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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 Jul 19. 2020

5년차 브랜드 기획자의 퇴사 일기

브랜드 기획자에서 콘텐츠 에디터를 택한 이유

5년 동안 2개의 브랜딩 컨설턴시에서 기획자로 일해왔다. 이번주를 마지막으로 퇴사를 했다. 업계를 떠난다.


 '브랜딩'은 여전히 매력적인 키워드로 회자되고 있고 판타지의 영역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꽤 멋지고 의미있는 비즈니스인건 분명하다. 이 일을 매일하면서 느꼈던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 나에게 때로는 판타지였다가 때로는 아쉬운 현실도 셀프 인터뷰 형식으로 솔직하게 남기며 마무리를 해보려고 한다.



Q. 어떻게 이 업에 발을 들여놓았는지?

기업 대상 마케팅 교육을 담당하는 회사의 인턴 시절, 명란젓을 리브랜딩 할 수 있는 좋은 프로젝트 기회가 있었는데, 인턴 나부랭이가 생각한 슬로건이었음에도 운이 좋게 명란젓 패키지에 턱!하고 붙어 마트에서 팔리게 되었다.


#시작은 네이미스트 / 버벌리스트

그 때의 뿌듯함과 희열을 잊지 못해, 이렇게 이름을 짓고 슬로건을 짓는 일을 수소문했다. 그러다 '브랜드메이저'란 회사를 찾았고, 이 일이 '네이밍'이라는 직무로 불린다는 사실을 그때서야 알게되었다. 공고를 보자마자 이것은 운명의 데스티니 같다며 뽕에 취해 입사 지원을 했고, 이 곳에서 본격 회사생활을 시작했다.


 20년 동안 래미안, KTX, 알펜시아 등 누구나 알만한 이름을 지었던 왕년에 네이밍의 한 획을 그었던 1세대 브랜딩 에이전시였다. 3년간 구르며 굵직한 기업들의 브랜드 컨설팅 의뢰가 오면, 신규 브랜드 네이밍, 회사 사명, 슬로건, 제품에 붙는 명칭체계까지 다양하게 verbal로 다룰 수 있는 것들을 경험했다.


열정 넘쳤던.. 스물다섯살 신입시절..핳하하ㅎ


Q. 이름만 지었나?


#생각보다 다양한 일을 함

매일 공장처럼 이름만 찍어내지는 않는다. 전체적으로는 비즈니스에 대한 이해와 , 어떻게 하면 이 브랜드가 잘 성장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은 기본이다. 이름을 짓기 위해서는 리서치도 해야하고, 브랜드 컨셉도 생각해야하고, 상표 검색도 해야하고, 기업을 설득하기 위해 전략적인 근거 자료도 만들어줘야하고, 부정적인 연상은 없는지 원어민 대상 조사도 해야하고, 디자인으로 이어지기 직전에, 어떻게 디자인이 나오면 좋겠는지 함께 방향에 대해 고민하기도 한다.



내가 지은 이름이 세상에 나오는 순간에는 무척 뿌듯했으나, 좀 더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었다. 브랜딩의 아주 일부만 맛본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때로는 클라이언트가 좋다고 한 후보안이 상표 심사에서 거절이 나면 어떡하지? 하는 전전긍긍의 상태를 그만하고 싶었다. 상표 사고가 터지는 악몽도 꿀만큼 불안과 부담이 있었던 것 같다. 맨날 이름만 짓는게 진짜 좋은 일인지도 스스로 의심을 가지기 시작한거다.


#브랜드 경험

나는 브랜드의 커뮤니케이션 활동들을 찾아보며 ,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지? ‘하고 영감을 얻는 것도 좋아하고, 브랜드가 오프라인 스토어를 열면, ‘아 얘네가 이런 철학을 이렇게 풀었구나!’하고 발견하는 그 자체를 정말 즐기고 좋아했다.


업무적으로 도움이 되기 위해 노력한것도 있지만,

진짜 내가 오감으로 브랜드 아이덴티티의 실체화를 느끼는게 나에겐 어떤 엔돌핀처럼 느껴져서, 마냥 좋아했다. 지금도 그렇고. 



브랜드 '경험'을 좀 다뤄보자 싶어서, 평소에 보고 느낀 것들과 오프라인 공간 경험을 브랜드가 어떻게 풀어내는지 브런치에 정리해나갔고,  덕분에(?) 이번주까지 몸담았던 '샘파트너스'에 입사했다.


브랜드 경험 디자인과 관련해서 업계에서 잘 알려져있고, '디자인 잘해'라는 말을 많이들 주변에서 한다고 들었다.

샘파트너스 인스타그램 캡쳐본이라 약간 흐릿.. ㅠㅠ


브랜드 경험 디자이너라는 타이틀을 달고  BXC (Brand eXperience Concept) 팀에 입사하여 1년 7개월 동안 업무를 이어나갔다. 언제나 내가 하고 싶은 일만은 할 수 없듯, 공간이나 브랜드 경험을 다룰 수 있는 프로젝트를 많이 접해볼 수는 없었다.


