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물 공포증 극복
2025년 4월 28일.
수영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나서 7개월이 지났다. 어떤 주는 주 3일을 가기도 하고, 어떤 주는 한 번만 갈 때도 있었지만, 아플 때를 제외하고는 어떻게든 계속 수영장을 다녔다. 기록을 확인해 보니 24년 10월 2일부터 25년 4월 28일까지 47일을 갔다. 허리 통증이 심하고, 논문 마감으로 벅차던 12월은 유난히 횟수가 적었다. 그래도 평균적으로 한 달에 6.7회는 수영을 했다. 적어도 일주일에 1.7회는 수영을 다닌 것이다. 어떤 날은 스스로 너무 가고 싶어서 들뜬 마음으로 달려가기도 하고 어떤 날은 돈이 아까워서 갔다. 그 동기가 어떠했든, 횟수가 어떠하든 나는 계속 수영을 했다.
그리고 오늘!
오늘은 꽤 의미 있는 날이다.
바로 50m 레인 왕복을 처음으로 혼자서 성공했기 때문이다!
특히 나는 발이 닿지 않는 깊은 물에 대한 공포감이 꽤 큰 편이라서 오늘의 성취가 더 큰 환희와 기쁨으로 다가왔다. 더군다나 수영을 전문가에게 배운 게 아니라 혼자서 유튜브를 보며 독학해 왔다는 점에서도 여기까지 온 나의 수영 인생(?)에 혼자서 뿌듯함의 눈물을 흘리게 되는 것 같다.
내가 주로 다니는 수영장의 구조는 25m 레인으로 가려면 50m 레인 옆을 지나서 가도록 되어있다. 그 어떤 영법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던 시절의 나는 50m 구간에는 관심도 없었다. 그저 50m 레인에서 수영하는 모든 사람들이 멋져 보였다. 심지어 그때는 50m 레인의 수심조차 알지 못했다. 그냥 25m랑 똑같은 수심에 길이만 더 길다고 생각했는데, 약 2m에서 4.5m까지 깊다는 것도 나중에야 알았다.
50m에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 시작한 건 대략 한 달 전쯤부터였던 것 같다. 한 번 마음을 먹고 50m 레인에 가까이 가봤는데 투명한 물 사이로 비치는 4.5m 깊이에 숨이 턱 막혔다.
그렇게 한 번은 수심을 들여다보고 돌아왔다.
그러다 또 어떤 날에도 수심을 들여다보고 돌아왔다.
어떤 날은 드디어 도전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25m에서 수영하는데도 유난히 물을 많이 먹은 날이라 50m에서도 그럴까 봐 무서워서 그만뒀다.
그다음번에도 도전해 볼까 하다 또 무서워서 ‘다음에 친구랑 같이 오면 해봐야지…’라는 마음으로 도전을 미뤘다.
그렇게 한 주가 지나고, 또 한 주가 지나다가 조금씩 수태기 (수영 권태기)가 찾아왔다. 수영보다 달리기가 더 재미있다고 생각되던 지난주에 나는 수영클럽 회원권 취소 요청 메일을 보냈다. 남은 기간 열심히 다녀보자고 마음먹고 아침 수영을 나온 오늘은 어쩐지 몸 컨디션이 좋았다. 25m 수영도 제법 스무스했고, 물도 많이 먹지 않았다.
오늘이야말로 도전해 봐?
갑자기 어디선가 불쑥 용기가 생겼다.
아니, 사실은 용기가 생기자마자 두려웠다.
그래도 최근 들어 수영장에 올 때마다 50m에 도전해보고 싶은 욕구가 올라온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그래서 오늘은 좀 더 다가가 보기로 했다.
일단은 50m 레인을 좀 더 자세히 관찰했다.
낮은 출발용 다이빙대가 있기는 하지만 꼭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레인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고 자유롭게 수영하는 구간은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는 계단이 있었다. 자세히 보니 50m 레인의 벽 가장자리에는 발을 딛고 설 수 있는 공간도 있었다. 벽에 바짝 붙어서 수영하다가 여차하면 벽을 잡고 거기에 발을 딛고 서면 될 것 같았다. 또 사다리도 중간중간에 여러 개가 있어서 벽에 붙어있기만 하면 언제든 나올 수 있겠다 싶었다.
공간과 구조에 대한 파악은 끝났다.
문제는 심리적 두려움이었다.
큰 목표는 잘게 쪼개서 작은 태스크부터 하나씩 실천하라고 했던가.
여기에도 똑같은 방법을 적용했다.
일단 물에 들어가 보기
일단 계단을 통해 물에 들어가서 수영장 끄트머리에 매달리는 것까지를 목표로 했다. 계단이 10개 정도 있으면 이미 절반부터 발이 닿지 않았다. 다행히 옆에 잡기 편한 스테인리스 봉이 잘 설치돼 있어서 봉을 잡고 발은 디딤대를 따라 짚으며 이동했다.
