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은 한국에서
거침없이 흔들리며 보낸 일 년이었다.
2021년은 일기장에서 사라진 시간, 어디에도 기록되지 못한 시간이다.
2020년 파나마에서 국경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일 년을 보내고,
2020년 11월, 캠핑카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기적적으로, 고장 난 캠핑카를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2020년 파나마의 마리에따 집에서 보낸 크리스마스를 끝으로
2021년 한국으로 왔다.
한국에서의 일 년은... 뭐랄까 말하자면 한껏 방황했던 시간이었다.
아이들을 학교와 어린이집으로 보내고 나는 일을 할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열 가지 종류가 넘는 다양한 일을 해보았다.
고용된 사람이 되기 위해 면접을 보기도 했고,
스타트업을 만들기 위해 투자자를 만나기도 했고,
번역가로 일했고,
계약직으로 5개월간 월급을 받기도 했고,
결국 사업자 등록을 하고 프로덕션 대표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
다시 한국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뭐랄까 말하자면 내가 나로 살지 않게 되는 공간이다.
마치 저 멀리 어딘가 존재하는 이름을 발음하듯이 말한다. 한국이라는 어느 나라.
자본주의적인 삶에서 한껏 떨어져 산다고 자부했던 나였지만
한국에 도착하니 바람에 휘둘리는 일개 풀때기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마음껏 소비했고, 마음껏 먹었고, 마음껏 배달을 시켰고,
마음껏 돈을 벌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나는 그리 단단하지도 확고하지도 않은 사람이었다.
한국이라는 나라를 핑계 대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다시 펼친 일기장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우리 가족이 자본주의에 맞서는 방법>
1. 고용되지 않고, 고용하지 않는다. 자본가가 원하는 일이 아닌 우리가 원하는 일을 한다.
2. 아이들을 인적 자원으로 보지 않는다. 자본주의의 입맛에 맞는 인재로 키우려 하지 않는다.
3. 소비하지 않는다. 소유를 통해 만족감을 얻는 삶을 지향하지 않는다.
4. 돈을 목적으로, 사람을 수단으로 보지 않는다.
5. 미래에 대한 불안을 안정으로 바꾸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안정을 지양하고 불안을 추구한다.
6. 일상적인 것에서 느낌으로, 편한 것에서 불온한 것으로 돌아가는 예술가적인 태도를 유지한다.
7. 인생의 불행을 유머로 받아들인다.
내 손으로 쓴 글이 맞나 싶을 정도로 한국에서의 나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살고 있다.
고용되려 애썼고, 고용되어 받는 안정적인 수입에 흥겨워했으며, 아이들을 학교에 맡겨버렸고, 엄청난 소비를 하고 있으며, 보다 안정적인 패턴을 유지하려고 애쓰고 있는 듯하다.
무엇보다
글은 단 한 줄도 쓰지 않았다.
그 말인즉슨, 먹기만 하고 배설을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래서 무지하게 더부룩하고 불쾌한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뭘 망설이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슬슬 엉덩이를 움직여야 할 때가 다가오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