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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Jun 27. 2024

서로의 목격자 되기
- 영화 <메리와 맥스>

책 <영화처럼 산다면야> 동상이몽 제작일지 02

가족한테 무관심한 아빠, 도둑질을 일삼는 술주정뱅이 엄마랑 호주에 사는 여덟 살 메리. 미국에 사는 아스퍼거증후군을 앓는 무신론자 유대인 마흔네 살 맥스. 그 둘의 공통점은 초콜릿과 노블렛(TV프로그램 속 캐릭터)을 겁나 좋아하는 외돌토리. 메리의 유일한 친구는 수탉 에델, 맥스의 유일한 친구는 이따금 불러내어 말 나누는 상상 속 라비올리. 어느 날, 메리가 보낸 편지 한 통으로 무려 22년간 글로만 쌓아 올린 메리와 맥스의 우정탑을 그린 영화 <메리와 맥스>.


시골 살던 대여섯 살 꼬맹이 시절. 서울 변두리로 이사 오는 바람에 헤어진, 맨날맨날 눈 뜨면 손 꼬옥 잡고 놀던 소꿉친구 일해.  이사하던 날, 안 떨어지려고 둘이 부둥켜안고 우는 통에 떼어내느라 어른들이 어지간히 애 먹었단, 놀림 같은 얘길 자주 들어서 그런가. 먼발치에서 본 양 생생하게 그려지는 그날 풍경. 키다리 미루나무 늘어선 신작로를 노란 흙먼지 날리며 달리는 이삿짐 트럭이랑 점점 흐려지고 작아지던 그 애. 서울 와서 들먹들먹, 마음 요상한 날이면 옥상으로 대야 한가득 빨래 널러가는 엄마 뒤꽁무니 따라 계단을 올라갔어요. 엄마가 빨래 다 널고 내려가면 빨랫줄이랑 벽 사이, 고 좁은 틈으로 기어들어가 시골에 두고 온 그 애, 일해를 불러내려고. 바람이 불어와 이마에, 뺨에, 어깨에 척, 척, 빨래가 와닿는 줄도 모르고 나눈 속엣말. 엄마가 부를 때까지, 거기 오도카니 앉아서. 이연아, 고만 내려와~! 씩씩, 뺨이랑 이마, 어깨에 묻은 물을 닦고는, 어! 학교에 들어가서는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젤 먼저 눈에 들어온 애를 마음에 들이고 나눈 속엣말. 답장 없는 편지랄까. 그런 게 필요 없는 넋두리랄까. 나야, 잘 있었어?


삶은, 사람은 삐뚤삐뚤, 비대칭. 독한 낯가림에 왕성한 호기심. 결혼했더니 시어머니는 말끝마다 '별나다 별나', 혀를 차고 암에 걸리고 사람들 속으로 들어갔더니 '반골 고슴도치'라는 주홍글씨 같은 별명이 떡허니. 근데 이상하죠? 싫지 않대요. 그 별남이, 그 삐딱함이, 그 뾰족함이, 그 모남이, 그 엉겨붙음이, 그 어그러짐이, 그 미침이. 그 모든 걸 싸안았어요. 더, 그러기로 작정.


동선 작가님 기억과 달리 처음 동선 작가님 글을 읽은 건 지금은 브런치북으로 엮은 요 글 가운데 한 꼭지였어요. (였을 거예요…….)



이 브런치북을 읽은 분들은 알 거예요. 얼마나 전문적이고 어려운지. 저는요, 한 꼭지 읽고 냅다 도망갔더랬어요. 아, 이 사람은 나랑 놀 급이 아니구나. 그러고 얼마 지나서 낯선 이가 누른 '좋아요'. 누군가 싶어 갔더니, 제가 도망친 그 방 주인장이더라고요. 근데 최근 올라온 글을 읽으니 지난번 글이랑 달리 너무 재밌는 거예요. (<나도 재미있고 사랑스러운 글을 쓰고 싶은데> , <행복하게 늙어간다는 것>) 재밌는 정도가 아니라 글을 읽는데 부글부글 막 얘기가 끓더니 줄줄 새는 거예요. 동선 작가님은 글을 잘 쓰기만 하는 게 아니라, 읽는 이로부터 이야기를 끌어내는 재주까지 있는 천상이야기꾼이더라구요. 그래서 허구한 날, 퍼질러 앉아서 노닥거렸어요. 말이 길어진다 싶으면 이따금 블로그에다 긴 댓글 폭탄을 써재끼면서. 그러다 읽은 요 글.



