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올리브 Oct 17. 2024

자기 분화의 효과

의외의 결과에 의외의 변화가 찾아오다

요즘 머레이 보웬이라는 심리학자에 대한 글을 많이 접하고 있다. 그 사람의 이론 중에 '융합'이라는 개념이 있다. 

심리학 서적을 읽다 보면 거기 나오는 얘기가 나랑은 전혀 상관없고 그냥 도움이 되는 정도라고 생각할 때가 많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문제상황이 나에게 있다면, 그건 내가 심리적으로 아프다는 뜻이고 그럼 병원에 가야 하는데, 기본적으로 나는 내가 건강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융합 역시 나랑은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자식 일을 자기 일처럼 생각해서 감싸고 도는 부모의 병폐를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고 그런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잘 안다. 나는 워낙 성격도 독립적이고 내 일은 내가 알아서 책임지고 사는 편이라 융합이 나랑 관계가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다 문득..... 식구들의 행동에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자꾸 고쳐지지 않는 문제가 지속되는 것이 혹시 내 융합 정도 때문이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 정말 이런 의심이 든 것을 고맙게 생각한다. 


융합이 심하면 문제가 많이 생긴다고 한다. 다양한 문제가 많다고 하지만 그걸 내가 정리할 깜냥은 안되기에, 이 글을 읽는 독자님들은 직관적으로 그게 어떤 문제를 일으킬지 자기 삶에 대입해서 생각해 보면 좋을 것이다. 그리고 융합의 반대 개념이 '자기 분화'다. 처음에는 분화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내가 잘게 쪼개져서 발전한다는 뜻인가... 싶었다. 외국인이 만든 개념이라 뜻이 한번에 들어오지 않는건지도 모르겠다. 자기분화의 영어 표현은 'differentiation of self'다. 이 differentiate한다는 게 남과 나를 분리한다는 뜻인가보다. 내 안에서 자아를 분화시킨다기보다는. 


그러던 와중에 자기 분화를 점검할 수 있다는 표를 책에서 보고 한번 시험삼아 점수를 매겨봤다. 내가 심리학자도 아니고 내 증상을 내가 체크한다는 건 한계가 많다는 걸 나도 안다. 그래도 그걸 감안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해봤는데, 내 분화 점수는 의외로 낮았다. 중간에서 조금 낮은 정도. 아주 낮아서 심각하게 매사에 흔들리는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많이 흔들리는 수준으로 나왔다. 분화 수준이 좀 더 높으면 한마디로 '줏대있게' 살 수 있다. 다른 사람 말에 쉽게 흔들리거나 타인의 비난에 마음이 상하지 않고 나름대로 살 수 있다. 그 수준이 아주 높으면 그 사람은 아주 단단한 사람일 것이다. 


암튼 내 분화 점수가 낮은 걸 알고 눈이 번쩍 뜨인 기분이다. 그동안 내게 괴로움을 줬던 사람들, 내가 너무 애를 썼던 순간들이 막 떠오르면서 그래서 그랬구나.......... 싶었다.


일례로 나는 함께 모인 사람들이 분위기가 좀 안 좋다 싶으면 재미있는 이야기를 막 해서 분위기를 돋운다. 그만큼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의 분위기를 예민하게 감지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일부러 조금 재미있게 이야기하고 상대방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준다. 그럼 분위기가 금세 따뜻해지고 가벼워진다. 분위기가 적당히 떠올랐다 싶으면 가만히 있는다. 나는 남들 앞에서 주목받고 나서고 싶은 성격이 아니라 처진 사람이 있으면 도와주고 싶은 성격 같다.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도와줘야 한다고 느낀다. 그게 가족이나 친한 사람이면 더 그렇다.  

또 내가 피하고 싶은 주제가 거론되면 슬며시 주제를 바꾼다. 그런 불편함을 견디기가 싫어서. 

또 가족들이 내가 볼 때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을 하면 마음이 불편해서 신경이 곤두선다. 화를 내지 말아야 한다고 억누르다가 잘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다. 즉 다른 사람에 대해 책임감을 느낀다. 어쩌면 이게 가장 자잘하게 문제를 일으키는 요소였던 것 같다. 


