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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자 Dec 20. 2023

인간이 죽을때까지 버리고 싶지 않아하는 것.

본능.

인간한테서 빼앗을 수 없는 것. 차, 집, 직업, 외모, 옷, 때에 따라 학력이나 집안까지. 우린 이런 것들을 각자의 ‘노력’을 볼 수 있는 지표라 여긴다. “‘노력’으로 얻은 것들이니 무조건 허영심에 나온 사치품으로 보거나 한심하게 봐선 안 된다. 저런 지표로 상대를 가늠하고 우위나 열위를 빠르게 파악하려는 심산은 ‘인간 본능때문에 어쩔 수 없는‘ 거다. 라고 믿는다.


사실 ’어쩔 수 없지‘ 않다. 그냥 그러고 싶은 거다.ㅋ 뭐든 어떤 지표로든 만들어내서 ’비교‘하고 싶은 거고, 갖잖은 한 두 단계라도 상대보다 더 위로 올라갈 수만 있다면 거짓말이라도 해내고 싶은 거다. 우린 이런걸 경쟁이라 부르며, 자존심 싸움, 혹은 기싸움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상대는 아무 생각도 없는데 혼자 먼저 겁을 먹고 우위에 서려고 한다. 아마도 낮은 자존감때문인 듯 싶다. 변화하고 비교하는 환경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되는 약한 자아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나부터 끊으면 된다. 나부터 그냥 나에게만 집중하면 된다. 나부터 도움이 필요한 존재들을 도우면 된다. 그럼 주변 인물들도 아주 조금씩이지만 서서히 바뀐다. 물론 상대가 바뀔 것을 바라고 행동하면 안 된다. 그런 노력은 결국 오래 가지 못한다. 그냥 생각이 바뀌면 된다. 남은 생은 한 번 흔들리지 않아보겠다고, 생각해보면 된다. 그리고 그 생각을 꾹꾹 눌러 담고 살면 된다.


우린 자존감들이 너무 낮다. 전부 다 낮다. 그냥 낮은 사람들끼리 비교하고 경쟁하며 아웅다웅 살아간다. 누구도 조금 더 낫다고 할 수도 없다 요즘은. 그냥 다 아프고 병들어갈뿐이다.


돈이 많고 여유가 있다고 아프지 않은 것도 아니다. 어차피 낮은 자존감에서 출발해 경쟁과 우열비교로 얻은 결과는 그 사람에게 ‘불안’과 ‘우월하고 안락한 자리를 빼앗기지 않겠다’는 허영을 불러올뿐, 자신의 노력으로 얻은 것들 두고 뿌듯해하며 약간의 인격적 성장을 느낄지 모르나 찰나일뿐이다. 그 이후엔, 그 성스러웠던 노력이 하나의 ‘감투’로 바뀐다. 상대와 나를 비교하고 저울질하는 데 편리하게 쓸 수 있는 감투로.

낮은 자존감을 메꾸려 갈아 넣은 노력과 그로인해 얻게 된 성취는 결국 낮은 자존감들끼리의 싸움으로 번진다. 성장했고 성취했다해도, ‘불안’만 남는다.

이젠 불안끼리의 싸움일뿐.

어디에도 평화는 없다.

우리가 평화라 일컫는 것도 이런 환경에서 또 ’이기기‘ 위해 도피처로 선택한 유토피아일 뿐.

5분간의 명상으로 얻어 낸 ‘가짜 평화’와 무너진 자존감을 메꾸려 평생을 경쟁해서 얻어 낸 ‘불안안 성취.‘ 그 무엇도 내것이 아니다.

우린 그냥 세상에 나와있는 가공품들을 몸에 걸치고 향유하며 내것이라 믿고 살아갈뿐.

이렇게 나라는 소멸되고 죽음만을 향해 갈 뿐.

모두가 같은 욕망과 같은 행복을 ‘만들어’가며 그것이 정말 정답이고 진정한 행복이고 소소한 평화인 듯 서로를 세뇌시키고. 물론 대안은 없다.

그러니 결국 정답은, ‘어쩔 수 없어. 모두가 이러고 살아. 이게 사회화야. 대놓고 피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내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가장 안전한 방식은 남들이 하는대로, 하지만 남들보단 조금 더 ‘낫게’ 사는 것 뿐이야. 너도 똑같은 사람이잖아. 아닌 척 하지마.‘ 라는 대사다.


근데 웃긴 건, 어떤 순간엔 정말 그렇게 안 살고 싶은 사람도 분명 있다는 거다. 분명. 모두가 다 자기와 같은 욕망을 가지고 자기와 같은 ‘위계’를 꿈꿀 것이란 착각은 말자. 인간의 본능은 위계를 꿈꾸고 있다해도 그 본능을 거슬러서 살고 싶어 노력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잊지말자. 결국 누군가와의 ‘차이’는 ‘본능대로 살고싶어 하느냐’ 와 ‘ 본능과는 다르게 살아보고 싶어하느냐’ 에서 나온다는 것. 본능이 있다는 것마저 부정한다고 퉁쳐버리진 말자. 본능이 있는 걸 부정할 순 없다. 그냥 그대로만 살고싶은 건 아닌 사람도 있는 거지…


어차피 그들은 모두가 다 같은 욕망과 같은 꿈을 가지고 산다고 믿어야 자신들이 안락해질테니… 그렇게 믿고 ’싶어‘서 본능을 꾸역꾸역 되살려내는 걸지도… 모른다.

어쩌면 본능이어서 어쩔 수 없는 게 아니라, 어쩔 수 없고 ‘싶어’서 본능을 붙들고 사는 걸지도 모르겠다. 뭐 그것마저 본능이라면 할 말은 없겠다만…


걍 자기 할 일이나 하다가 대충 살다 가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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