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곰자 Feb 12. 2024

상냥한 폭력의 시대

정이현

P97

‘내가 잠시 한눈을 팔아도 세상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 또다시 살아가기 위하여 나는 바다 쪽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를 뗐다.‘


세상 속에 나는 그다지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몇번이나 깨닫고 나면 그때부턴 세상이 아닌 나에게 집중하게 된다. 세상에 나를 내세우는 법이 아닌, 타인에게 나를 납득시키려는 노력이 아닌, 그냥 내가 행복할 수 있는 법. 내가 한순간만 더 편안할 수 있는 법. 소확행이 주는 너무 큰 행복을 찾아나선다. 조금 더 겸손해지고 조금 더 작아지고 조금 더 별 것 아닌 존재로 살아갈 힘을 얻는다. 내가 세상에 어떤 존재로서 있지 못해도, 내가 세상에 그다지 중요한 인물은 아닐지라도, 우리 곁엔 애정하는 사람이 있고 가족이 있고, 아껴줄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

세상이 우리를 알아보지 못한다해도, 내가 잠시 한눈을 팔아도 세상엔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해도, 내 눈짓에 반응해 줄 단 한사람을 만들어가는 것이 삶이 아닐까, 라고 생각하는 연습을 해본다.

단 한사람만을 만족시키기에도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그것에서 평생 얻을 뿌듯함은 다 얻을 수도 있다는 걸 알아가기도 한다.


여전히 세상은 우리에게 관심이 없다. 무신경하고 냉소적이다. 우리 모두가 그렇다. 그래서 우린 각자 세상에게 기대하지 않는 법을 기르며 살아가기로 한다. 우린 세상에 주인공이 아니다. 그냥 개인이고 어쩌면 잃어버려도 좋을 부품일지도 모른다. 갈아껴도 좋을 도구일수도 있다. 낡아도, 쓸모없어져도, 아무도 모를 개체일수도 있겠다. 그러니 절대 누구 앞에서도 대단해질 수 없다. 그러니 절대 누구도 하찮아질수도 없다. 그게 인간이든 동물이든 어떤 생명체든. 그냥 우린 각자의 영역 속 존재들을 만족시키며, 그들을 보살피며 살아갈 뿐이다.

우리 안의 천사는 아마 그런 순간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작가의 이전글 오늘도 수고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