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기 싫을 때는 '글 쓰기 싫다'로 문장을 시작하면 뭐라도 써진다던 루시의 글이 생각났다. 잘 준비 겸 모던패밀리 볼 준비를 다 하고 침대에 앉아있다 오늘자 100일 프로젝트 인증 전인 걸 알아챈 후다.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아서 아무 생각도 안 했다고 써야 하나 하면서 뻣뻣한 양쪽 귀를 구기다가 떠오른 거다.
프로젝트의 매니저가 그렌과 함께 유니온 활동 중인 란스라는 것을 알고, 괜히 그렌에게 100일치의 고통에 동참하라고 꼬실 적에는 매일 140자 채운 트윗 3개 쓴다고 생각하면 별 거 아니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것도 생각의 단초가 있어야 가능하단 말은 하지 않았다. 그렌은 트위터는 구독용일뿐 뭘 작성하진 않는다고 했지만 어쨌든 고통스러운 과정(끝에는 성취감이 있을지도 모르는)에 동참했다. 프로젝트를 시작한 후로 매일, 그렌은 살아있으면서 겪은 것이나 생각한 것에 대해 차분하게 차곡차곡 티스토리에 풀고 있다. (브런치가 아닌 티스토리에 풀고 있다는 건 별개의 이야기지만 갑자기 좀스럽게 그것까지 생각났다.)
나는 어떠한가. 저번 시즌에서의 목표는 매일 쓰는 근육을 키우는 거였다. 덕분에 작년에는 회의록 같은 걸 제외하고도 도합 30만자 가량 되는 글자를 썼다. 하지만 몸의 근육이 안 쓰면 순식간에 증발하는 것처럼 글 쓰는 근육도 안 쓰면 눈 깜짝할 사이 사라진다. 올해 들어서는 글 쓰는 것보단 넷플릭스로 시간 보내는 게 주였다. 하다못해 읽는 것조차 안 한다. 설 연휴 때 안구건조증 완화를 위한답시고 전자기기 멀리하고 본가에 있던 정은궐 작가 소설책 읽은 게 전부다. 쓰기를 완벽하게 그만둔 것도 그 즈음이긴 하다. 핑계가 그럴 듯 했다. 안구건조증. 말짱 도루묵이니 병원에 찾아가서 다른 방도를 찾는 게 맞는데 여전히 핑계 삼아서 자위하고 있는 게 맞다.
집중력이 좋지 않기 때문에 무언가 어설프게나마 결과물을 만들어가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타입인데, 대화도 하지 않고 글도 쓰지 않으니 정리가 될 리 없다. 아무래도 이래서 내내 붕 뜬 기분인가보다. 이번 시즌 프로젝트 참여 신청 때는 딱 그 정리, 특히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정리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었는데. 시작하기 전에 제대로 된 목표를 세우고 얼개부터 짜야겠다고 계획했던 게 어영부영하다 덜렁 '1일차 인증'이 코앞에 오니까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보가 그득해졌다. 차분하게. 침착하게. 최소한 이전의 일상성이라도 되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역시 쓰기 싫다-로 시작하여 왜 쓰기 싫을까-로 끝나니 뭐라도 썼다. 하루치만큼 지구력 상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