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윈이야기 Aug 31. 2021

두 살이 되었습니다.

이대로만 있어주면 돼

"보자, 보자... 꿍이네는 온 가족이 여행 가서 사진 찍고 왔고, 다른 친구들은... 

 와~ 엄마 아빠들이 한상 차림 제대로들 해주셨네!" 


"다윈! 너 곧 생일인데, 뭐 하고 싶어?!?" 



... 갸우뚱? 갸우뚱?!!? 



곧 있으면 다윈의 두 살 생일. 

남편과 나는 생일이 비슷하다. 그래서 우리의 생일은 언제나 묶어서, 한방에 기념해왔다. 다윈을 만나기 전까지는 우리 집에서 제일 큰 이벤트였다. 하지만 다윈의 생일까지 우리와 별로 멀지 않으니- 우리 세 가족의 생일은 결국 하루로 합쳐지게 됐다, 다윈의 생일날로 말이다. 다윈의 생일을 어떻게 보낼까에 대한 계획이 한 해 이벤트 중 가장 즐겁고 중요한 것이 되었달까. 


자, 우리 세 가족. 올해는 어떻게 보낼까?! 


나는 얼마 전부터 일러스트를 배우기 시작했다. 연애할 때조차 유치하고 촌스럽다며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커플티를 만들기 위해서다. 물론, 다윈을 모티브로!    

꽤 재미난 프로젝트가 되었다. 다윈을 캐릭터화하고, 우리 가족만의 모토를 티셔츠에 새겨보기로 했다.


"왜 그거 있잖아, 영화 <샤이닝>에서 잭 니콜슨이 했던 대사! 그거 잭 러셀 키우는 외국인들은 재미로 많이들 쓰던데, 그거 우리 집 모토로 하기에도 딱이지 않아?"  


"뭔데?" 

All day work with no play, makes Jack a dull boy.


소름 돋게 무서운 얼굴로 일만 하고 놀지 않으면 바보가 된다고 외치는 잭 니콜슨의 대사. 

딱이다! 이거야!     



"근데.. 다윈 선물은?"


"...


30여 년을 컴맹으로 살았던 아날로그 인간이 손그림이 아닌, 컴퓨터로 그림을 그려보겠다며 몇 날 며칠을 끙끙대고 있는데-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남편 녀석은 툭. 하고 또 미션을 던져준다. 아주 고오~맙습니다!! 


서둘러 '강아지 케이크'부터 검색해본다. SNS에서 봤던_ 요즘 가장 핫하다는 강아지 얼굴 케이크를 주문하기엔 너무 늦었다. 당장 급한 대로 여기저기에서 수제 간식들로- 우리도 한상 차림을 차려줘 볼까 하다가 결국 마음을 접었다. 


케이크도 내가 만들어주지, 뭐.


닭가슴살을 베이스로 단호박, 그리고 자색 고구마 가루를 섞어 삼색 케이크층을 만들고- 

그 위에는 두부를 믹서에 갈아 생크림처럼 데코레이션을 한다. 

열심히 만들었건만, 해놓고 나니 또 별 것 없다?! 게다가 결국 선물은 뭐 해주지?! 

에이 몰라! 나중에 간식 더 사줄게! 


오늘의 주인공! 맛있게 먹어줘서 고마워!

1년에 한 번뿐인 다윈의 생일, 아니 우리 온 가족에게 특별한 날이 다가왔다. 

지난 3개월 동안 유튜브와 강의까지 들어가며 그렸다 지웠다 한 끝에! 

마침내 그려낸 티셔츠도 예쁘게 나왔고, 홈메이드 케이크도 만들었으니_ 사진까지 셀프로 찍어보기로 했다. 


해놓고 보니 깨닫는다. 

우린 왜 이렇게 귀찮고 힘들게 가는가! 


"하지만 이런 게 재미잖아. 우리만의 스타일이기도 하고!" 

     

그래, 이런 게 추억이지. 

남편은 가성비가 좋은 동네 스튜디오를 대관했다. 그리고 렌즈와 삼각대를 챙긴다.   



다윈은 여느 날과 다름없다. 분주하게 짐을 챙기는 우리를 보고 갸우뚱 대면서도 '어디 좋은 데 가는 거야?' 하하면서 남편과 나 사이를 왔다 갔다_ 덩달아 신이 났다. 

   

우리 가족이 올 해 가장 행복한 날! 매일을 생일처럼 즐거워하는 다윈처럼 우리도 그렇게 살아갈 수 있다면. 

 

올해도 가족사진을 남겼다. 다윈의 첫 돌에는 그저 다 같이 사진 한 장 찍어보자는 의미였지만_ 나름 우리 집만의 전통이 되면 좋겠다 싶다. 다윈의 단출한 생일상도, 우리의 티셔츠도, 가족사진도- 오롯이 우리만의 정성과 마음을 가득 담아_ 우리 가족만의 스타일로 기념하는 특별한 날.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반짝이며 타오르는 촛불 앞에 앞으로를 소망해본다. 

서로에게 감사하다고, 행복하다고, 앞으로 다가올 날들에 촉촉해진 마음을 품고 다시금 설레어 본다.  

하지만 다윈은 매일 같다. 그저 같은 날들 중 하루일 뿐이다. 

그래서 다윈은 매일 행복하다. 매일 똑같은 간식에도 격하게 기뻐하고, 하도 물어뜯어서 다 헤진 공에도 신난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항상 기뻐 웃어준다.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됐다고, 매일이 생일인 듯이 온몸으로 행복해한다.          

 

매일매일이 그저 행복한 댕댕이. 생일 축하해! 지금처럼만 언제나 함께 해주렴! 


매일이 특별한 날인 것처럼, 또 특별한 날도 그저 여느 날과 다름없이 살 수 있다면 좋겠다. 

이 한 마리의 작고 따뜻한 강아지처럼, 매일 감사해하며- 또 매일 무던하게, 그렇게. 

매거진의 이전글 개육아에휴식기란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