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염식을 막 시작한 즈음에 엄마가 걱정된다며 집으로 오셨다.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짜디 짠 반찬을 잔뜩 챙겨서. 다른 때 같았으면 반갑고 그저 감사했을텐데 이번에는 못 먹는다고 미리 얘기했는데 왜 굳이 가져오셨냐 하는 싫은 소리가 먼저 나갔다. 만 20시간 내에 먹은 거라곤 맛 없는 냉동 닭가슴살 하나가 전부인데다 독한 약 때문에 속이 울렁거렸다. 그래도 조금 쉬다 한 팩 더 먹어야겠다고 마음 먹은 차였는데 부엌에서 한참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가스렌지에 냄비를 올리고, 불을 켜고, 부스럭거리며 비닐을 뜯고, 젓가락으로 여러번 뒤적거리다 뚜껑을 닫고 열고 반복. 한동안 먹지 않던 라면 냄새였다. 서울 집까지 오는 길이 막혀서 밥 때도 놓치고 그 무거운 짐을 들고 볼일 보러 다른 곳에 들러 오느라 공복인 엄마의 늦은 점심이었다. 라면 냄새가 제대로 풍기기 시작하고서야 나는 벌컥 "아, 라면 냄새! 미리 얘기 좀 하지이!" 소리를 치고 방으로 숨었다. 맵고 짜고 고소한 라면 국물 냄새가 온 집안에 퍼지기 시작하는데 참을 수가 없었다. 지독했다. 지독하게 당겨서, 한편으로는 당혹스러울만큼 거부감이 치밀어서 감정을 조절하지 못 했다.
한참 후에 거실로 나오니 창문은 모두 활짝 열려있고 엄마는 상심한 얼굴로 소파에 오도카니 앉아계셨다. 딸 건강 챙긴다고 바리바리 반찬거리해서 찾아왔는데 오자마자 문전박대를 당한 셈이니 엄마는 많이 속상하셨을 거다. 화를 낸 게 아니다, 라면 냄새가 오죽 진하냐, 생각지도 못 했던 라면의 등장에 어젯 저녁부터 제대로 된 끼니를 못 했던터라 당황을 한 것 뿐이다 등등 구구절절 뒤늦은 변명을 했다. 한참 주절거린 후에도 아직 덜 빠진 라면 냄새가 곳곳에 배어 있어서 나는 코를 훌쩍였다.
그리고 몇 주만에 늦은 끼니로 라면을 끓였다. 면발이 쫄깃한 오동통면. 맵지 않은데 대신 짜다. 여느 국물 라면들이 그러하듯. 끓이는 동안에도 다 먹은 후에도 환기를 시켰는데 라면 냄새는 여전하다. 충분히 먹어야 약을 먹을 수 있다는 일념으로 끝까지 먹어치우느라 힘들었는데 코끝에서 가시지 않는 라면 냄새에 시달리고 있으니 후회가 밀려온다.
먹기 전에가 제일 좋지. 냄새도, 기대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