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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 Jul 18. 2021

에디터가 되고 싶은 이유

왜 나는 5년 동안 잘 해오던 브랜드 기획일을 접고 에디터가 되고 싶었을까?

브랜드 네이밍은 좋아했지만 평생 이 일만 할 것 같아서 도망쳤던 걸로 기억한다. 꿈에서도 상표권 관련 법률 이슈가 나를 괴롭혔고, 내가 만든 이름이 세상에 나오면 기분이 좋았지만, 그렇게 누군가의 자식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나면 그걸로 내 임무는 끝이었다. 서비스디자인에 관심을 가지며 고객 경험을 설계할 수 있을 것 같아 옮긴 회사에서도 네이밍에 보낸 시간이 제법 많았다. 지쳤다. 좋아하던 일이었지만 방식이나 환경에 따라 스트레스를 적잖게 받았던 것 같다. 그리고 나서 어떤 일의 영역을 넓힐까 고민하다가 에디터를 택했다.


작년에 내가 처음으로 콘텐츠 에디터라는 업을 도전하면서 그 계기를 말했을 때 이렇게 적었다.


기업을 설득하는 것보다 소비자를 설득하고 싶었고, 코멘트나 조회수 등 나의 결과물에 사람들의 반응이 즉각적인 걸 원했다. 단순하게 인정 욕구를 내가 생산해낸 콘텐츠로 의미 있게 채우길 바랬다.

(자세한 이야기는 '5년 차 브랜드 기획자의 퇴사 일기'에 담았다.)


생각보다 콘텐츠로 남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컸군.


실제로 콘텐츠 에디터로 일하고 지난 1년을 돌아보니, 그리고 새로운 스텝을 준비하며 내가 에디터가 되고 싶은 이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니,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다시 말하면 나에게 좀 더 솔직해지고 계속 스스로에게 물어보며 답을 뾰족이 만들었다. 인정이 근본적인 욕구는 아니었다. 그럼 남의 인정이 없으면 일하는 이유나 어떤 목적의식이 사라지는 꼴이니까.


사실 초반에는 '에디터'란 직업이 멋있어 보였다. 편집장이란 편집장의 인스타그램을 다 팔로우하면서 트렌드의 최전선을 가장 먼저 경험하며 물어다 주는 소식을 쭉쭉 흡수하고 보이는 일을 동경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고, 그들을 연결해주고, 이를 글로 풀어내는 게 엄청난 일이라 생각했다. (보그나 엘르 같은 트렌디 of 트렌디한 패션지는 내가 범접할 수 없는 세계인 것 같았고, 개인적으로 컨셉진, 어라운드, 월간 디자인을 더 좋아한다.)



최근 받은 면접 질문 중에 나를 브랜드로서 소개해 보라는 질문이 있었다.

저는 좋아하는 걸 널리 알리는 사람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그게 에디터가 되고 싶은 첫 번째 이유다.

개인 인스타그램에는 셀피를 비롯한 인물 사진은 아예 없다. 음식 사진도 거의 없다. 경험 설계가 잘된 공간, 새로운 기획이 돋보이는 브랜드나 제품, 인상 깊은 문장을 주로 올렸다.


좋은  나누면 배가 된다 이런 마음이 기저에 깔려있던  같다.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보다는, 아니 내가 이거 직접 가봤는데, 너무 좋아 너도 가봐! 이 컸다.


핫하디 핫해 포토존으로 유명한 곳은 소문난 잔칫집에 먹을  없다는 말이  들어맞아 번번이 실망스러웠기에, 정방형 프레임 밖의 공간과 요소들에서 영감을 찾았고, 그 공간이 이유올렸다. 책을 읽고 나서도 이거 읽어봤는데 진짜 좋아, 너도 읽어봐!라는 마음이  컸다.  

타인에게 정보도 공유하고  스스로 생각 정리하는데 도움도 되었으니 나쁘지 않았다.



에디터가 되고 싶었던 두 번째 이유는 책 '강점 혁명'의 스트렝스 파인더 검사 결과를 보며 분명해졌다.


리서치로 유명한 갤럽에서 40년 동안 1천만 명의 사람을 대상으로 인터뷰해 인간의 재능을 34가지 유형으로 구분하고, 스트렝스 파인더란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일종의 심리 테스트 같은 방식인데, 검사를 마치면 34개 유형 중 가장 최상위 5개 강점을 도출해서 알려준다.


내 최상위 강점은 공감 / 긍정 / 개별화 / 수집 / 배움이다.

검사 후 심층 분석 가이드를 pdf 파일로 나눠주는데,

'어머 이거 완전 족집게야. 맞아 맞아!  이런  좋아했지' 하며 밑줄을 팍팍 그었던 문장은 아래와 같다.


개별화 -                  

당신은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일을 함으로써 큰 만족을 얻습니다.


수집 -       

당신은 영향력을 발휘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인해 지적인 이들과 대화하려는 의욕을 갖는 편입니다.

당신은 아마도 질문을 하기를 좋아하고 답변을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당신은 때에 따라 다양한 통찰을 종합해 나중에 이 러한 지식의 일부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합니다.

천성적으로 당신은 아마도 다양한 문서나 책에서 많은 정보, 사실 또는 통찰을 수집할 것입니다.  


배움 -

당신에게 있어 정말 좋은 날이란 머릿속의 지식창고에 새로운 통찰을 더한 날을 의미합니다.

당신은 정보를 얻어 지식 기반을 넓힐 때마다 열심히 일할 힘이 더 생깁니다.


일을 통해서 많은 걸 얻고 싶었다.

사무실에 콕 박혀있기보다 사람을 만나며 교훈을 얻고 싶었고, 좋은 것들을 마구마구 경험하고 싶었다.


여러 사람을 만나 좋은 이야기를 듣고, 자료를 수집하며 다양한 것을 습득하고, 사람들 간의 원만한 관계와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일, 그로 인해 으쌰 으쌰 힘을 합쳐 좋은 결과물을 내는 일.

이런 포인트 때문에 잘할 수 있을 거란 용기가 생기고 도전해 보고 싶은 일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잘한다는 건 아니다.

부족한 게 너무 많아서 배워야 할 게 산더미인 신입이나 다름없다.

커머스 상세페이지 기획 말고 일반적인 '에디터'의 직무로 일컬어지는 일은 많이 접해보진 못했다.

마감의 압박도 모르고, 인터뷰이를 섭외해 직접 기사를 다듬어 본 경험도 없다. 최종 인쇄물의 감리를 해본 적도 물론 없다.


그래도 이 매력적인 에디터란 직업을 내 이름 앞에 붙여서 부끄럽지 않게 잘 해내고 싶다.

따뜻한 위로, 소소한 기쁨, 싱거운 일상에 소금처럼 간간한 영감과 재미를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신나게 일하는 나를 만나고 싶다.


혹시나 누군가 내 콘텐츠에서 인생 음식을, 인생 책을, 인생 롤모델을 찾을 수 있다면 이 얼마나 감사하고 뿌듯한 일일까.


부디 좋아하는 것으로부터 좋은 것을 골라내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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