'한 노동자의 근무태도가 주변 동료는 물론 사회 전체로부터 평가받는 세상, 어쩌다가 우린 이런 세상에서 살게 되었'냐는 그의 당연한 물음.'능력 없거나 노력 안 한 사람들이 대신 징벌을 받아야 한다는 논리'는 이상하다는 그의 속 깊은 문제 제기. 그리고 '게으른 사람이라는 이유로, 일터에서 쫓겨나거나 자신의 생존권을 위협받는 사회는 좀 아니지 않냐'는 그의 선한 불만. 마지막으로 연대란 '선한 약자를 악한 강자로부터 지켜내는 일이 아니라, 시시한 약자를 위해서 시시한 강자와 싸우는 일'이라는 최규석 작가의 <송곳>을 말하면서 '나와 업무 스타일이 안 맞는 사람들과도 여전히 연대를 해야 하는 이유'를 말하는 그의 다정한 오지랖. 마음을 징, 울리고 뒤통수를 빡, 후려치는 이 글에 얼마나 오래 앉아있었는지요. 내, 울면서. 그렇게 저는 그의 글 우물에 퐁당 빠지고야 말았어요. 읽고 읽고 또 읽고. 배우고 배우고 또 배우고. 처음 글을 깨치는 어린애처럼 그렇게 세상을 알아갔어요. …… 눈을 떴어요. 어느 날은 낄낄거리는 친구 같고 어느 날은 등짝을 후려치는 스승 같은 그의 글을 읽으면서. 그의 마음씀, 그의 눈빛, 그의 몸짓을 흉내 내면서. …… 아름다웠어요. 그가 그리는 세상이, 그가 꿈꾸는 세상이.


싸이월드가 한창 유행하던 시절. 대학 다닐 때 이뻐하던 후배를 그 공간에서 만났어요. 미국으로 건너가 잘 살고 있다는 그 녀석 얼굴에 진 그늘. 세상모르고 꿈꾸던 어린 날을 함께 보내서 그런가, 다른 이들한텐 안 보였을 그 그늘이 제 눈엔, 마음엔 보이고 읽혔어요. 짜아식…….


 '누나, 우리 같은 사람들은…….'


어느 날, 그 녀석이 남긴 댓글. 그 애가 삼킨 말에 오래 울었어요. 어둔 방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꺽꺽대면서. 그래, 이 자식아, 우리 같은 사람들…… 우리 같은 사람들은, 뭐?


브런치를 돌아다니다 맘에 드는 글을 만나면 꼭 첫 글을 읽는 버릇이 있어요.


'차라리 글쓰기가 방학 숙제 같은 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동선 작가님의 첫 글, <방학 숙제> 첫 문장)


그 문장에 주저앉았어요. 고만 주저앉고 말았어요. 풀썩. 그 글을 쓰기 전, 그 문장을 토해내기까지 그가 보냈을 시간이 보여서. 그가 걸어왔을 그 길이. 주섬주섬 마음을 일으켜 댓글을 썼어요.



그리고 동선 작가님 글을 다시, 읽었어요. 한 꼭지, 한 꼭지, 또 한 꼭지……. 읽으면 읽을수록 자꾸만 새어 나오는 말. 영화 얘기하고 싶다, 이 사람이랑. 어차피 동선 작가님은 캐나다에 있으니 얼굴 마주할 일 없을 거야. 벌떡, 일어난 마음


'함께 영화글 써볼래요?'


방학 동안 개울에서 물장구도 좀 치고, 들판도 좀 걷고, 노을 보면서 같이 놀아요. 아직 떠나지 못한, 그런 것 같은 영화 언저리에서.


