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이직하고 채 1년이 되지 않았던 작년 말과 올해 초, 동료들로부터 피드백을 받았다. 전회사에서는 동료 평가가 없어서 내가 직접 동료들에게 메일을 보내 피드백을 부탁했는데, 이번 회사에는 제도가 있어 자연스럽게 진행할 수 있었다. 협업하며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 앞으로 기대하는 모습에 대해 동료, 팀장, 팀원들과 서로 피드백을 작성하고 미팅을 잡아 이야기도 나누었다.
리더와 동료들은 프로덕트 오너(Product Owner)로서 나의 좋은 점을 다음과 같이 말해주었다.
- 팀원들의 강점을 활용하고 약점을 보완하여 협업을 이끌어냄
- 복잡한 이슈를 차분하게 파악하고 방향을 제시함
-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면서도 중심을 잡고 합리적으로 빠르게 결정을 내림
- 제품의 비전을 명확하게 제시함
- 항상 과제의 배경과 목적을 자세하게 설명함
반면 개선할 점에는 이런 것들이 있었다.
- 제품의 장기적인 방향성이 뚜렷하지 않음
- 과제를 정의하는 단계에서 결정이 지연되거나 확신이 없는 경우가 있음
비전 제시와 결정 속도에 대해서는 좋았던 점과 개선할 점에서 모두 언급되었던 것이 신기했다. 사람마다 기대하는 수준이 다른 탓도 있고, 역할에 따라 경험한 측면이 달라서일 수도 있을 것이다. 서로의 맥락을 들어보고, 나의 한 해를 스스로 돌아보았다. 작년의 나는 비교적 작은 일들은 망설임 없이 확신을 갖고 결정했다. 그런데 크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일수록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특히 내가 맡은 제품의 전체적이고 장기적인 방향성을 스스로 세우는 것은 처음 해보는 일이어서, 더 많이 망설이기도 했다. 새로운 것들을 알게 될수록, 더 나은 새로운 결정을 하고 싶었고, 다음에 더 중요한 정보를 알게 될 것 같아 쉽사리 확신을 갖지 못했다. 그래서 이런 상반된 피드백을 받게 된 것 같다.
항상 최선의 결정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더 확신을 갖고 빠르게 의사결정을 할 수 있을까? 답을 찾기 위해 주변에 묻고, 구글에 물었다. 도움이 되는 글도, 책도, 말도 있었다.
책 중에서는 <결정 수업>이 꽤 체계적인 답을 갖고 있었다. 현학적인 문구가 많아 쉽게 읽히지는 않았지만, 핵심적인 메시지들은 깨달음을 주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불확실성이 늘 존재한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의사결정은 보통 불확실한 상태에서 일어난다. 가능한 결과를 예측하고 행동해도 원하는 결과가 따를지는 장담할 수 없다. 간단히 말해, 이런 것이 모험이다.
불확실성을 최대한 제거하고자 근거를 찾지만, 항상 완벽한 근거를 가질 수는 없다. 불확실한 상태에서 의사결정을 한다면, 어떻게 확신을 가질 수 있을까? 모든 결정이 무조건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기는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결정을 두려워하며 미루는 것보다는, 지금 결정하고 실행하는 것이 낫다는 것은 확신할 수 있다. 내일의 내가 오늘의 나보다 획기적으로 좋은 결정을 내릴 확률은 낮다. 비슷한 수준이라면 한시라도 빨리 결정하는 것이 이득이다.
내가 ‘중요한’ 결정을 미루려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최선의 결정을 위해 필요한 과정이라고 합리화하고 있었다. 그렇게 미룬 결정의 결과는 어땠을까? 내가 기대한 만큼의 성공을 바로 가져오지는 못했다. 다른 선택들도 실행하기 전까지는 그 결과를 알 수 없다. 불확실성을 감당하고 결정하여 실행하는 것이, 실패하더라도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실패하는 것보다는 낫다.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결정하기로 결심했다면, 어떻게 성공확률을 높이는 더 나은 결정을 할 수 있을까?
위험을 대하는 건강한 태도는 인식(무엇을 걸어야 하는지와 보상은 무엇인지를 알고, 보상받을 가능성을 가늠하는 감각)과 용기(실패에 대응하는 회복력, 이상적으로는 도전을 즐기는 감각)에 기반한다.
스탠퍼드대학교 경영대학원과 듀크대학교에서 강의하는 히스 형제는 어려운 결정에 직면했을 때 “랩 WRAP” 공식을 사용하라고 권장한다. 이 공식은 다음 네 단계를 포함한다.
- 당신의 선택을 확장하라 (Widen)
- 당신의 가정을 현실에 비추어 시험해 보라 (Reality)
- 결정하기 전에 거리를 확보하라 (Attain)
- 틀릴 수도 있음에 대비하라 (Prepare)
지금까지 내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문제들 앞에는 상황이 나빠지기보다는 좋아질 확률이 더 큰 선택지들이 대부분이었다. 불확실성을 인지했다면 위험에 대비하되 빠르게 결정하고 실행하는 것이 성공의 확률을 높인다.
불확실성을 두려워했다는 것을 깨닫고 보니, 내가 신뢰하는 리더들이 불확실성을 껴안고 내린 결정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떤 결정은 성공으로 이어졌고, 어떤 결정은 실패했지만 경험이 되었다. 나아가겠다는 결정을 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결정을 미루면 나아가는 속도가 느려지고, 결정을 하지 않으면 나아갈 수 없다.
올해의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중요한 결정을 많이 내려야 한다. 성공을 위한 열망도, 성공시켜야 하는 책임도, 성공을 만들어낼 권한도 크다.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겠지만, 성공의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줄일 수 없는 최후의 불확실성을 빨리 껴안아야 한다. 올해, 성공으로 가는 불확실성의 모험에 한걸음 더 내디뎌보려 한다.
마지막으로 재즈의 대가 마일스 데이비스의 말을 남겨본다.
If you hit a wrong note, it’s the next note that you play that determines if it’s good or bad.- Miles Davis
틀린 음을 연주했더라도, 그 음이 좋은지 나쁜지는 그다음 연주하는 음이 결정한다. - 마일스 데이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