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어야지-하는 마음으로 근처 대학가에 있는 새로운 카페에 갔다.
독서량이 많지 않고 항상 읽는 작가의 책 위주로 읽으니 오늘도 고른 것은 에쿠니 가오리의 책이다. 대학 다닐 때 한창 읽던 쪽이다. 입사 후에는 이사카 코타로의 책을 주로 읽으며 현실과 분리되는 데에 몰두한 경험이 거의였는데 제법 오랜만에 한 시도인 것이다.
대학 때, 그러니까 20대 초중반 때에는 소위 '사춘기'라 부르는 폭풍의 잔여물이 제 나름대로 몸집을 불려 다시금 나를 휘두를 때였다. 가시적인 결과로 이어지는 행위는 그 무엇도 하지 않으면서도 스스로의 감정을 헤아리는 데에만도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상처 받는 일 없이도 나는 쉽게 상처 받았고, 별 거 아닌 것 같은 일에도 크게 의미부여하고 기뻐서 울기도 했다. 남들이 다 읽는 건 싫다며 고상한 체를 하느라 멀리 하던 에쿠니 가오리는 아마 하루키 작품을 전파한 당시 애인의 영향 중 하나였을 거다.
여러 작품을 빠르게 읽어치우면서-그야말로 읽어'치운다'는 표현이 적절한 행위였다-가장 먼저 느낀 것은 작품 속 주인공들 또한 내가 스스로를 진단한 것처럼, 제 감정이 넘쳐서 어쩔 줄 몰라하고 있다는 거였다. 그 다음은, 그들은 다른 현실적인 상황에 대한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물려받은 자산이 있어 자산관리사, 세무사의 도움을 받아 관리하거나, 이미 스스로 지속가능한 창작이 가능할만큼의 명성과 구매자를 확보한 후이거나, 그도 아니면 아낌없이 모든 걸 해주려고 드는 부유한 파트너가 있다. 필요할 때면 장시간 목욕을 하거나 질 좋은 술을 마실 수 있고, 평일 오후 시간을 하고 싶은 것을 하는 데에 쓴다.
오늘 읽은 작품에서 만난 주인공은 임대한 부동산에 대해 집세 납부를 채근할 필요도 없고, 누나와 의미 있는 무언가를 남기기 위해 몇 년째 적자여도 상관 없는 소프트크림 가게를 하나 차리기까지 한다. 전처와의 사이에서 난 자녀를 위해 양육비를 보내는 것이 책임보다는 '권리'이기를 바라고, 소프트크림 가게 직원과의 사이에서 생긴 갓난아기-혈육 여부는 아직 확인하지 못 했지만-를 키우는 데 부족함이 없게 싱글맘인 전 애인의 생활을 지원해준다.
이런 류의 설정이 작품마다 반복되는 걸 곱씹고 있자면, 작가가 그려내는 (왠지 멀게 느껴지는) 일상의 소소한 면면의 묘사가, 작중 인물들이 갖고 있는 생각과 감정에 대한 섬세한 표현이 꽤 사치스럽게 느껴진다. 그러니까, 이번 달 지출액을 계산해서 오늘 저녁은 편의점 샌드위치로 때울까 아니면 냉장고에 오래 묵힌 달걀 세 알로 스크램블드에그를 해먹을까 하는 고민이라든가 가스비 걱정에 나갔다가도 다시 들어와서 보일러를 끄는 그런 씬이 없어도 되는 삶. 그 안에서만 가능한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 결과다. 간간이 내가 이런저런 고민을 이야기하고 있으면 내 어른스러운 애인이 "별 걸 다 신경 쓰네" 하면서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자신의 걱정을 들려줄 때의 그런 느낌. 사치스럽다고 느끼는 거다.
좀 더 그런 사치는 누려도 되는데. 예전에는 당연하게 체화하고 내 안의 큰 부분으로 여기던 게 이제는 사치스러워서 스스로 경계하고 꺼리고 '내가 이래도 될까' 혹은 '내가 이럴 때가 맞나' 싶게 만든다. 아아... 이런 생각 그만. 이것도 사치일지 몰라. 눈물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