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피베리 Feb 05. 2023

30대 초반, 어쩌다 주임 직함을 단 신입사원이 되었다

지원서 제출과 면접 보기가 저의 일입니다

경력이 없는 신입도 아니고, 경력은 있지만 어쩐지 어디다 내보이기는 애매한 경력자다. 회사를 경험해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프로젝트를 온전히 혼자 이끌어봤냐고 물으면 고개를 저으며 살짝 힘이 빠지는 그런 상태. 지원서를 내고 탈락하다가 면접 보는 시간이 이어졌다. 어떤 날에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지원서를 갈아엎다가도 어떤 날에는 이대로 세상이 끝나나 싶었다.


경력이 아예 없던 때에는 어디든 취업만 하면 다 괜찮을 것 같았다. 정규직이 아닐 땐 계약직으로라도, 돈이 없을 땐 돈을 벌기 위해, 출퇴근 거리가 멀 땐 가까운 곳이면 좋다고 생각했다. 회사가 나아가는 방향이나 그곳에서 내가 얻을 수 있는 것, 나중까지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애써 피해왔던 것 같다. 그런 걸 생각하다 보면 지금까지 내 선택이 모조리 좋지 않은 실패라고 여겨질 것 같아서.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있기에는 간간히 보던 면접도 끊길 것 같았다. 그 사이 나는 격동적인 변화 속에 있었다. 가족 간 각자 자리를 찾아 뿔뿔이 흩어졌고, 결혼을 앞둔 나도 나의 집을 옮겨왔다. 어쩐지 이전과 같은 행복을 지금보다 더 애써야 가끔 맞이할 것 같아 조금 슬프기도 했다. 지금 누리는 기쁨 속에서 전처럼 누리지 못한다고 속상해하기에는 내 일을 찾는 것이 시급했다.


어떤 형식으로의 일이든 오래 하고 싶고, 일상 속에서도 종종 생각하며 언젠가는 그 일을 통해 또 다른 세계를 만나거나 중심에 두고 확장해가고 싶었다. 그동안 일 앞에서 쿨하게만 군 탓인지 이런 바람을 나 스스로에게 내보이기가 쑥스러웠다. 노트북 앞에 앉아 채용 사이트를 살피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지원서를 제출하고 연락받는 행위조차 단순 노동처럼 느껴졌다.


오히려 면접을 보러 다녀오고 나서 합격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 정도였다. 그만큼 가만히 앉아 화면을 보고 있는 자체가 일처럼 느껴진 것이다. 그러다 정 취업이 되지 않으면 아르바이트라도 해야겠다 싶을 때 한 회사에 면접을 가게 되었다. 그동안 했던 일과는 다른 판이었다. 살펴봐야 하는 자료도, 이를 통해 얻고 또 세팅해야 하는 툴도. 면접관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내게 기본적인 용어를 설명했다.


친절하게 대해 주시는 거 보니 다음을 기약해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집에 터덜터덜 걸어 들어오다가 편의점에 들러 캔맥주를 샀다. 돌아오자마자 패드와 캔맥주를 나란히 두고 면접 회고를 시작했다. 면접이 끝난 직후에는 기록해 둘 게 많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기록하려고 보니 면접관이 설명한 일의 흐름과 용어 몇 가지 말고는 없었다. 어차피 떨어질 곳이었지만 내가 미처 살피지 못한 걸 알 수 있게 해줘서 참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속이 쓰린건 어쩔 수 없었지만.


초조한 몇일 동안 기분은 오르락 내리락했다. 면접 본 곳이 되지 않는다면 나는 다시 지원서를 제출하고 또 면접보고, 회고하는 일을 해야할텐데 어쩌지? 잠시 어딘가 도망쳐 있다 와야 할까? 도대체 얼마나 더 내 부족한 모습을 보고 있어야 할까? 쏟아지는 물음표에 눌려 나는 그대로 가라앉는 듯 했다.


작가의 이전글 엄마의 시그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