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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Feb 13. 2024

그 사람이 정말 미운게 맞나요

제법 친하게 지내던 친구에게는

그다지 좋지 않은 버릇이 있다는 것을

친구가 멀리 교환학생을 간 뒤에 알았다



학교를 같이 다닐 때는 

대답을 안해도 수일 내로 학교에서 마주치니

대화가 이어져 서운할 일이 없었는데

친구가 다른 나라로 떠난 후로는

몇 달씩 답이 없다가 

또 나중에 미안하다며 불쑥 

연락이 오곤 하는 것이었다



사라지는 시점이

대화의 끝무렵도 아니라 

더 이해하기가 어려웠지만

그래도 타지 생활 적응하느라

바빠서 그렇겠거니

한 번 이해하고

두 번 이해하고

세 번 이해하다

이해한 만큼 커져버린 서운한 감정



하루 이틀도 아니고

짧게는 몇 주

길게는 몇 달

질문형이든 평서문이든 

가리지 않고 

그녀는 쉬이 사라졌다



어느 날 근처 도서관에서

우연히 그녀를 보고도

나는 모른 척 스쳐지나갔다

그녀는 나를 보지 못한 듯 했다

여러가지 생각이 스쳤던 것 같다

벌써 돌아온지도 몰랐었던 터라

이미 쌓여있는 서운한 감정에 

더 불이 붙었는지도 모르겠다




처음이었다

좋아하던 친구를

마치 주말에 마주친 상사처럼

피하는 내 모습이라니




그 뒤로도 우리는 두어번을 더 스쳐갔다

신기하게도 늘 나만 그녀를 보고

그녀는 나를 보지 못했다 




어느 날은 정말 가까워서

이건 무시할 수가 없다 싶어

인사를 하려고 멈췄는데

또 나를 못 본 그녀가 쌩 

하고 지나가버렸다




이쯤 되니 저 친구도 나를

모른 척 하는 걸까 

의심이 들기도 했지만

그러기에 우리는 메신저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저 서로 시험 준비에 정신이 반쯤

나가있었을 뿐




오늘 드디어 그 시험날이 되었다

알파벳순으로 시험장이 정해져서

그녀와 나는 같은 시험장에 배정이 되었다

여기서만큼은 일부러 피하지는 않겠다고 다짐했다

괜찮은 척 연기 정도는 할 수 있겠지 싶었다




시험 10분 전 부랴부랴 도착해서 정신 없던 찰나

정말 강의실에 들어가자마자 그녀가 나를 발견했다

오랜만이라며 팔을 활짝 벌려 안아주는 그녀를 다시 마주하니

그간 서운하던 마음이 또 스르륵 녹았다 




물론 손절까지 할 일은 아니었지만

필요할 때만 연락을 하는 듯한 기분에

이제는 그 친구에게 더 이상 마음을 열어주지 않겠노라

다짐했었는데 

그 다짐이 무색했다




어쩌면 그 다짐은 어쩌다보니 저질러 버린 나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한 자기 합리화였는지도 모르겠다




인간 관계라는 건 기본적으로 어려운데

해외 살이라서 더 쉬운 경우도 있고

더 어려운 경우도 마주하게 된다




그래도 오늘 한 친구의 건망증과

나의 옹졸함을 둘 다 용서하면서

또 한 번 인간에게 희망을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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