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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unnun Sep 24. 2020

아이가 핸드폰 달라고 조를 때, 어떻게 하시나요?

갑자기 브런치 글의 말투를 바꿨습니다. 


왜냐하면 이 글은 특별히, 당신이 읽어 줄 것을 기대하고 쓰였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삼십 대 혹은 사십 대의 평범한 한국 사람일 테지요. 이미 한두 명의 아이를 둔 엄마일지도 모르겠네요. 혹은 하루에도 몇 시간씩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않는 십 대 자녀 때문에 골머리를 썩고 있는 아빠일지도요. 아침에 눈뜨자마자 핸드폰부터 확인하는, 밥을 먹을 때도 쉬지 않고 메시지를 체크하는 그런 당신일 가능성이 큽니다. 지하철을 타거나 길을 걸을 때도 손에는 항상 핸드폰이 쥐어져 있을 거고요. 저와 당신, 대부분의 우리들이 그러하듯이 말입니다.  


저는 아홉 살, 세 살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여러 가지 어려운 점들이 있었지만, 그중에서 가장 힘든 것은 아이들에게 영상을 보여주지 않는 일이었어요. 물론 가끔씩 보여줍니다. 큰 아이가 조금 크고 나서는 일주일에 한 번씩 일요일에 다 같이 영화를 본다거나 (아르헨티나에 살았기 때문에) 한국어를 거의 쓸 기회가 없는 아이에게 한국 만화영화를 가끔 보여준다거나 했었죠. 


역설적이게도 저희 부부는 영상 제작하는 일을 합니다. 


저는 한국에서 방송영상을 전공했고, 남편은 아르헨티나에서 영화를 전공해서 촬영과 편집 일을 하고 있어요. 평생 영상과 관련되지 않은 일을 한 적이 없기 때문에 아이들은 언제나 카메라, 컴퓨터에 둘러싸인 엄마 아빠의 모습을 보고 자랐습니다. 하루에도 몇 시간씩 컴퓨터 앞에 앉아 편집을 하는 아빠의 굽은 등을 보는 것은 아주 일상적인 일이죠. 


잘 안 보여준다고 아이들이 동영상을 찾지 않느냐,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비 오는 날, 밖에 나갈 수가 없는 상황이면 집 안에서 사부작사부작 놀다가도 슬그머니 조르기 시작합니다. 만화 보고 싶어, 옥토넛 보고 싶어, 징징거리기 시작하죠. 이럴 때 한번 보여줬다가는 비 오는 날마다 아이들의 요구가 반복되기 십상입니다. 안 보여준다고 하면, 저번에는 보여줬지 않냐며 룰을 어긴 엄마의 허용을 빌미로 잡고 조르기가 시작되는 것이죠. 


저희 가족은 아르헨티나에서 살다가 캠핑카로 여행을 시작한 지 일 년 반 정도 되었습니다. 전기도 부족하고 와이파이도 항상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핑계로) 아이들에게 영상을 보여주지 않는 생활이 오히려 쉬워졌죠. 늘 바뀌는 생황 환경과 여행이 주는 분주함 때문에 아이들도 영상을 보겠다고 조르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몇 주 동안 함께 동행을 하게 되었던 한 가족 때문에 저희 집에도 불똥이 튀게 된 일이 있었어요. 그 집은 아이가 둘이었는데 어렸을 때부터 항상 자기 전에 만화영화를 한편씩 보여줬던 것이었죠. 만화를 안 틀어주면 아이들이 잠을 안 잔다고 그 집 엄마는 이야기했습니다. 매일같이 만화영화를 원 없이 보는 그 집 아이들을 보고선 큰 아이가 나름 강력하게 항의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집 아이들은 숨 쉬듯 자연스럽게 누리는 것들을 컨트롤하려고 했을 때, 아이들의 반발은 생각보다 큽니다. 당연하죠. 모두가 누리는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다는 억울함이 들 테니까요. 영상을 얼마큼 보느냐 하는 것은 가족마다 가치관에 따라 다른 것이고, 많이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설득을 억울한 아이가 곱게 받아들일 리 없습니다. 그럴 때는 더 이상의 긴 설득 없이 가족의 룰을 흔들리지 않고 고수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아이들이 밥을 먹을 때, 자기 전에, 혹은 심심해할 때 유투브를 보여주고 싶은 유혹을 거부하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평화롭고 안락한 선택인지 모르는 것도 아니구요. 하지만 아이들이 심심해한다고 해서, 징얼거린다고 해서 우리는 설탕 범벅의 불량식품을 항상 입에 물려주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핸드폰과 태블릿을 아이들 손에 쥐어주는 것이 불량식품을 입에 물려주는 일만큼 아이들에게 해롭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않는다는 것에 있죠. 


