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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nceptzine Sep 27. 2016

을지로 산책 ‘낡은 건물, 새로운 대안’

conceptzine vol.38

낡은 건물, 새로운 대안.

에디터 이혜인  l 포토그래퍼 최연정





15:30  /  투피스


언젠가부터 SNS에 하얀 타일의 바 사진이 연신 올라오기 시작했다. 어렵지 않게 검색하여 찾아보니 연남동이나 망원동에 있을 거란 예상과 달리, 영 희한한 곳에 있었다.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와 가깝지만 그렇다고 세련되거나 혼잡하다고 할 수 없는, 그러니까 떡볶이 가게가 있고 프랜차이즈 식당이 있는 을지로의 흔하디 흔한 거리에 있는 것이다. 카페는 5층에 있다는데 건물만 보아도 엘리베이터는 기대할 수 없었다. 나는 그런 건물들을 마음속으로 사랑하였다. 마음속으로만. 


문을 열고 들어서니 아담한 공간 안에 꽉 찬 손님들이 보였다. 캐릭터 티셔츠를 입고 노란 벙거지 모자를 쓴 여자가 바쁘게 커피를 내리고 때로 쥐포를 구웠다. SNS에서 익히 보았던 바 위에는 삶은 달걀과 추파춥스가 있었다. 뭐 하는 곳일까, 혼자 가늠하고 있을 때 순식간에 손님들이 빠져나갔고 나는 그제서야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친구와 함께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기 위해 이 공간을 마련했고, 카페는 부수적인 사업이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손님이 찾아와서 당황스러운 상황이라 말했다. 본인도 SNS에 올라오는 사진들을 보면서 유명해진 이유를 모르겠다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그저 스케이트 보더들을 위한 훈련원공원이 있고, 동대문 원단시장과 방산시장이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은 것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이곳이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크지 않은 공간 곳곳에는 흥미로운 요소들이 숨어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발명이 아닌 ‘발견’이라 표현했다. 타일 위에 메뉴를 쓰는 일, 접이식 테이블의 다리를 떼어내고 벽에 붙인 일, 탁구대를 책상으로 쓰는 일이 그렇다. 그녀는 말장난도 좋아한다. 사무실과 카페로 사용하는 5층은 Tasting room으로, 전시공간으로 사용하는 6층은 Testing room으로 이름을 지었다. 아재개그 같다고? 지금까지 소개한 이곳의 이름은 투피스Twoffice다. 


운영시간 화~토요일 12:00~20:00 / 서울 중구 을지로 230-1 5층 



16:40  /  얼그레이 APT


얼그레이의 보드라운 천 가방은 어깨끈이 넓어서 책과 카메라를 몇 개씩 들고 다니는 내게 적합하다. 계절과 상관없이 두루 어울리기 때문에 나는 그 가방을 작년서부터 지금까지 줄기차게 메고 있다. 얼마 전에는 붉은 자수가 놓인 손수건을 샀다. 차분한 느낌의 리넨 손수건은 멋 내고 싶을 때 목에 두르고(복학생 아니다), 아이스커피를 담은 보온병 위에 송골송골 맺히는 물방울을 닦는 데 사용하기도 한다. 딱히 사용 시기나 용도가 정해지지 않아서 더욱 자주 찾게 된다. 얼그레이는 그밖에 문진, 브로치, 팔찌, 패브릭 제품 등을 만든다. 그것 또한 오래 두고 지켜볼 물건들이다. 가장 좋아한다고 말할 순 없지만 가장 편안하게 고를 수 있는 제품을 만든다는 얼그레이는 이번 여름 쇼룸을 오픈했다. 페인트 가게를 끼고 코너를 돌면 좁은 골목이 나온다. 그러면 코끼리같이 커다란 건물이 보이는데 그곳 4층에 얼그레이 APT가 있다. 하지만 얼그레이는 504호다. 헷갈린다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경비원 할아버지가 말을 걸 것이다. “어디서 왔어? 거, 4층 가려는 거지?” 나는 총 두 번 방문했는데 두 번 다 같은 말을 들었다. “그럴 줄 알았어. 왠지 거기 갈 줄 알았어.” 어떻게 아셨는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귀여운 점쟁이 할아버지는 용한 척은 하시지만 또 그만큼 친절하시니 선뜻 먼저 말을 걸어주실 거다. “얼그레? 4층으로 가!” 


