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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형준 Oct 07. 2018

잠시 스마트 폰을 내려놓으셔도
좋습니다

그리고 잠시 좀 꺼두세요

아주 예전에 (아주까지는 아닐지도 모르지만) 배우 한석규가 나오는 광고 한 편이 유행한 적이 있다. SK 텔레콤의 초기 광고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대나무 숲에서 스님과 함께 걸으면서 한석규가 그 차분한 목소리로 '휴대폰은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라고 말하는 바로 그 카피. 지금 이야기할 내용의 주제이다.


SK 텔레콤 캠페인 광고 '다른 세상을 만날 때는 휴대폰을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


스마트폰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 


어디를 가든 무엇을 보든 우리는 항상 스마트폰과 함께한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고 싶은 광경을 보듯 스마트폰을 어루만지며, 길을 걷고 영화를 보고 콘서트를 감상한다. 경험하는 모든 것은 실시간으로 인터넷으로 공유되며, 모르는 사람들에게 까지 전파된다. 그리고 그 ‘모르는 사람들’은 모르는 사람을 팔로우하며 ‘소통해요’라는 멘트로 온라인 친구를 맺는다.


유병재는 자신의 팬미팅에서 스마트폰 채팅으로 행사를 진행했다. 마이크를 잡지 않고 오로지 채팅방의 텍스트로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는 모습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조금 답답하기도 했지만 신선한 시도였다. 


유병재는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팬미팅'이라는 제목으로 열린 행사에서 팬들과 '톡'으로만 소통했다


그 전에도 스마트폰과 같은 형태의 폰은 출시됐지만 센세이셔널한 이슈를 만들어 낸 것은 역시 애플의 혼 스티브 잡스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스마트폰을 대중화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오늘날의 위인으로 불리는 인물이기도 하다. (사실 돈을 좇는 기업가가 어떻게 위인이 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긴 하다. 물론 카네기나 에디슨의 경우도 있긴 하지만.) 


'전화도 되고 인터넷도 되고 노래도 들을 수 있는 획기적인 전화기'를 본 사람들의 반응은 그가 예상한 대로 폭발적이었다. 그리고 스마트폰이 완전히 일상화된 지금, 우리는 모든 것이 가능한 스마트폰을 들고 과연 과거보다 윤택한 삶을 살고 있나?


소통 속의 고독


오늘날 우리는 바로 앞에 있는 사람에게 조금 인색하다. 한 편으로는 조금 무미건조하다 싶은 시대다. 각종 미디어를 통해, 소통에 대해 매일매일 강조하고 있지만 정작 옆 집 아저씨에게는 인사 한마디 건네는 것을 두려워한다. 단순히 우습게 볼 수 없는 것이, 그만큼 무서운 시대이기도 하다.


인터넷이 빠르게 보급된 덕에 80년대 광주에서 일어났던 소통의 부재로 인한 아픔은 다시는 겪지 않게 됐다. 약자에게 인터넷은 좋은 무기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무기를 이제는 한 손에 들고 다닐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사용 방법에 따라 흉기가 되기도 하는 불처럼 때때로 스마트폰도 흉기가 된다. 반대로 다른 사람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수단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일과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쉽게 공유할 수 있어, 미디어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 장점이다. 하지만 과거에는 개개인의 목소리가 묵살돼 문제가 됐다면, 오늘날에는 개개인의 목소리가 큰 영향력을 가질 수 있게 되면서, 오히려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끼리 생각이나 신념을 이유로 싸우는 경우도 생기기도 한다.  



오늘날 사람을 쉽게 신뢰하지 못하는 것은 큰 문제이다. 온라인을 통한 가벼운 만남은 자신의 신변을 노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반대로 생각해보면 별로 신변이 노출되지 않은 사람을 쉽게 믿을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는 상대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로는 사람을 신뢰하지 못하고 온라인 속 사람들에게 속사정을 털어놓게 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될지 모른다. 자신의 고민을 마음 놓고 털어놓을 곳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는 직접 마주하기에서 시작한다. 상대방의 눈을 바라보고 상대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알아가는 과정 자체가 신뢰를 쌓아가는 길이다. 상대방에 대한 예의는 상대방을 향한 신뢰에서 나온다. 그리고 스마트폰은 이러한 신뢰를 쌓는데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상대방을 만날 때의 설렘을 너무 가벼이 여기지 않았으면 


SF 소설 작가 아서 클라크는 1976년 한 콘퍼런스에서 스마트폰의 등장을 예측한 바 있다. 흥미로운 것은 스마트폰의 기능뿐 아니라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인해 겪게 될 불편함에 대해서도 언급했다는 점이다.


"항상 디바이스를 통해 누구든 당신에게 연락을 할 수 있는 건 불편한 일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디바이스를 꺼버릴 수도 있지요. 하지만 연락을 해 온 사람에게 왜 디바이스를 꺼야 했는지 설명을 해야 할 겁니다." 


우리는 스마트폰의 불씨를 (대체로 카카오톡 등의 소통의 불씨를 일컫는 경우가 많다) 꺼뜨리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때때로 사라지지 않는 '1'과 나타나지 않는 '좋아요' 때문에 기분이 가라앉거나 우울해지기도 한다. 소통때문이라고는 하나, 이쯤되면 소통의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든다.


바로 앞에 있는 사람이 어색하다고 해서 스마트폰을 바라보면서 검색하는 척하는 것은 어색함을 달랠 수 있는 좋은 구실이 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앞사람에게 드리워진 안개를 걷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존재하지 않는 불특정 다수의 가면을 바라보기보다는, 진실된 눈으로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사람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필요가 있다. 적어도 다수는 상대방을 자신의 시선에서 바라보려는 경향이 있게 마련이다.


전화기가 가정과 회사에 널리 보급되고 난 후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것을 보고 각 상황에 맞는 전화 예절이 만들어진 것처럼, 스마트폰 예절이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다른 사람과 있을 때는 잠시 전화기를 꺼두는 것과 같은 매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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