여행을 하기 전엔 시어머니와도 이런 문제로 몇몇 갈등이 있었습니다. 방학이 되면 큰아이는 시댁에 가서 혼자서 일주일씩 지내다 오곤 했었는데, 시어머니 댁에는 핸드폰 외에도, 태블릿, 노트북 심지어 대형 텔레비전이 방마다 설치되어 있었죠. 텔레비전 리모컨은 언제나 아이 손에 자유롭게 쥐어졌고, 태블릿을 써본 적도 없는 아이가 게임을 혼자 다운받아 아주 재밌게 즐기고 있더군요. 


저희 부부가 아이에게 디지털 기기를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계신 시어머니지만 부모의 가치관을 따라 줄 생각은커녕 아이 입단속을 하기 급급했습니다. 손주가 원하는 것을 원 없이 주며 최고의 할머니가 되고 싶은 마음은 이해가 되긴 합니다만.

 

아이가 아무리 원해도 하루에 몇 시간씩 화면을 보게 놔두는 것은 안된다고 이야기를 하면 시어머니는 오히려 당당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도 어렸을 때 텔레비전, 컴퓨터 끼고 살았지만 문제없이 잘 컸다." 


아이들이 디지털 기기를 끼고 사는 것이 그리 유익하지 않다는 생각에는 누구나 동의하실 것입니다. 어떤 부모도 아이들에게 핸드폰 하나 던져주고 방치하고 싶지는 않을 거예요. 단지, 시간이 없어서, 여유가 없어서, 아이들이 너무 원해서, 노는 방법을 몰라서, 라는 수많은 이유와 핑계들이 문제의식을 희석해 버리는 것이죠. 


적당히 보는데 뭐 큰 문제 있겠어?

우리도 텔레비전 많이 보고 자랐잖아?

나쁜 컨텐츠도 아니고 아이들용 만화 보는 건데 뭐 어때?

하는 생각이 우리 안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시간도 없고, 여력도 없고, 의지도 부족한 상황에서 아이들이 짜증내고, 사람 많은 데서 뛰어다니려고 한다면 아무리 핸드폰을 쥐어주고 싶지 않던 부모라도 결국 유투브에 아이들을 위탁하는 선택을 하고 말죠. 그것이 갈등을 피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유일한 해법으로 보이기도 하니까요. 


교육 동영상, 교육적인 프로그램이라는 유혹 또한 상당히 달콤합니다. 어차피 안 보여주지는 못하는 상황이니 그나마 건전하고 유익한 컨텐츠를 보여주는 것을 차선책으로 선택하는 분들도 많으실 겁니다. 게다가 아이들이 동영상을 보고 나면 노래도 따라 부르고, 영어 단어도 말하는 것을 보면 더욱 능동적으로 사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죠. 


