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ece 2.
아즈란
이번 달, 레이는 아즈란에 먼저 출장을 가게 되었다. 아즈란은 사막에 건물을 세운 도시이므로 하늘에서 떨어지는 작은 솜뭉치와 닿으면 스며드는 결정체가 그들에게는 어떤 의미가 될지도 알 수 없을 정도로 눈이 내린 역사가 얼마 되지 않는데, 한 세기만에 눈이 내렸고, 레이는 이 아즈란에 파견되었다. 눈사람으로서는 최초일 것이다. 레이는 단단한 몸과 추운 기온에도 가벼이 버틸만한 외투를 입었다. 그리고 그의 작은 눈과 여리한 입술, 뾰족한 코는 단연 그를 돋보이게 했다. 레이가 당도한 알파시는 혼란, 쾌락, 공포, 환희, 모든 감정이 뒤섞인 상태였다. 이 도시는 쌓인 이 무겁고도 얼어버린 흰색 도화지를 치우는 방법을 몰랐다. 아니, 그 누구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다. 그래서 누군가는 눈 위를 맨발로 자유롭게 뛰어다니고, 누군가는 재앙이라며 집에서 지친 눈을 뜨고 지새며 이 불경한 것이 언제 사라질지 바라보는가 하면, 누군가는 레이를 향해 손가락질하지만, 누군가는 레이를 향해 기도하고 자신들의 신을 불러냈다. 혹자는 레이를 만져보고 눌러보고 행복한 미소로 바라보는 반면, 어떤 이는 이 흉물이 무엇이냐며 그의 다리를 발로 차거나 머리에 상처를 내기도 했다. 레이는 다소 복합적인 환대 혹은 차별, 그들의 기쁨과 슬픔, 격정과 절정을 떠안으며 그저 웃을 뿐이었다.
뉴컴
아즈란에서 돌아온 레이는 이번엔 뉴컴으로 출장을 가게 되었다. 뉴컴에는 적어도 일 년에 한두 번씩은 눈이 왔다. 뉴컴은 이 상황에 익숙했고, 눈사람 레이도 이곳은 처음이 아니었다. 이 도시에는 레이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에게 상냥하게 먹을 것도 쥐어주기도 하며, 활기찬 인사와 악수를 청하는 이들도 더러 있었다. 어린 꼬마아이는 그의 머리에 난 상처를 가려주기 위하여 모자를 가져다주었다. <레이 아저씨, 모자 선물로 드릴게요.> 그녀가 건네준 그 모자는 레이의 검은 눈처럼 검은 배경에 빨간색 테두리를 한 중절모와 비슷했다. 레이는 말 대신 미소로 감사를 대신했다. 베타시는 눈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그들만의 축제이자 하늘이 내려준 꽃을 소중한 선물로써 포용했다. 시민들의 눈에는 향기와 노랫소리가 가득했으며, 도시에는 레이처럼 출장 온 눈사람들이 주변을 여유롭고 행복하게 즐기고 있었다. 레이는 이 도시의 아름다운 온정과 낭만을 떠안으며 그저 웃을 뿐이었다.
에볼든
레이는 에볼든을 유독 꺼렸다. 레이뿐만 아니라 다른 눈사람들도 이 도시는 피하고 싶어 했는데, 에볼든은 일 년에 6개월 이상 눈이 오는 도시였다. 도시의 사람들은 눈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고, 눈을 인지하고 있었으며, 익숙하다 못해 지겹도록 눈을 봐왔다. 그래서 에볼든의 거주민들은 눈이라는 것을 함께 살아가야 하는 존재라고 인식을 하면서도, 은연중에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시선을 속절없이 내리는 눈처럼 쌓아온 것이다. 레이가 도착한 날은 모든 인류가 추위와 별개로 치유하는 날개를 단 산타와 요정들의 날이었음에도, 예고 없이 찾아온, 아니 어쩌면 내리기로 예정되어있었을 눈에 치를 떨며 자신의 옷이며, 구두며, 차며, 가방이며, 그것이 묻지 않도록 밀쳐내어 버리는 것이었다. 레이를 대하는 방법과 방식도 비슷했다. 그를 피하는 것은 다분한 일이며, 지나가면서 그의 작은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는가 하면, 조그만 목소리로 그의 기괴한 얼굴을(그들 기준에서) 읊조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내색하진 않지만, 그동안의 수많은 조우 속에서 눈이라는 존재를 대하는 방식을 그렇게 터득한 것이었다. 레이는 늘 그렇듯, 그저 그들을 향해 웃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