어마어마한 기간의 방학이 주어진다.


나는 당연히 내가 그 시간을 진정으로 값진 것들 (미팅, 소개팅, 여행, 연애, 그리고 약간의 일탈들)로 채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막상 닥치고 보니 내게는 그럴 능력도 의지도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일 년에 넉 달이라는 시간이 고스란히 공백의 시간이 되어 버린 것이다.


텅 빈 방학 계획서를 눈앞에 둔 초등학생이 된 기분이었다.


물론 그 기간을 어학 공부나 인턴 경험 같은 건설적인 행위들로 채울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내가 토익 점수를 따고 공모전에서 상을 받음으로써 미래를 준비하는 견실한 청년이 될까 봐 두려웠다.


그렇다고 주야장천 놀러 다니기에는 기백도, 자금도 부족했다.


결국 내가 선택한 손쉬운 옵션은 학교 중앙 도서관으로 매일 아침 출근하여, 도서관이 문을 닫을 때까지 하루 종일 아무거나 손에 잡히는 책을 읽는 것이었다.


책이 지루하면, 다른 책으로 넘어가면 된다.


책 읽기에 질리면, 도서관에 있는 영상 감상실에 가서 B급 영화들을 본다.


때가 되면 아주 맛있지는 않지만, 값이 저렴한 학교 식당에서 식사를 한다.


누군가로부터 전화가 올 때마다 '도서관에서 공부 중입니다'라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는 것 역시 쾌감이 쏠쏠했다.


그렇게 나는 하루 5000원도 되지 않는 돈으로 매일매일을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


심지어 책을 읽는 것이 뇌에 꽤 부담을 주는 행위였는지, 밤이 되면 잠도 잘 왔다.


곰이 동면에 들듯, 나는 도서관의 습한 열람실에서 책더미 속으로 숨어들었다.


대신 자기계발서는 절대 읽지 않았는데, 책에 나오는 문장 하나하나가 마치 쌀밥에 든 돌조각처럼 마음을 불편하게 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목적을 갖고 시작한 독서가 아니었기 때문에, 자기계발서만 제외하고는 정말 다양한 책을 보았다.


[아라비안 나이트]를 완독하기도 했고, 미국식 이유식을 위한 요리책을 머리말부터 맺음말까지 정독하기도 했다.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인생의 요순시대였달까?


이제 나는 더 이상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한 아이도 아니고, 넘쳐나는 여유시간을 때우기 위해 도서관을 들락거려야 하는 대학생도 아니다.


멋진 사회인이 되기 위해서는, 생계를 유지한다는 의미 외에는 다른 의미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큰 의미를 갖는 시시콜콜한 일들을 매일매일 처리해야 한다.


책에 빠져 살던 시절은 노스탤지어를 불러 일으키는 추억이 되어 버렸다.


그럼에도 종종, 회사에서 보고서를 작성하거나 집에서 하수구 거름망을 씻다가 문득 '어떤 책을 보고 싶다'는 은근하고도 구체적인 욕구가 들곤 한다.


'배경 묘사가 지루하고 길어서 다 읽고 나면 대체 뭘 읽었는지 정리가 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묘하게 책장을 계속 넘기게 되는 연애소설을 읽고 싶군!'


또는


'레콘키스타 과정을 아주 무미건조하게 서술한 역사서가 보고 싶어! 미국 작가가 쓴 것이면 더 좋겠군.'


혹은


'카페에서 읽으면 멋있어 보이는 세련된 철학 원서가 당기는군. 표지가 화려하지 않아서 너무 대중적으로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럴 때는 역시 쇼펜하우어다. 플라톤이나 칸트는 너무 딱딱하고, 데리다와 들뢰즈는 너무 과하니깐)


같은 식으로 말이다.


몇 년 전 여름에는, 갑자기 '배경이 신선한 본격파 일본 추리소설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 추리소설이 보고 싶으면 나는 항상 다카라지마 사에서 발행하는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라는 추리소설 가이드북을 검색한다.


추천 소설 목록을 훑어보니, 이마무라 마사히로라는 작가가 쓴 [시인장의 살인]이라는 소설이 눈에 들어왔다.


좀비에 둘러싸인 별장에서 일어나는 살인 미스터리를 다룬 작품이라고 했다.


설정이 흥미로웠다.


바로 교보문고에서 구입해서, 잠들기 전 디카페인 커피를 옆에 두고 틈틈이 읽었다.


좀비를 살인에 활용한다는 트릭이 참신하기는 했지만, 내용이 아주 재밌지는 않았다.


계속 소장하고 싶은 정도는 아니라서 근처 알라딘 중고서점에 가서 책을 팔았다.


책을 읽다 커피를 조금 흘리는 바람에, 책값으로 3000원 밖에 받지 못해서 아쉬웠다.


그 뒤로 한동안은 추리 소설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러다 작년에 오랜만에 미스터리에 대한 갈증이 생겼다.


갑자기 길을 걷다 '배경이 신선한 본격파 일본 추리소설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일본 추리소설이 보고 싶으면 나는 항상 다카라지마 사에서 발행하는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라는 추리소설 가이드북을 검색한다.


추천 소설 목록을 훑어보니, 이마무라 마사히로라는 작가가 쓴 [시인장의 살인]이라는 소설이 눈에 들어왔다.


좀비에 둘러싸인 별장에서 일어나는 살인 미스터리를 다룬 작품이라고 했다.


설정이 흥미로웠다.


마침 알라딘에 중고 재고가 있었다.


구입해서 잠들기 전, 디카페인 커피를 옆에 두고 틈틈이 읽었다.


좀비를 살인에 활용한다는 트릭이 참신... 어라 잠깐만?


이거 어딘가 기시감이 드는데?


책을 뒤적여 보니, 84페이지에 커피 자국이 있었다.


이런. 내가 팔았던 책이었다.


새 책을 사서 읽고, 중고 서점에 판 다음에, 내가 판 바로 그 책을 다시 사서 읽는다.


그것도 처음 읽는 것처럼.


잠시만.


정정하겠다.


내 생각에, 나는 세상에서 책을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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