물론 가르쳐 주고 싶은 주제가 있거나 아이들이 흥미로워하는 내용이 있는데 주어진 자료가 부족할 경우 인터넷과 동영상을 활용하는 것까지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넓은 의미에서 보면 그러한 디지털기기의 사용도 지식 형성의 기본 토대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최대한 피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녀들에게 (특히 유아와 초등학생 나이의 아이들에게) 디지털 화면을 되도록 보여주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도 어렸을 때 텔레비전 많이 보고 자랐잖아요. 아마 식사할 때 뉴스든 드라마든 항상 텔레비전을 켜 두는 집들도 흔했을 것입니다. 일요일마다 디즈니 만화동산이나 장학퀴즈를 보는 것은 꽤나 중요한 일과였죠. 


그런데 그때의 텔레비전과 현재 우리가 보는 유투브는 매체의 존재 목적과 운영 방식 자체가 다르다는 것은 짐작되실 겁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컨텐츠에 대한 최소한의 규제가 존재하지만 현재 인터넷 환경은 그러한 규제가 거의 전무하죠. 텔레비전에서는 각각 프로그램이 시청자의 충성도와 높은 시청률을 유도할 뿐 유투브 처럼 한 사람 한 사람의 취향을 저격해서 장시간 붙들어 두는 일은 불가능했었구요. 


물론 텔레비전도 프로그램 사이에 예고를 집어넣는다거나 프로그램 길이를 조정하는 식으로 (경쟁사 드라마보다 십분 길게 만들어 드라마가 끝나 채널을 돌리는 시청자를 잡아둔다던지) 사람들을 보다 긴 시간 시청하게 만들려는 의도가 있습니다. 그러나 유투브 알고리즘이 내가 흥미 없어하는 영상은 걷어내고 확실히 좋아할 만한 컨텐츠를 무제한으로 공급해주는 것과는 비교할 수가 없겠지요. 


아이들은 예전에 우리들이 그랬듯, 디즈니 만화동산이 끝나면 더 이상 재미가 없어 밖으로 나가 다른 놀이를 찾는 대신 끝없이 이어지는 동영상의 향연에 갇히게 될 가능성이 훨씬 큰 것입니다. 


폭력적이거나 선정적인 컨텐츠가 아니라면, 소위 말해 교육적인 내용들을 보는 것은 괜찮지 않느냐 생각하실 겁니다. 아이들이 디지털 기기를 부모의 통제 하에서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더라도 디지털 기기를 쓰면서 얻는 만족감에 점점 길들여지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습니다. 


아이들이 심심하다는 이야기를 참 많이 하죠? 주의력 결핍 장애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산만한 아이들도 핸드폰 하나 쥐어주면 세상 얌전해집니다. 오늘날의 아이들은 크고 작은 화면 앞에서 춤추고, 까르르 웃고, 말을 배우고, 이미지로 세상을 접합니다. 


제가 아이들에게 영화 제작 수업을 할 때 하는 간단한 활동이 있는데요, 


세 장의 사진이 놓여 있습니다. 하나는 무표정한 아이의 얼굴이 찍힌 사진이구요, 먹음직스러운 케이크가 찍힌 사진과 무서운 어른의 얼굴 사진도 있어요. 


아이들에게 케이크 사진을 보여주고 아이 얼굴 사진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아이의 기분이 어떤 것 같냐고 물어보죠. 아이들은 사진 속의 아이가 행복하다고 대답합니다.


그리고 무서운 표정의 어른의 사진을 보여주고 이어서 아이 얼굴 사진을 보여줍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사진 속의 아이가 겁을 먹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하지요. 


간단한 예를 말씀드렸지만, 이것이 바로 편집이라는 것의 원리입니다. 영상에는 현실과는 다르게 편집이라는 작업이 있기 때문에 '의도'대로 '선택'해서 내러티브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죠. 사진 속 아이는 무표정이지만 함께 붙는 이미지에 따라 행복해 보이기도, 겁에 질려 보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영상에는 의도가 들어 있습니다. 아무리 중립적으로 보이는 뉴스나 다큐멘터리도, 아무런 의도도 없어 보이는 아기들이 보는 동영상에도 누군가의 메시지가 들어 있어요. 동영상을 본다는 행위는 누군가의 메시지를 끊임없이 흡수한다는 뜻입니다. 이미지 너머에는 누군가의 의도가 항상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않으면 우리는 수많은 가짜 뉴스와 편향된 정보에 휘청거릴 수밖에 없습니다. 