제자리 잠수하며 친숙해지기
막상 들어가서 매달려 있으니까 용기가 더 생겼다. 제자리에서 잠수하면서 물속을 들여다보면서 친숙해지는 시간을 가졌다.
조금만 수영해 보기
내가 있었던 곳이 자유 수영하는 곳이라 가능했던 거긴 한데, 일단 조금만 가보기로 했다. 진짜 한 5번 스트로크 하고 무서워서 멈추고 옆에 있는 봉을 잡았다.
거리 조금씩 늘리기
이런 식으로 조금씩 조금씩 거리를 늘려서 많이 무섭지 않을 만큼만 헤엄쳤다가 벽 잡고 턴해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깊은 구간 도전
가장 심리적으로 두려웠던 구간이 수심이 깊어지기 시작하는 곳이었다. 거기가 딱 마지노선 같은 느낌이라 수심이 깊어지는 구간 벽에 매달려서 앞으로 갈지 뒤로 돌아갈지를 계속 고민했다. 처음에는 다시 돌아왔는데 두 번째 시도에서 성공했다.
마인드셋
‘나는 물에 뜰 수 있어’
‘나는 이제 수영을 할 줄 알아’
‘무섭거나 숨이 차면 벽을 잡고 멈추자’
‘그냥 가면 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야.’
‘여차하면 안전 요원이 나를 도와줄 거야.'
'여유롭게 수영하는 저 많은 사람들을 봐봐. 모두가 완벽하게 수영하지 않지만, 그래도 헤엄치고 있어. 나도 아직 부족하지만, 할 수 있어'.
이런 생각들을 계속 머릿속으로 되뇌면서 마음을 안정시킨 후에 나보다 앞서 출발한 할머니를 따라가기로 했다. 누군가의 뒤를 따라가니 심리적으로 좀 더 안정이 되는 느낌이었다.
자유형보다는 평영
처음에는 평영이 느려서 공포를 느끼는 시간이 길어질까 봐 자유형으로 갈까 했는데 체력이 덜 들도 호흡이 더 편한 평영으로 출발했다.
50m 성공!!
그렇게 평영 손동작, 발동작, 호흡을 반복하면서 할머니의 뒤를 따라 헤엄쳤다. 깊은 물 구간에서는 역시나 두려움이 올라왔지만, 금방 다시 마음을 진정시켰다.
‘지금처럼만 그대로 하면 돼. 지금처럼만 그대로 가면 돼.’
그렇게 4.5m 수심 구간에 진입해서도 나는 겁에 질리지 않고 침착하게 레인의 끝까지 평영을 마쳤다.
정말이지 너무너무너무너무 기뻤다!!!
(하지만 부끄러워 속으로만 함성을 지르는 인프피)
자유형으로 돌아가보기
원래는 50m 편도만 하는 게 목표였는데, 평영 50m 성공에 힘을 얻은 나는 자유형으로 다시 50m를 돌아가보기로 새 목표를 세웠다. 숨을 고른 뒤 자유형으로 출발. 하지만 역시 숨이 차서 중간쯤 사다리에 매달려 쉬어야 했다. 그래도 어쨌든 다시 자유형으로 끝까지 마무리!
이렇게 오늘은 태어나 처음으로 발이 닿지 않는 곳에서 보조도구 없이(튜브 없이, 스노클링 마스크 없이!!!!) 100m를 수영한 역사적인 날이 되었다.
물이 두렵지만 물이 좋아서 평생 미루다가 시작한 수영,
주야장천 앉아서 논문 쓰다 몸이 망가질까 두려워 시작한 수영,
37살에 수영을 시작한 일 그 자체,
처음으로 25m를 멈추지 않고 헤엄쳤던 날,
평영 습득 (아직도 자세는 고쳐야 할 것 같지만…),
자유형 습득 (아직도 25m만 가도 숨은 차지만),
50m 깊은 물 공포 극복까지
7개월 동안 혼자 아등바등 대면서 쌓아온 나와의 싸움이자 즐거운 도전이 되어주었다.
특히, 도저히 혼자서는 안될 것 같았던 깊은 물에 대한 공포를 극복했다는 것과 그 공포를 극복한 방법이 내 몸과 마음에 오래오래 남을 것 같다.
'50m를 수영한다고? 내가? 말도 안 돼. 난 못해' 이 생각이 디폴트였고 25m 조차 버거워했던 내가 자신감을 얻으면서 50m에 도전하고, 그 깊은 수심에도 용기 내어 부딪쳐 볼 수 있었던 건, 그래도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수영장에 발도장을 찍으며 어푸어푸거렸던 나의 지난 하루하루와 그 사이 단단해진 나의 마음, 그리고 할 일을 잘게 쪼개어 보라던 인터넷에서 보았던 어느 팁이 함께 만들어낸 위대한 성취였다.
수영,
하길 정말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