동쪽 하늘 붉은 이 새벽, 동선 작가님이 말한 제 글을 다시 읽었어요. 그리고 첫 문단에 예언인 듯 쓰인 글귀에 놀랐어요.


'사건이 일어나자 사람들이 몰려와요. 한 명 두 명 세 명… 숫자는 점점 불어나 셀 수 없이 많아져요. 목격한 장면은 저마다 다르겠죠. 단 한 명도 동일하지 않을 거예요. 사건 지점에 도착한 시각이 다를 거고 서 있는 위치가 다를 거고 키가 제각각이니 높이가 다를 거고 시력이 천차만별이니 선명도가 다를 거고 시야 확보에 따라 관찰 범위가 다를 거고. 그 밖에도 많은 요소가 다르겠죠. 그들이 각자 집으로 돌아가 방금 자기가 본 사건을 얘기한다고 가정해 봐요. 일어난 사건은 분명 하나지만, 그 사건을 목격한 사람 수만큼 이야기는 셀 수 없이 늘어나지 않을까요? 똑떨어진 물 한 방울이 걷잡을 수 없는 강물이 되는 것처럼, 하나의 사건이 수천, 수만의 이야기로 확장되는 거죠.'


우리는, 아니, 저는 그때 이미 수천, 수만의 이야기로 뻗어나가는 이야기를 함께 짓는 '서로의 목격자'를 꿈꿨는지도 모르겠어요. 태생이 못 말리는 몽상가라.


'내가 널 용서하는 이유는 넌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야.

넌 불완전해. 나도 그렇고. 모든 인간은 불완전해.

하지만 우린 친구는 선택할 수 있어.

난 널 선택하게 되어서 정말 기뻐.

넌 나의 최고의 친구야. 넌 나의 유일한 친구야.

너의 미국인 친구. 맥스 제리 호로비츠.'

- 영화 <메리와 맥스> 중에서.


별나고 모난 데다 승질 드러운 것도 모자라 지금 당장 죽어도 하나 이상하지 않은 말기암 환자인 저랑 친구 해줘서 고마워요, 동선 작가님.


<더 숲>에 갔던 날, 계단에서 무지개를 봤어요.

무지개… 같은 사람.

서로가 서로에게.

우리, 몽땅, 그렇게요.


'이 방학이, 이 여름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글 제목은 안희연 시인의 시 '긍휼의 뜻'에서 인용했어요.


또, 덧

일종의 무대 뒷이야기 같은, 영화책 <영화처럼 산다면야> 작업일지 <수다만 떨었을 뿐이데> 공동 매거진. 이 글을 발행하려는데, 어? 작년 오늘 동선 작가님이 제 글에 (블로그) 남긴 댓글이 눈에 들어왔어요.



'제 통조림에는 방부제는 없고 무슨 발효 촉매제 같은 게 있나 봐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숙성되고 풍미가 진해지는 건 단지 착각인가요.'


2년 전 그 여름, 떨림과 두려움 안고 모험을 떠났던 동선 작가님과 저는 이 여름 또 어딘가로 흘러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방부제가 아닌 흉측한 상처는 쏘옥 빼버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자기만의 맛과 향으로 익어갈 발효 촉매제를 한 아름 챙겨서. 우리가 가는 곳이, 이르려는 그곳이 어딘지 지금 당장은 알 수도 없거니와 보이지도 않지만… 이 여름이 끝나면, 여름빛 질릴 무렵이면 또렷해지지 않을까요? 우리가 지나온 모든 여름이 그러했듯.


살아서, 걸어온, 희망의 길.

서로를 향한 단단한 지지의 그 길이 이제야.


새로이 맞은 이 방학에, 이제 막 떠난 이 모험에 많은 관심과 구독 부탁드립니다.

참, 집 근처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은, 하셨죠? ㅎㅎ

감사합니다. 여기, 당신, 당신들.


2024년 6월 25일 아침 하늘.



또, 또, 덧.

유혈사태는 막아야겠기에 삐걱대는 서랍 열어 쌓인 먼지 툭툭, 털고 오래 감춰둔 글 순순히 꺼냈놓았어요오오오오오, 동선 작가님! (누구 말씀이신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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