어린 나이에 세상을 직접 경험으로 부딪히고 해석하고 반응하고 손으로 만지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의도된 (혹은 조작된) 정보들을 스스로의 가치관으로 해석할 수 있는 기본기를 길러주기 때문입니다. 


심심함을 해결하는 일, 즐거움을 얻는 일이 플레이 버튼을 누르는 일처럼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아주 어렸을 때부터 훈련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클릭 한 번이면 오색 찬란한 동영상의 향연이 펼쳐지고 그것으로 무료함을 순식간에 해결할 수 있음을 한 번이라도 경험한 아이들은 그만큼의 자극이 없는 상황을 점점 견디기 어려워하죠. 


아이 둘을 돌보면서 제가 느낀 것은 적당히 보여주는 것이 아예 보여주지 않는 것보다 훨씬 어려웠다는 사실입니다. 아이들은 엄마 아빠가 확고하게 안된다고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것에는 더 이상 토를 달지 않습니다. 몇 번 항의를 할 수도 있겠지만 긴 시간 징징거리지 않아요. 오히려 상황에 따라 허용을 했다가 안 했다 하는 경우에 아이들은 더욱 고집을 부리고 떼를 씁니다. 좀 더 보채면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죠. 


혹시 당신이 아이들과 매일 핸드폰, 태블릿 사용 문제로 협상을 하고 있는 부모라면,

아이들에게 디지털기기를 주고 싶지 않지만 시대에 뒤처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하는 분이라면,

문제가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별다른 대안이 없어 소신이 흔들리는 분이라면, 


소셜딜레마(The Social Dilemma)라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를 꼭 한번 보시길 추천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aaC57tcci0&frags=pl%2Cwn

청소년들과 부모들 모두 함께 필히 봐야 할 다큐멘터리

구글 전 개발자, 인스타그램 초창기 창립자, 페이스북 직원 등 내로라하는 소셜미디어 업계의 전문가들의 인터뷰로 이루어진 다큐멘터리입니다. 저 같은 별 볼 일 없는 영상 제작자가 하는 말보다 전문가들이 직접 경고하는 메시지를 듣는다면 확 와 닿으실 거예요. 우리 아이들이 경계 없이 사용하고 있는 소셜미디어들의 본심이 어떤 것인지, 우리는 그 프로그램들을 돈 주고 사용하지 않는 대신, 우리 스스로가 그들의 상품(Product)이 되어 이익을 창출하는데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게 되실 겁니다. 


청소년기에 아이들이 핸드폰에 중독되는 것을 막으려면, 두세 살 때부터, 어쩌면 유년기를 통틀어 부모들의 강경하고 적극적인 의지가 필요하다는 것 또한 느끼실 거예요. 위험한 인터넷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한다는 생각은 어쩌면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나가되 어린 시절에는 디지털 기기와 최대한 멀어지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 그것이 고민의 핵심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사실, 오늘도 오전 내내 아이들과 지내다가 한번 버럭 했습니다. 두 아이를 앉혀 놓고 만화영화 한 편 틀어줬다면 저도 여유롭게 커피 한잔 홀짝거릴 수 있었겠죠? 


유혹은 매일 있지만 오늘도 다짐합니다. 


종종 아이들에게 솔직하게 푸념합니다. 엄마가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가끔 버럭 하는 엄마를 조금 이해해 달라고, 매일 상냥하지만은 않은 엄마지만 너희를 컴퓨터 화면 앞에 방치하지는 않겠다고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이야기합니다. 


저에게는 아이들이 화면 앞에서 미동도 없이 얌전하게 앉아 집중하고 있는 모습만큼 슬픈 장면이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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