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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학중년 마크 Jan 12. 2024

옷이 이렇게 많은데 왜 입을 옷은 없는걸까?

적정 용량, 내가 누릴 수 있는 것


갑자기 쌀쌀해진 아침 공기를 느끼면서 좀 더 두툼한 옷을 입어야 겠다는 생각으로 옷장을 뒤지다가 '요즈음 입을 옷이 너무 없네' 란 생각을 했다. 

빼곡히 차 있는 옷장과 서랍장을 이리저리 둘러본 이후에 내린 결론이었다. 


'나는 옷이 부족한 걸까?'

'이처럼 많은 옷이 널려 있는데 이를 보고 입을 옷이 없다고 여겨지는 판단은 대체 어떤 데서 오는걸까.'

'그렇다면 과연 얼마나 많은 옷을 가지게 되면 충분하다고 느끼게 될까.'


여기에 생각이 이르게 되면서

머리속에 문득

용량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내게 필요한 옷의 적절한 용량은 얼마일까.

생각해보면

보통의 사람들은 하루에 한 벌의 옷을 입는다.

모델이나 연예인처럼 업무적으로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우리는 오늘 하루 동안 속옷 한 벌, 상의와 하의의 겉옷 한 벌을 입고 생활할 것이다. 

아무리 옷이 많은 사람이라고 해도

하루에 열 번 스무 번씩 옷을 바꿔가며 입는 이는 없다.  

그렇게 따지면 오늘 내게 필요한 옷의 적정용량은 한 벌이다. 

계절에 따라 스타일에 따라, 그리고 하는 일과 가는 곳에 따라 우리들은 여러 종류의 옷이 필요하지만 

그럼에도 오늘 내가 입을 수 있는 옷은 그저 한 벌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한 벌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다른 옷들이 숱하게 쌓여있어도 

나는 그저 입을 옷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일상에서 필요한 다른 것들에 대하여도 생각해 본다.

음식은 어떨까. 

아무리 부자라고 해도

하루에 열 끼를 먹을 수 없다.

한 끼에 수십 수백만원 하는 고급 음식을 사먹을 수는 있겠지만

그 음식의 적정용량은 가격과는 별개로 하루 세 끼로 족하다.  

마찬가지로

자동차를 수 십대 가지고 있는 부자라 해도

아침 점심 저녁에 각각 다른 차를 타고 다니진 않는다. 

내가 이동하는 동안에는

나는 오직 한 대의 자동차만을 탈 수 있다. 

오늘의 자동차 적정용량은

그래서  역시 한 대이다. 

수 천 평에 이르는 좋은 저택에 사는 사람도

매 순간 발을 딛고 있는 땅은 고작 한 평 남짓이고

잠 자기 위해 필요한 자리는 요 한 장, 이불 한 장 크기일 테다. 

아무리 과거에 많은 일을 겪었고

다양한 경험을 했다 하여도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

오늘 사용할 수 있는 적정용량은 정해져 있다. 


옷 한 벌, 자동차도 한 대, 돌아가서 편히 누울 잠자리도 한 자리.


그런데 들과 달리

용량의 물리적 제한이 없는 것도 있으니

말이나 생각, 감정 같은 것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정해진 적정 용량을 잘 알 수 없기에

그 상한선을 넘기기 쉬운데

보통 그 결과는 그리 좋지 못하다. 

많은 말을 하는 가운데 실수와 분쟁, 오해가 생기고

고민과 걱정이 용량을 넘기면 몸도 마음도 아프게 된다.

희노애락의 감정도 그 사용이 과하면 부작용으로 돌아온다. 


이렇게 보면 모든 만물은

적정한 용량을 가지고 

그 안에서 그 용량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자연의 상태이자

소위 중용의 미덕이 아닐까 싶다. 


오늘도 내일도 늘 내게는 적정한 용량의 인생이 주어진다. 

그 용량을 과하게 넘어서지만 않는다면

하루하루는 그리 불행해지지 않을 것 같다.  

그러하기에

옷을 여기저기 늘어놓고 입을 옷이 없다고 불평하기보다는

오늘 내 몸을 감싸줄 깨끗한 한 벌을 고맙게 걷어 입으며

내게 일어날 적정한 용량의 행복을 기대하는 것이 더욱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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