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잘 외면하느라.
살아갈 때 필요한 건 외면일까. 불편하고 지루하고 슬프고 힘든 건 계속 외면하다보면 정말 없는 것 처럼 될까. 단지 감성적인 성향이라 유독 예민하게 느끼는 걸까. 예민하지 않은 사람은 정말 인생이 늘 산뜻하고 말끔할까.
진지한 게 올바른 것이라 생각하며 살았는데 다들 진지해지지 못해서 외면하길 선택한 게 아니라, 끝 없는 진지함에도 답이 나오지 않아 다른 선택지를 골라 살아가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어차피 하루 이틀만 고민하다 살다 가는 게 아니기에 이 지루하고 외로운 날들을 버텨내려면 우린 나름대로 방법들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삶이 그렇게까지 나쁘고 서늘하진 않을 거라는 착각, 그래도 소소한 행복으로 내가 직면한 아픈 부분들을 다 가릴 수 있다는 망상. 이런 방법들 말이다.
어쩌면 아주 예쁜 포장지에 못나고 볼품없는 삶의 이면들을 담아 절대 열어보지 않고 살아가는 중인지도 모른다. 끝내 열어볼 일이 없도록. 꼭꼭 눌러 담으며. 무의식에, 기억 저편에, 마음 속 깊은 곳에.
간혹 포장지에 넣어두었던 내용물이 삐져나오면 우린 그것을 외면하기 위해 폭식을 하거나 술을 마시거나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그나마 그런 것들과 마주할 힘이 남은 사람은 살짝 울기도 한다. 가장 최악의 방식으로 외면하려는 사람은 자기자신과 남을 헤치기도 한다.
세상이 감정에 무뎌지지 않길 바란다. 우리가 아무리 돈을 좇고 돈만으로 뭐든 다 할 수 있을거라 믿고 비교를 통해 안정감을 찾는 것에 혈안이어도 또, 나와 다른 존재를 배재하고싶은 쾌감에 가끔 젖는다해도, 약자를 보고 안타까워하지만 내가 그런 입장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은근슬쩍 안도를 하는 삶이라 해도,
우린 모두 느낀다. 외로움을, 고독을, 해결되지 않는 불안을, 쾌락 밑에 놓인 삶의 서늘함을. 가정이라는 울타리가 만들어준 안정감 뒤에 있는 각자의 비밀스러움을. 우리가 외로워 이것저것 만들어 낸 제도 밖에는, 인간으로선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삶의 ‘불안’이 있다. 아니 어쩌면 도사린다.
우린 모든 걸 할 줄 아는 어른이 된 것처럼 행동하지만 직장에서 누군가 준 눈치 한 번에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과의 자리에서 내 입지가 비교되는 상황에 얼굴을 붉히기도 한다.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싶은 지인에게조차 그와 비슷한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면 자신있게 나서지도 못하는, 바보같은 사회인으로 살아갈 수도 있다. 집에 와 기울이는 술잔과 공허한 유튜브 소리만이 우리를 위로하는 작은 만찬이 되는 날이 빈번할 수도 있다. 우린 그런 감정들을 다루어내는 법을 잘 모른다. 배운 적도 없고 배우는 것 또한 지친다.
그렇게 잠시 외면하고 나면 다시 견고해 보이는 어른으로서, 세상엔 기쁘고 재밌고 즐거운 것만 있는 것처럼 행동할 수 있는 그런 어른으로서 집을 나선다. 모두가 착각하길 바라고 서로의 착각을 모른 척 해주며 살아가길 바란다.
이런 거짓마저 모두가 갖고 있다 생각하면 위로가 될까. 혼자 갖고 있는 거짓이 아니라서. 모두가 때에 따라 거짓을 선택할 수 있는 인간들이라서. 완벽히 행복한 인간은 없다는 걸 알아서. 그래서 늘 잘 외면을 하는 사람처럼 살아가고 있다는 것 또한 알아서. 차라리 이것이 공허한 유튜브 소리보단 좀 더 근사한 만찬이 되어줄지도 모르겠다.
모두가 적당히 외면하고 적절히 다루어낼 줄 아는 사회인이 되길 바란다. 우리 모두가 알지만 모두가 외면하는, 우리 모두의 마음 속 그런 비밀스러움들을 말이다. 어차피 우린 잘 속아주는 어른들일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