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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윈이야기 Jun 24. 2021

녀석이 이제 진짜 나를 엄마로 본다.

사랑이 깊어진다, 책임이 커진다.

"부럽네요. 다윈이는 질투가 없어요."


우리는 줄곧 이렇게 말해왔다. 

자기 보호자가 다른 강아지를 조금이라도 예뻐하면 폭풍 질투하는 강아지들이 항상 부러운 처지였다. 다윈은 우리가 다른 강아지 친구들을 좋아하건 말건 관심도 없고, 심지어 다른 보호자들에게 다가가 엉덩이까지 흔들고 뽀뽀를 해대며 격한 인사를 한다. 엄마 아빠를 향한 푸들의 찐한 애정도, 진도의 깊은 충성심도_ 잭 러셀에게는 없다. 아니, 종특이라고 일반화하기엔 무리다. 다윈은 특히 더 없다... 

덕분에 매번 우리만 질투심 폭발이다. 


"어이구, 좋단다~ 다윈 너 저 집 가서 살아!" 

 



테오네와 우리는 가끔 일이 있을 때 돌아가며 아가들을 하루씩 맡긴다. 테오는 분리불안이 없지만 다윈과 놀다가도 때때로 엄마 아빠의 부재를 인지하고, 순간순간 찾는가 하면_ 밤에는 쉽게 잠들지 못하고 엄마 아빠를 기다린다. 


"테오는 확실히 의리가 있어요. 다윈이는 저희 없어도 신경도 전혀 안 쓰고 잘 자죠?" 


"네. 그렇긴 하더라고요." 


"... " 


"에이, 다윈이가 최고죠! 엄마 아빠 편하게 일 보라고 어디서든 잘 지내주잖아요~" 


테오 엄마의 그 어떤 말도 위안이 되지 않는다. 

네 이 녀석... 

다윈은 우리를 엄마 아빠로 생각할까? 친구 엄마 아빠에게 뽀뽀를 퍼붓고, 우리에게 잘 보여주지 않는 엉덩이 춤을 추며 인사할 때마다- 저 놈은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 걸까 싶다. 밥 주고 잠 재워주는 사람? 공 던져주는 친구 정도? 아니면 따라다니면서 이것저것 시키고 잔소리하는 귀찮은 인간? 아니면 그냥_ 동거인?!?     


테오네에 다윈을 맡길 때 아쉬워 차마 발걸음을 돌리지 못하고_ '사고 치지 말고, 잘 놀고 잘 자고 있어~ 내일 만나자!' 하는대도 이미 녀석은 쌩 하고 신나게 노느라 바쁘다. 남편과 나만 '다윈 간다~ 우리 정말 갈 거야~' 해대면서 허공에다 무안한 주책을 던져 보지만_ 우리 얘기 누가 듣니?! 하. 허탈하구만.   

 


중간중간 테오 엄마가 보내주신 사진과 영상을 보며 다윈이 얼마나 잘 있는지를 보니_ 

와... 이보다 더 행복해 보일 수가 없다! 테오 엄마 아빠에게 싱글벙글 웃으며 옆에 착! 하고 붙어서는 온갖 맛난 간식을 얻어먹고 코까지 드르렁 골며 꿀잠을 자고 있다. 

집에서도 보지 못했던 세상 제일 행복하다는 헤벌쭉한 얼굴! 

나와 남편은 이미 까맣게 잊었다는 저 표정! 

이 초고속 적응력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건 질투가 아니다, 배신감이다. 

 

이렇게나 잘 자고, 잘 노는 다윈. 너무 감사한 한 편으로_ 조금도 아쉬워하지 않는 다윈을 보니, 서운함도 밀려든다.


"다윈이는 우리 없어도 잘 살 것 같아."


"다윈은 누구랑도 잘 살지. 우리가 다윈이 필요한 거지, 다윈은 우리 별로 필요 없을걸?!" 


남편의 말이 맞다. 우리가 다윈이 필요하지, 다윈은 우리가 필요 없다. 누구에게도, 어떤 것에도 얽매임 없이 쿨하기만 한 이 영혼은- 어딜 가든 누구에게든 사랑받고 잘 지낼 테니 말이다. 주 보호자인 우리에게 더 끈끈한 애정을 좀 보여줘도 좋을 텐데. 잘못된 건 아니지만, 은근히 신경 쓰인다.       



며칠 전, 하루 종일 일이 있었던 나는 다행히 평소보다 일찍 퇴근한다는 남편 덕에 늦은 밤 집에 들어왔다. 

문을 열자마자 온몸으로 나를 반기는 다윈 덕에_ 기진맥진해진 몸과 마음에 웃음꽃이 피어났다.  


"다윈 오늘 이상했어. 계속 엄마 찾으면서 놀 때도 시무룩하고, 계속 문 앞에서 기다리더라고. 잠도 계속 설치면서 왔다 갔다 했어." 


남편의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다윈이? 이런 적은 처음인데?!       

잠을 계속 못 자고 침대와 현관문 앞을 왔다 갔다 하면서, 문 앞에다 쉬야까지 했단다. 

요 녀석, 아빠가 있는대도 내가 없다고 그랬다니_ 알다가도 모르겠다. 

분리 불안은커녕, 외출할 때도 친구네 집에서도 너무나 잘 있어주는 다윈이었는데. 갑자기 이 온도차는 뭐야? 내 마음은 여태껏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_ 걱정과 감동, 안쓰러움과 흐뭇함 사이- 아니, 어쩌면 그 모두인 것 같다. 

아빠를 기다리며 깊이 잠들지 못하는 다윈. 커갈수록 마음이 깊어지는 녀석을 보니_ 우리도 많은 것을 느낀다.

 

다윈이 이제 진짜 나를, 우리를 엄마 아빠로 본다. 아니, 예전부터 그랬겠지만_ 다윈이 자랄수록 더 깊은 사랑과 마음을 보여준다. 사람이면 모두 좋아했던 녀석이, 우리 둘을 더 온전히 가족으로 느끼는 것 같다. 우리는 그런 다윈에게서_ 아직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던 감정과 책임감을 배운다. 우리는 모두 자란다. 다윈 덕분에 우리가 진짜 부모가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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