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T 수업을 받은 다음 날에는 코스트코에 처음으로 가보았다. 차로 가는데 노곤해서 잠이 왔다. 엄마한테 잔다고 혼났다. 전에 부산 가는 길에도 엄청 뭐라고 하시더니... 아니, 다시 생각해 봐도 그건 좀 억울하다. 분명 그날 아침에 일찍 출발하니까 가는 길에 자라고 얘기하시고서는 정작 잠드니까 핀잔을 주시다니! 하여튼 이번에도 또 꾸지람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런데 사실 내가 평상시에 차를 탈 때 잘 자는 편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아무래도 잠이 오는 건 내가 어제 운동을 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게 미스터리가 풀렸다. 운동의 부작용 및 후유증이 상당히 심했다. 무슨 엄청난 운동이라도 한 게 아닌데도 말이다. 다리가 아침부터 너무 뻐근해서 그냥 걷는 것도 힘이 들 지경이었다. 그런데 하필 시간이 갈수록 통증이 더 악화돼서 코스트코에 왔을 때에는 다리가 막 당겼다. 몸의 다른 부분들도 뭔가 온통 뻐근한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다리가 아픈 만큼 아프지는 않았다.
그날 처음 본 코스트코는 놀라웠다. 무슨 공장 창고 같은 데에 온 느낌이 들었는데, 그보다도 훨씬 거대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모든 것이 장난 아닌 사이즈!
하지만 도착하고 보니 배고파서 얼른 점심이 먹고 싶었다. 배고픔도 배고픔이지만, 그전에 목이 자꾸만 텁텁하게 막히는 느낌으로 목이 말라서 물을 마셔야 살 것만 같았다. 미국 서민 느낌 나는 코스트코 음식 파는 곳에서 피자 한 판과 무슨 "치킨 말이"라고 불릴 법한, 치킨과 내용물을 타코 빵 같은 것이 감싸고 있는 메뉴를 주문했다. (나중에 찾아보니 그 메뉴의 이름은 "치킨 베이크"였다.) 참, 보라색 요거트 스무디 아이스크림 같은 음료 ("블루베리 요거트 스무디")도 샀는데 엄청 맛있었다. 목이 말라서 열심히 마셨는데, 마시면 마실 수록 이상하게 오히려 목이 더 아픈 것만 같아서 이상하기는 했다. 목이 붓기라도 한 걸까 싶었다.
그런데 피자 한 판을 시킨 건 잘못된 선택이었다. 피자 한 판이 어마어마하게 컸기 때문이다! 피자 한 조각씩만 먹어도 배부를 정도로 커서 결국 치킨 빵은 맛보지도 못했다. 그런데 또 그 크기만큼이나 어마어마하게 맛있는 거대한 피자였다. 치킨 롤 같이 생긴 그 빵은 또 얼마나 맛있을까 입맛을 다시고 있었는데 맛보지도 못하게 되어 아쉽다.
코스트코 구경은 신기했지만, 전날 운동을 하고 뻗은 이후라서 너무 지치고 힘들었다. 다리도 제대로 안 펴지는 것만 같아서 앞날이 걱정이 되었다. 그래도 그럴수록 운동을 더 해야 할 것 같아 이후 P.T를 받지 않는 날에도 운동을 가서 열심히 러닝머신을 뛰었다.
한편 소설도 틈틈이 썼다. 순조롭게 쓰다가 이상하게 중간 챕터부터 글이 막혀서 난관에 부딪쳤다. 글쓰기가 어렵다기보다 지도가 없는 미지의 영역에 다다른 기분이 들었다. 글의 내용도 처음 썼던 초고랑 너무 많이 달라진 뒤라서 앞으로의 전개는 다시 헤쳐나갈 방법을 찾아야 했다. 청사진이 없다 보니 어떤 모양으로 전개가 펼쳐질지도 감이 잘 오지 않았다. 그런데 그래서 오히려 더 기대가 되는 부분이기도 했다. 내가 처음 계획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래도 내가 이번에 쓰고 있는 글에 뭔가 가능성이나 잠재력이 분명 있어 보였다. 앞부분을 읽어볼 때마다 신선한 기분이 들어서 놀랐다. 내가 내 글을 보면서 혼자 괜찮다고 생각하는 건 다소 부끄러운 일 같지만 내가 괜찮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보고 스스로 격려를 해야 뒷부분을 써나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첫 챕터가 너무 길어지면 긴장감이 떨어져서 "노잼"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든다. 우선 다 쓰고 나서야 내가 무엇을 쓰고자 했는지 전체적인 그림을 볼 수 있을 거라는 게 안타까운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계속 쓰는 수 밖에는 없다.
사실 글을 쓸 시간을 내기도 좀 빠듯해서 걱정이다. 거의 백수 생활 같이 계속 쓸 시간만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자기 계발도 해야 하고 할 일들이 있다. 그리고 나 혼자 쉬는 시간에 늘 글을 쓰는 게 썩 내키는 것도 아니고, 다른 일이 몰래 하고 싶어지기도 하고 한다. 그래서 스스로 글을 쓰도록 하는 일도 생각보다 쉽지는 않다.
설 연휴 기간에는 부모님과 일본으로 여행을 가게 되었다. 이틀 전부터 짐은 이미 다 싸고 있어서 사실상 바로 챙기고 갈 수 있을 정도로 다 준비되었다.
그전에 아빠가 내 피부를 낫게 하기 위해 특정 한의원을 가야 한다고 가야 한다고 몇 번이고 말씀하셔서 결국 가게 되었다. 아빠는 한 번 말하면 끝까지 계속 얘기하는 편이기 때문에 방문을 하고 판단하는 게 빠를 것 같았다. 그래서 방문한 곳은 아무래도 좀 많이 이상했다. 무슨 즙 같이 생긴 약을 대용량으로 팔았는데, 의사 선생님이 내가 이전에 본 학원들에서 상주하는 사기꾼 선생님들 같은 말투로 얘기하셔서 왠지 거부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다음에 우리에게 치료 상품과 가격을 설명해주신 간호사 분은 거의 무슨 랩을 하듯이 말을 빠르게 해서 일부러 그러는 건가 싶을 정도였다. 그렇게 강매당하다시피 약을 사 왔다. 성분이 뭔지도 모를 약을 차 트럭을 다 채울 만큼 가득 사 와서 집에 들고 올라오는 것도 엄청 무거울 정도였다.
엄마가 그걸 보자마자 화를 낸 건 당연하다. 그곳의 사람들에게 좋은 돈벌이 호구가 되어준 거냐며 화를 내셨다. 새해가 오기 전의 마지막 발악이냐고도 하셨는데... 그나마 여행을 앞두고라서 엄마가 그나마 화를 덜 낸 것이지 싶었다. 으, 다시 떠올리고 싶지도 않은 기억이다. 나는 엄마의 말을 듣고 그날의 일이 음력으로는 작년의 끝자락에 벌어진 일임을 다시 깨달았다. 그 일이 병신 같은 병신(丙申)년의 마지막 불운이자 앞으로의 일에 대한 액땜이기를 바랐다. 설을 앞둔 액땜 비용치고는 나쁘지 않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