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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라잉로빈 Dec 19. 2022

[부여] 국립부여박물관

아담한 공간에 담은 아름다운 백제 문화

문화유산도시 부여의 박물관을 방문했다. 야트막한 건물이 인상적이었고 들어가는 길에 늘어선 유물들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래서 입구까지 걸어가는 데에도 구경하느라 시간이 꽤 소요되었다. 부여 당일 여행코스에 넣으며 모든 전시물을 자세히 관람하기는 어려울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반드시 보고 싶은 유물과 위치를 미리 알아두었다.






백제금동대향로(백제 6~7세기)

백제의 대표적인 공예품을 맞이하자니 설렜다. 2전시실 안쪽에 별도로 마련된 공간의 입구에는 칸막이가 있어서 한번 꺾어 들어가는 동선이었다. 예전에 박물관을 답사할 때, 대표 유물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전시함으로써 방문자가 조금 더 드라마틱하게 관람하도록 유도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더불어 해당 유물에 시선을 빼앗겨 주변의 다른 전시물을 소홀히 보는 것을 방지하기도 한다. 공간에 들어서며 그 말이 사실이라는 걸 경험으로 알았다. 칠흑같이 어두운 공간에 홀로 빛나는 금동대향로가 눈에 띈 순간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뒤이어 들어온 관람객들도 비슷한 반응인 걸로 보아 과연 효과적인 전시 방법이구나 싶었다.

아무리 극적으로 공간을 연출한다고 해도, 전시물이 훌륭하지 않다면 감동을 줄 수 없다. 실물로 본 백제금동대향로는 듣던 대로 아름다워서 백제인들이 상상한 신선세계를 마주한 기분이었다. 겹겹이 쌓인 산봉우리 사이로 보이는 작은 악사와 동물들이 제각기 달라서 귀여웠고, 꼭대기에 조각된 봉황은 어디선가 날아와 이제 막 자리에 앉은 듯이 생동감 있었다. 왕실 제사에서 향을 피우며 봉우리 틈 사이로 연기가 피어오를 때 아름다움의 절정을 이뤘을 것이다. 실제 모습은 보기 어렵지만 아래의 박물관 공식 유튜브 영상으로 가늠할 수 있다. 역시 금동대향로는 백제의 자존심을 드러내는 유물 중 하나다.


https://youtu.be/TRHphdLAthI






왕흥사터 사리기(백제 577년)

왕흥사터에서 발굴된 작은 유물이다. 크기와는 다르게 존재감은 확실한데, 그 이유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사리기인 데다가 청동 사리함에 새겨진 명문으로 왕흥사가 설립된 연도와 연유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왕흥사는 백제 창왕이 세상을 떠난 왕자를 위하여 정유년 2월 15일에 지은 사찰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발견 당시 러시아의 마트로시카 인형처럼 청동 사리함 안에 은으로 만든 사리호가, 그 안에는 다시 금 사리병이 들어있는 형태였다고 한다. 안쪽으로 들어가며 더 귀한 재질의 병이 있는 것이 선물 포장을 하나씩 풀어내는 듯해서 재미있다. 기록과는 다르게 안에 사리가 담겨 있던 흔적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금동정지원명석가여래삼존입상

이전에 올린 낙화암 관련 글에서 소개한 불상이다. 부소산성을 오르며 들른 '반월루'라는 정자 근처에서 발굴되었다는 유물을 여기서 직접 볼 수 있었다. 마치 단서를 따라 보물을 찾은 것처럼 반가웠다. 정지원이라는 사람이 아내의 명복을 빌며 만든 불상이며 크기는 8.5cm로 생각보다 작았다. 비록 왼쪽 보살상은 거의 사라졌지만 광배 뒷면에 새겨진 문자는 남아있다. 불상의 주인은 아마 자신의 이름이 이토록 오랫동안 남아 박물관에 걸리게 될 거라는 예상은 하지 못했을 것 같다.






백제시대 벽돌 및 기와

이번 부여 여행에서 백제의 벽돌과 기와가 새롭게 다가왔다. 각기 다른 문양이 흥미로우면서도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동그란 형태의 수막새는 기와지붕의 가장자리로 빗물이 흘러 들어가는 것을 막아주는데, 연꽃부터 바람개비 문양까지 다양했으며 같은 꽃이라고 해도 모양이 조금씩 달랐다. 그리고 벽돌에는 산과 나무, 도깨비, 봉황 등이 새겨져 있어서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했고, 요즘 시대의 명품 브랜드가 연상되는 무늬도 있었다. 지금 사용한다고 해도 어색하지 않은 형태여서 백제 사람들의 미적 감각이 참 뛰어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시아를 넘어 세계 여러 국가와 교류한 덕분에 독자적이면서도 세련된 문화를 발전시켰을 것이다.






국립부여박물관 로비

박물관에 들어서자 덩그러니 놓여 있는 돌그릇이 독특했다. '부여 석조'라고 불리는 이 유물은 백제 왕궁이 있던 관북리 일대에서 발견되었으며 연꽃을 심어두었던 그릇이라 추정되고 있다. 석조를 가운데 두고 의자가 둥글게 놓여있고 각 전시실은 로비를 중심으로 문이 나 있어서 관람 중간에 앉아서 쉬고는 했다. 




박물관 로비에서 상영된 실감 영상

전시실을 둘러보던 중에 디지털 실감 콘텐츠가 로비에서 상영된다는 방송을 들었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로비 의자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장막이 서서히 올라오면서 천장의 유리문을 덮기 시작했다. 컴컴해진 로비를 가득 채우며 영상이 상영되었고 예상보다 너무 좋았다. 내가 관람한 영상은 백제금동대향로에 대한 내용이었다. 주변에 향로의 풍경이 펼쳐져서 나도 그 일부가 된 느낌이었고 겉에 새겨진 악사와 동물을 하나씩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박물관 홈페이지에 다시 들어가니 백제문양을 다룬 영상도 시간에 따라 번갈아서 상영하는 모양이다. 미리 알았더라면 둘 다 보았을 텐데 아쉽다.






박물관을 좋아해서 어느 도시를 여행하든 가능하면 일정에 꼭 넣는 편이다. 전시를 둘러보는 것은 같지만 박물관마다 특성과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서 재미있다. 비교적 아담하면서도 편안한 국립부여박물관은 부여를 닮은 공간이었다. 곳곳에 흥미로운 유물이 많았고 방문객의 동선을 고려한 구조 덕분에 편리하게 관람할 수 있었다. 다음에는 시간에 여유를 두고 기획전시실을 포함하여 천천히 둘러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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