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비를 챙겨 입고 빗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사람
비 오는 날의 산책은 제법 낭만적이다. 왜 그럴 때 있지 않나. 우비를 쓰고 빗 속에 몸을 내던지고 싶을 때. 조금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수직으로 하강하는 액체와 횡으로 걷는 인간의 조합은 어찌 보면 그 풍경 하나만으로 예술적이기도 하다. 차가 막히고, 위험하고, 옷이 젖는 등 어떤 불편함을 다 갔다 붙여도 이상할 것 같지 않은 호우경보의 여름날이지만 불편함이 아닌 즐거움으로 해석하기도 그만큼 쉽다. 타닥타닥 쏴아 쏴아 퍼붓는 빗소리, 우비에 떨어지는 약간의 둔탁한 소리, 발가락 끝에 느껴지는 차가움, 특유의 비릿한 비 냄새까지. 온 감각이 비로 인해 열리는 순간을 짧고 굵게 기억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또 사람이 웃긴 게 이 시기를 통과하고 나면 여름이 금방이라도 떠날 것만 같은 아쉬움, 입추라는 절기가 붙은 어느 날을 보내주자니 괜스레 시린 바람이 성큼 찾아올 것만 같아서 유예하고 싶은 마음도 겹쳐 들기 마련이다. 뜨겁게 작열하는 태양 아래 우리가 통과한 더위와 마음들이 이 비에 다 씻겨 나가기라도 하듯 헛헛한 마음도 지울 수 없네. 오늘의 여름은 다시 오지 않는다. 비 내리는 지금의 여름도 그렇다. 그러다 문득 더우면 더운 대로 비가 내리면 시원한 대로, 또 추우면 추운 대로 변화무쌍한 날씨와 계절에 따라 감각을 느껴보거나 감정을 되짚어 볼 줄 아는 인간이라서 한편으로는 참 다행이고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