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학중년 마크 Oct 16. 2023

믹스의 기술

잘 섞는다는 것

믹스커피를 즐겨마신다.


몸에 좋지 않다는 인식이 확산된 대표적인 인스턴트 식품이지만 

아내와 나는 아직도 집에서 늘 믹스커피를 마신다.

이 믹스커피에 대한 개인적인 역사는 좀 긴데..

나의 기억으로 열살 남짓한 무렵, 

아버지가 커피와 프리마를 처음으로 집에 사오셨다.

난생처음 커피라는 것을 한 모금 먹어봤고 그 맛은 무척 달달했다.

그 후부터 혼자 몰래 커피를 타 먹기 시작한 것이 오늘의 믹스커피까지 이른 것이다. 

그 옛날의 커피 (소위 '다방커피'라고 불리우는) 는

커피와 프림, 그리고 설탕의 양을 각자 입맛에 맞게 조절해서 타 먹는 맞춤형이었다. 

누군가 커피를 타면서 난 "둘 둘 둘"로 해줘 라고 한다면

커피와 프림 설탕을 각각 두 스푼씩 넣어 달라는 말이었다.

거기에 물의 양에 따라서 또 진하기가 조절되기 때문에

커피를 타는 일은 적어도 4가지 이상의 요소들에 의해

그 맛이 다양하게 달라질 수 있었다. 

그래서 당시엔 분명히

'커피 잘 타는 사람'이 존재했고

'아무개가 타 주는 커피가 제일 맛있더라' 는 류의 칭찬도 흔히 주고받을 수 있었다.

이런 커피 타 주는 문화는 당시 주로 여성들에게 주어진 차별적인 문화의 잔재로 여겨져 이제는 접할 기회가 거의 없어진 것도 사실이다. 뭐 이건 당연한 거고.


문득 '잘 섞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음식을 할 때 식재료와 양념과 물 등의 요소들이 잘 배합되어야 맛있는 음식이 되고

술도 칵테일부터 폭탄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조(?)가 가능하듯이

삶에 있어서도 적절하게 잘 섞어야 하는 것들이 무척 많다. 

흔하게는 일과 라이프스타일의 조화를 강조하는 '워라밸'이라는 표현이나

사람간의 관계에 있어서도 맹목적인 호의나 맹종을 경계하는 '밀당'이라는 말도

따지고 보면 비슷한 맥락이 아닌가 싶다. 

더 넓게 보면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항상 진실된 본래의 상태를 추구하는 <중용>의 가르침도

살면서 겪는 수천가지 감정과 언행들을 잘 섞으며 살라는 의미인듯 하다. 


모든 색깔을 섞으면 검정이 되지만

어떤 색깔들을 어떻게 섞느냐에 따라 

수백가지 아름다운 색채와 그림이 만들어진다. 

일도, 사랑도, 건강도 그리고 우리의 감정들도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 늘 비슷하거나 과한 농도를 고집하기 보다는

과하지 않은 적당한 농도와 배합으로

일상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PS. 지금 마시고 있는 커피믹스는 

많은 사람들의 기호에 가장 어울리는 

일정한 비율의 믹스를 연구하여 만들어낸 것이겠지.

그래서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중년 이후가 찐 인생인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