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한 달만에 연인이 되었다
어느 휴일 아침, 느지막이 일어나 친구와 전날 본 영화 얘기를 나누던 중 고백받았다. 모든 걸 멈추었다가 대답했다, 그러자고. 지금 생각해 보니 뜬금없어 보였던 고백에 바로 대답한 건 오히려 오랜 친구였기에 그랬던 것 같다.
우리는 10년 전 한 회사 인턴으로 만나 근무 중 거의 매일 다른 인턴 동기들과 신나게 놀았다. 당시, 나는 고시원에 살았고 주말마다 부모님 집으로 향했다. 부모님 집으로 가지 않는 주말에도 가끔 만났다. 이후에도 연락을 주고받으며 지냈는데 본격적으로 시간을 보내게 된 건 내가 서울에 올라간 이후부터였다. 다른 친구와 함께 셋이 놀다가 친구의 아이까지 넷이 노는 것이 익숙해지고 있었다.
별일 없는 주말에는 쉬고 있다가도 친구가 사진을 찍으러 궁에 가자, 한옥마을에 가자며 부르면 나갔다. 야경을 보거나 술을 마시기도 했고 맛있는 음식을 같이 먹었다. 이 즈음 내 친구들은 종종 둘이 사귀는 거 아니냐며, 이런 관계가 어떻게 이렇게 오래 지속될 수 있는지 의문을 가졌다. 내가 부모님 집으로 다시 내려간 후에도 대전, 서울을 오가며 만났다. 해외에 있다 돌아온 후에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자연스럽게 부모님 집에서 넷이 만나 먹고 놀았다.
이렇게 만난 지 한 달 후 연인이 된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한 시간이 무색하게도 첫 데이트를 하는 내내 편안했다. 이전에 우리가 만나 즐거웠던 때와 다를 바 없었다. 물론, 여기에 살뜰한 챙김이 더해졌다는 점이 다르기는 하지. 우리 관계에 적응하고 있던 중 생긴 흥미로운 점은 내 연애 소식을 접한 주변 친구들의 반응이었다. 대부분 정말 놀라워했고,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또, 애인과 나의 지난 시간을 대신 반추하며 하나의 ‘서사’처럼 여기는 모습이 재밌었다.
내가 오랜 시간 모른 척한 나머지 생각나지 않았던 기억까지 소환한 것도 친구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