쇼룸은 한눈에 보일 정도로 아담하다. 남색 카펫과 식물 그리고 짙은 나무 가구 위에 놓인 얼그레이 제품은 은은하게 우아하다. 한눈에 번뜩 들어오는 게 아니라 보면 볼수록 이야기의 깊이가 보인다는 말이다. 물건 중에는 어느 하나 사연이 없는 것이 없다. 최근에는 한 여자와 남자의 일상을 그린 스티커와 모리스 메테를링크 《파랑새L'oiseau bleu》에 영감을 받아 만든 왁스 타블렛이 나왔다. 그밖에 쇼룸을 방문하면 특별히 볼 수 있는 것이 있다. 온라인에선 호두나무로 만든 문진만 볼 수 있었다면 이곳에선 체리나무로 만든 문진도 볼 수 있다. 책등 시리즈로 나온 왁스 타블렛을 향초로 만나볼 수 있고, 룸 포 스윗에서 만든 캐러멜과 잼도 구매할 수 있다. 무엇보다 아주 느긋하게 얼그레이의 제품들을 보고, 만질 수 있다.  


운영시간 금~토요일 13:00~19:00 /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 114-6 504호 / 070-8851-8686



17:00  /  노말에이


노말에이는 올해 4월, 을지로로 이사 왔다. 원래는 장충동에 있었다. 얼그레이 APT와는 도로 하나를 끼고 마주하고 있다. ‘BOOK IS ANSWER’라는 문구가 쓰인 좁다란 계단에 올라서면 새하얀 공간이 시작된다. 책장에 빼곡히 들어찬 책들. 복잡하기보다는 잘 정돈된 느낌이다. 그곳엔 익숙한 책이 있는 반면 처음 보는 책도 많다. 이 건물의 계단처럼 폭이 좁고 세로로 긴 판형의 책을 꺼냈는데 노말에이에서 만든 책이라 했다. 제목은 《두부연인》으로 <카사블랑카> 저리 가라 하는 애절한 두부의 사랑 얘기다. 나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그러한 책들을 꺼냈다 넣었다 하며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이곳을 빠져나왔을 때 내 손 안엔 책 한 권이 있었다. 《구슬 옥 있을 재》라는 책. 딸 전지가 엄마 재옥의 이야기를 담았다. 삐뚤빼뚤한 엄마의 일기와 딸의 연필 드로잉이 모여 책이 탄생했다. 내가 이 책을 산 건 순전히 재옥 씨의 직업 때문이었다. 재옥 씨는 방문 요양보호사 일을 한다. 우리 엄마도 작년부터 그 일을 시작했다. 집에 와서 아픈 노인의 이야기를 자주 한다. 그건 재옥 씨도 마찬가지다. 아픈 사람을 돌보는 일만큼 힘들고 애달픈 일이 있을까? 나는 재옥 씨를 시작으로 우리 미옥 씨까지 떠올리게 됐다. 책이란 정말 희한한 힘이 있다. 문득 노말에이 계단에 쓰인 문구가 생각난다.   


운영시간 월~금요일 12:00~20:00, 토요일 13:00~20:00 / 서울 중구 을지로 121-1 2층 / 070-4681-5858 



17:40  /  을지로 걷기


오래된 건물 사이로 얼기설기 엉켜 있는 전선과 사람들. 이 동네를 알려면 번화가가 아닌 골목 사이사이를 누벼야 한다. 홍콩에 있을 법한 높고 낡은 건물, 지게차를 몰고 다니는 일꾼들의 열기, 때 지난 살롱문화를 연상케 하는 다방은 꼭 언젠가 겪어본 과거의 일들 같다.  




19:30  /  신도시 


신도시는 작년 이맘때쯤 친구의 손에 이끌려 가게 된 곳이다. 그곳에서 권나무 씨의 공연을 보았다. 신도시와 권나무라니. 어쩐지 담배와 성경이 만난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질적이진 않았다. 전자든 후자든 어울리지 않을 이유도 없으니. 신도시의 대표는 사진작가라 했다. 또 한 명의 대표는 미술을 전공했다. 그 둘이 만나 탄생한 신도시는 혼잡하고 어지럽다. 하지만 이른 시간에 찾아간 탓인지-해도 안 졌을 때였다-파티가 끝난 다음 날처럼 고요하고 또 고요했다. 얼마나 고요했냐면 수첩과 연필을 들고 원고를 쓸 정도였다. 나는 그런 파리한 안색의 신도시도 좋았다. 언제나 벌겋게 상기된 얼굴만 봐 왔으니. 피자와 함께 이름 모를 맥주를 홀짝이고 있을 즈음 사람들이 하나둘씩 몰려왔다. 나는 그쯤에서 쓰던 원고를 접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금요일 오후 신도시에서 묘한 경험을 한 것 같았다. 건물에 나와서도 파란 잔상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운영시간 월~목요일 18:00~02:00, 금요일 18:00~03:00, 토요일 14:00~03:00, 일요일 14:00~22:00 / 서울 중구 을지로11길 31 5층 / 070-8631-4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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