전회사와 비슷한 일을 하되, 다양한 리서치 방법으로 인사이트를 도출하는 일을 비롯해

좀 더 기획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업무가 많았다. 여기에 컨셉적으로나 시각적으로나 매력적인 결과물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난 것은 확실했고, 기획적인 부분을 많이 배울 수 있었던 점에서 좋은 회사였다.



Q. 그렇다면 결정적으로 퇴사를 결심한 계기는?


#찐브랜딩

브랜딩이 싫은건 아니다. 나는 브랜딩이 좋다.

브랜드 관점이 좋다.


브랜드는 차별화된 관점과 철학을 바탕으로
고객 접점에서 일관되게 이야기해야 한다.


보고서에 거의 빼놓지 않고 이런 문장이 들어가는데,

실제로 내가 이런 일을 제대로 해봤는지 의문이었다.

도대체 브랜딩이라는게 뭘까? 매너리즘에 종종 빠졌다.



우리의 역할은 컨셉, 이름,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주는 것까지다. 브랜드가 잘 살아남고 있는지, 죽어가는지 알 길이 없다. 그것은 클라이언트의 몫일뿐.브랜드의 행보를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종종 보면서 가늠만 할 뿐이다.



브랜드의 뿌리를 만들어주는 일이니 너무 중요하고 핵심적인 일인것은 맞고, 이 일에 자부심을 느꼈지만,

그 뒷단에서 직접 실행해보고 브랜드를 유지, 관리하는 일까지도 경험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인정욕에서 출발한 컨텐츠 에디팅

내가 좋아하는게 뭔지, 잘하는게 뭔지 끊임없이 질문하고 스스로 답하는 과정에서 한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기업을 설득하는 것보다 소비자를 설득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물론 클라이언트가 만들고 싶은 브랜드의 엔드유저인 소비자를 생각해서 기획하긴하지만,

즉각적인 반응이 숫자든 코멘트든 그 어떠한 형태로 와서 나의 결과물에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보고 싶었다.  내 안에 '인정 욕구'가 컨텐츠를 통해 좀 더 빠르고 의미있게 채워지길 바랬던거다. (아마 그래서 브런치에 글을 쓰는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컨텐츠는 브랜드 관점에서 기획되면 더욱 좋고, 글이나 짧은 카피로 재치있게 풀어질 수 있는 것이면 더 내가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Q. 그럼 이제 브랜드 관점에서 컨텐츠를 만드는 일을 시작하는건가?


그렇다. 이직을 한다. 콘텐츠 회사에 콘텐츠 에디터로 입사를 앞두고 있다. 미디어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커머스 브랜드를 맡아 제품의 셀링포인트를 잘 적되 그 안에 의미까지 잘 담아내야하는, 결국 질적인 컨텐츠와 미디어 커머스 브랜드만의 일관된 톤앤매너를 가진 컨텐츠를 개발하면서 동시에 매출로 성과를 증명해야 하는 일을 한다.


#단순 카피보다는 관점과 포인트가 명확한

 사실 그냥 뚝딱뚝딱 그 자리에서 기계적으로 카피를 만드는 것보다도 쓸모 있는 글이 되기 위해서는 얼마나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것인가/ 다른이들과 어떻게 구분되게 어필할 것인가/사게 할 것인가 / 또 오게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하기 때문에 많은 생각과 검증이 필요하다.


이것은 기획을 넘어 궁극적인 실행에 가까운 일인지라 기대된다. 내가 에디터요, 마케터요, 세일즈 직원이요, MD요 기타 등등 제너럴리스트가 될 수 있는 기회임은 분명해보인다.

소비자를 설득시키는 일, 바로바로 피드백을 얻는 일은 처음 해보는 일이라 두려움이 앞서는건 사실이다.


험난하고 치열한 커머스 시장, 컨텐츠 시장에서 부디 좋은 브랜드로 뿌리내릴 수 있기위해

두렵긴하지만, 지금까지 배워온 것들, 모아온 영감들을 토대로, 부지런히 공부하고 열심히 뛰어다녀야겠다.



앞으로 전문성에서 중요한 것은
하는 일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잘 이해하고,
자신이 해온 경험을 새로운 일에 연결하며,
변화의 흐름을 주도적으로 만들어가고
예측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 커리어 엑셀러레이터 김나이님의 글 中



나는 업계를 완전히 떠나는 것도,직업을 바꾸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을 달리 했다.

브랜딩 프로세스의 연장선상에 서서 나의 영역을 넓히는 것 뿐이다. 내가 중요시 여기는 가치와 내가 잘 할 수 있는 영역을 꿰어 다음 단계로 연결한거라고 믿는다.





@_oni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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