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또 걸은 일본 여행
호텔 침대에 누워 있고 싶다는 게으른 생각을 하며
다음 날 아침 일찍 가족들에게 강제로 깨워지다시피 해서 공항으로 향했다. 피곤해서 가는 길 내내 잤다. 이번에는 잘때 입을 안 벌리고 잤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조금은 벌리고 잤던 모양이었다.
공항에 도착해보니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엄마랑 나를 내려다 준 아빠는 주차할 자리를 찾는데 시간이 걸리는지 한참 동안 오지를 못했다. 우리는 일행이 오기를 기다리며 발만 동동 굴렀다. 그런 상황에서 짐을 빨리 부치려고 했는데 우리 앞에 사람들은 짐을 부칠 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래서 또 우왕좌왕하던데, 사실 그들은 별로 급해 보이지도 않았다. 매우 답답한 상황이었다. 입국 심사를 빨리 해야 하는데 '패스트 패스'라는 빠르게 수속하는 줄도 무진장 길었다. 그래서 우리 부모님은 막 빨리 가야 한다고 몇 번이고 말하고 호소했다. 나는 사실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만 생각해서 줄에 그대로 그냥 서서 우리의 차례가 되기를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부모님께서 계속 앞에 분들한테 열심히 따지고, 면세 물건 구해야 한다고 얘기하셨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줄 앞으로 갈 수 있었다. 나는 원칙을 지키고, 명령을 따르고, 따로 지시가 내려오기 전까지는 조용히 기다리고 분쟁을 일으키지 않는 게 매사에 해답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날 보니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 항공사 측에서 우리가 비행기를 놓치든 말든 따로 배상을 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겨우 겨우 안감힘을 쓰며 그 긴 행렬을 빠져나와서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니. 나 혼자 탔으면 아마 비행기를 타지도 못했을지도 모른다. 많은 생각을 들게 만드는 일이었다.
나는 우리가 늦어서 면세 물건은 포기하고 비행기만 겨우 탈 줄 알았는데, 의외로 면세를 구하는 곳에서는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다. 그래서 바로 면세품들을 구해오고 막 게이트까지 뛰어가서 겨우 5분 전에 도착했다. 그때 공항에 사람, 사람이 어찌나 그리 많던지!!
도쿄에 도착해서는 우동을 먹었다. 우동도 너무 맛있고 우동에 튀김도 너무 맛있고... 정말이지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로 너무나 다 맛있었다. 그런데 그 밀가루가 무거운 탓이었는지 나랑 엄마가 계속 속이 얹힌다고 그랬다.
비즈니스 호텔에 도착했다. 그리고 쇼핑을 하러 '돈키호테'라는 큰 잡화점에 가서 물건을 막 샀다. 또 아빠랑 나는 '도쿄핸즈(Tokyu Hands)'라는 곳에 가서 물건을 구경했지만 별 소득은 없었다. 저녁은 근처에 맛있는 집이라던 곳에 가서 먹었다. 그곳은 정말 소문대로, 아니 그 이상으로 어마어마하게 맛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걷고 걷고 또 걸었다. 나는 여행은 좋지만 걷는 게 너무 힘들어서 여행 자체도 싫어진다는 생각을 했다. 호텔 침대에 누워 있는 게 훨씬 더 행복할 텐데. 여행이란 본디 휴식 아닌가! 그래서 나는 내가 어른이 된다면 - 아, 지금도 성인이구나! - 어른이라는 칭호가 어색하지 않을 만큼 나이가 든다면, 여행을 가더라도 근처에 15분 정도 거리만 갔다가 도로 돌아올 것이라는 게으른 생각을 했다. 그때는 딱히 여행을 가고 싶지도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도착한 다음 날은 전차를 타고 올라갔다. 원래 다른 곳을 또 가려던 아빠의 계획이 있었던 것 같지만 그 대신 '가나자와(金沢)'라는 곳에 도착했다. 가나자와는 금박이 유명한 동네라고 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딱히 친절하지는 않은 편이라고 한다. 마치 그 유명한 교토 사람들 같은가 보다.
가나자와에 도착해서 호텔 체크인을 또 했는데 웬 외국인 분이, 약간 러시아 사람 같아 보이는 분이 일본어를 하며 우리를 가이드해 주셨다. 호텔 건물도 무지 넓고 방도 좋은 편이었는데 문제는...말도 못할 담배 냄새! 죽는 줄 알았다. 진짜 냄새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강해서 코를 찌르는 것 같았다. 도무지 무시하려 해도 할 수가 없는 수준이었다. 공기 청정기를 한참 돌려서 겨우 좀 가시게 만들었는데도 아주 사라지지는 않던 악취였다......
낮에 '가나자와'라는 곳에 갔다. 큰 감흥은 있기에는 내 저질 체력으로 너무 걸어다녀서 발이 아팠지만, 옛날 동네 느낌이 나서 마냥 신기했다. 밤에는 그곳의 버스를 타는 투어를 했다. 이름이 '라이트 오프' 버스인줄 알았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라이트 업'이었다. 옛날 동네에 가서 그곳의 역사를 가이드가 설명해주는 방식이라 투어의 취지는 좋았다. 밤에 다시 보니 낮에는 별 감흥이 없게 느껴졌던 풍경이 하나하나 다시 살아나서 좀 예뻐 보였다. 그런데 문제는 그 버스에 사람들이 너무 많이 탔다는 점이다. 그래서 사람들 사이에 낑겨서 타고, 내릴 때에도 “오리마스(おります)” “오리마스”를 한참 해야 겨우 내린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무엇보다 큰 문제는 그 옛날 동네 투어를 하고 나서 성을 방문하기 위해 밤에 일본 성에 내렸을 때 생겼다. 알고 보니 그곳은 아무런 설명도, 간판도 없는 칠흙 같은 어둠 뿐이라 전혀 뭘 알 수가 없었다는 거다. 진짜 버스에 내려서 그대로 덩그러니 남겨졌다. 그런데 그 버스를 다시 타서 돌아가고 싶지도 않아서 택시를 타고자 했는데 택시가 돌아다닐 만한 곳도 아니었다. 으스스하고 추웠다. 그러다가 어느 버스 가이드 노인 아저씨의 도움으로 다시 버스 정류장 중 하나로 돌아가서 기다릴 수 있었다. 버스가 오기까지 덜덜덜덜 떨면서 십 여분을 기다렸다. 그 시간은 정말이지 영원처럼 느껴졌다. 재차 강조하지만 정말 기억에 남을 만큼 추웠다. 발바닥도 한참을 걷느라 몹시 아팠다. 그렇게 버스를 기다리는데 꼭 빈민 체험을 하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겨우 버스에 올라타서도 앉지 못하고 또 그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치이고, 치이고, 치여서... 몇 정거장을 한참 지나서야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에 들어오니 구원 받은 기분이 들었다. 우리 가족들 모두 그게 정말 최악의 경험이었다는 데에 입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