이 정도가 내가 느낀 내 자기 분화 지수의 현실이다. 

이 얘기를 친구에게 했다. 내가 워낙 독립성이 강한 편이라 분화 지수도 높을 줄 알았는데 50점도 안 됐다고. 그랬더니 친구가 충격받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진짜 충격보다는 오랫동안 앓던 지병의 병명을 못 찾다가 드디어 명의를 만나서 제대로 진단을 받은 속시원한 마음이 들었다는 걸 미처 말을 못했네. 하하. 자기가 느끼는 독립심과 자기 분화는 반비례 관계일 수도 있고 상관이 없을 수도 있겠다. 이건 아직 모르겠는데 몰라도 상관은 없는 것 같다.


이렇게 분화에 대해 새로 알게 되니까 마음이 편해질 때가 너무 많다. 우선 남편이 뭐라고 하든 '아유, 그렇구만. 허허.' 이런 긍정적인 마음이 진심으로 든다. 알게 모르게 긴장감이 스르르 풀린다. 아직 물어보진 않았지만 남편도 이걸 느끼는 것 같다. 지금까지 내가 잘 살아보겠다고 사람들을 얼마나 괴롭힌 건지 너무너무너무너무 반성하게 된다. 진작 알았다면 좋았겠지만 이것마저도 상관이 없다. 나는 사람이니까! 


또 원불교 교당도 이제 안 다니고 싶다. 나마저 안 가면 우리 교당이 무너질까 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에 매주 일요일 거북스러운 마음으로 자리를 지켰는데, 이것도 내 오래된 패턴이 아닐까 싶다. 교당 일에 내가 잘못된 책임감을 느낀 것 같다. 물론 남 생각 안 하고 내 마음대로 해야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결정하기가 두려워서, 다른 사람이 다칠까 봐 밍기적거리는 건 해답이 아닐 것이다.


또 학원 아이들을 대할 때 마음을 쓰지 않는다. 성적이 나쁘게 나와서, 수업 시간이 늘어나서, 아파서, 공부가 힘들어서, 아이들은 매일 삐친다. 행패를 부리기도 한다. 아이들의 넘치는 에너지는 어른을 조정하는 데도 많이 쓰이나보다. 이제 그런 감정이 내 책임이 아니라는 생각을 더 많이 하고 있다. 아이들도 그런 내 태도에 따라 조금씩 변하는 것 같기도 하고. 


마지막으로 내 목표는 무엇일까, 무엇이 되어야 할까 간간이 생각해 보게 된다. 보웬 이론에서 제일 많이 나오는 단어가 불안감이다. 또 요즘 불안감은 서점에서 아주 인기 있는 단어인 것 같다. 아주 자주 보인다. 나는 안정적인 성격과 높은 자존감을 자랑으로 삼고 살았는데 사실 나야말로 불안감을 없애기 위개 즉흥적으로 결정하면서 살아온 사람이다. .... 이런 자각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모르겠다. 자기 계발서를 읽다 보면 목표를 세우라는 말을 지겹도록 본다. 나도 그때마다 이런저런 목표를 세워봤다. 그게 가능성이 있는지 나라는 사람을 얼마나 반영하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그래도 이런 생각을 좀 더 늘리다 보면 답이 나올 수도 있다. 의외의 선택으로 내가 나를 놀라게 하는 멋진 순간이 찾아올 수도 있다. 그런 기대감은 그 자체로 참 달콤하다. 


내가 참고한 책은 <가족 치료의 이해>였다. 인터넷에서도 설명이 많이 나와 있긴 한데 테스트를 해볼수 있는 사이트는 못 찾았다. 섣불리 시도하면 위험할 수도 있으니 조심하시길. 심리 치료는 전문가가 해야 하니까 말이지... 내 점수의 자기 분화 수준은 참 처참한 수준이라 다시 한번 마상이 찾아오긴 하는데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고... 또 정확하다고 해도 어쩌겠나. 내가 이런 사람인걸. 그래도 가능성이 있다니 남은 반생은 더 줏대 있게 살아야겠다. MBTI나 애니어그램과 달리 '넌 수준이 낮아'라고 해 주니까 확실히 각성 효과가 있어서 좋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