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일기
함부르크는 드디어 따뜻한 날이 안정적으로 찾아오기 시작했다. 요며칠 아주 따숩다가도 비가 주룩주룩 오다가 정신없이 널을 뛰어서 머리까지 아파왔는데 이번주는 계속 맑음 이다. 오늘은 오전에 병원에 들렀다가, 오는 길에는 마트에 들려서 텅 빈 냉장고를 조금이라도 채울 먹거리를 샀다. 이상하게 과자가 너무 땡겨서 이것저것 샀는데 허니머스타드&어니언 칩이 너무 맛있어서 뜯자마자 다 먹어버렸다.
'무슨 과자 이름이 코끼리야' 하고 별 생각 없이 집어들었는데 코끼리 코에 휘감긴 것처럼 끊임없이 먹어버렸다. 조금 찾아보니 30년 넘게 과자를 만들고 있는 유럽 회사라고. 다음에 다른 맛도 먹어봐야겠다. 유럽에 계신 분들이나 여행하시는 분들은 꼭 드셔보시기를 추천해 본다.
면접 준비는 나름 순조로웠다. 예상 질문에 대한 답변을 ChatGPT의 도움을 받아 후다닥 끝을 내었다. 물론, 그 답변을 그대로 쓰진 않는다. 답이 너무 뻔하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내 이야기를 적절히 버무려야 감칠맛이 나기 때문이다. 이제는 이것을 독일어로, 또 영어로 달달달 외워야 한다. 그리고 유튜브에서 이 회사의 제품들에 대한 영상이나 이 회사의 최근 근황에 대한 영상들을 찾아봤다. 참 신기하다. 스물넷 즈음에 취업준비하던 시절과는 또 다르다. 그 때도 인터넷은 썼지만, 모든 조사를 직접하고, 스터디에 나가 사람들과 머리를 맞대고 서로 정보를 모으곤 했었다. 그런데 15년이 지난 지금은 AI가 내 취업 준비를 도와주고 회사 정보나 서비스를 수도 없이 많은 영상들을 통해 더 실감나게 파악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확실히 엄청나게 편해졌다. 혼자서 면접 준비를 할 때의 부담이 특히 많이 줄어들었달까.
내일은 취업준비비자를 받으러 외국인청에 간다. 작년말부터 지금까지 오랜만에 외국인청과 씨름하고 있는 이번 비자 연장은 정말 잊고 살았던 독일 외국인청의 악명을 다시 실감하게 했다. 혹시 몰라 요청받지도 않은 자료까지 프린트를 해왔다. 쓰라고 한 것도 아닌데 독일에서의 취업 계획서도 A4 한장 분량을 적었다. (물론 ChatGPT의 도움으로 빨리 썼다. 진짜 요물이다 요물) 사실 이런 취업 계획서 같은 건 지금 내 상황에 별 필요는 없을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조금 안심이 된다.
부디 비자 연장도 잘 마무리 되고, 내일 편안한 마음으로 면접 준비를 이어나갈 수 있기를.
- 오늘 감사한 존재들: 병원 의사, 간호사, 마트 직원분들, 지하철 기사, 버스 기사, 오늘 내가 시청한 영상 올려주신 유튜브 채널, 내 면접 준비를 도와주는 아이패드, 아이패드 펜슬, 아이폰, 맥북, 애플 워치, 챗지피티, 이웃이 고양이 돌봐줘서 고맙다고 가져다 준 과일과 간식들, 그 과일을 키워주신 이웃의 부모님, 넷플릭스 드라마 제작팀, 넷플릭스 직원들, 얼그레이차, 쌀국수 면, 쌀국수 육수 조각, 청경채, 사과, 블루베리, 따뜻한 날씨, 응원해주는 고마운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