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N Jul 15. 2023

도토리는 그렇게 숲이 된다

씨앗부터 키워 숲을 만드는 '노을공원시민모임'

쓰레기로 산을 만든 데가 있다. 다른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서울의 왼쪽 동네, 난지도를 두고 하는 말이다. 과거 1990년대 각종 생활쓰레기, 건설폐기물 등을 잔뜩 쌓은 매립지다. 그 위에 흙을 덮어 공원을 만든 게 지금의 월드컵공원이다. 인근 주민의 증언에 따르면 쓰레기산이었을 때 그렇게 악취가 났다고.


과거 난지도 사진 _ 네이버 지식백과


외형적으로는 여느 공원과 다를 것 없지만, 쓰레기로 덮였으니 흙에는 어떠한 나무나 꽃들이 건강하고 오래오래 자랄 리가 없을터. 진정으로 생명이 존재하기 좋은지 고개를 갸우뚱하기 충분한 곳이었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란 고민에서 그렇게 '노을공원시민모임'(이하 노고시모)은 출발했다. 노고시모는 노을공원 한켠에, 그리고 쓰레기산 비탈진 언덕에 나무를 심어 숲을 만든다. 활동햇수로는 꼬박 13년 차. 특히 이 모임에서는 '집씨통'으로 시민들이 도토리를 직접 키워 내게한 부분이 인상 깊다.


다시 말해, 도토리를 집에 가져가 3개월 정도 키운 다음, 노고시모에 다시 가져다주면, 노고시모는 그 여린 아이를 묘목으로 더 키우고, 옮겨심으며 숲을 만들 수 있게 한다. 도토리를 담아가는 나무도 공원에서 쓰임을 다하거나, 어쩔 수 없이 잘려나간 나무들을 가지고 만든 거라고. 콩알만한 도토리가 흙 속에서 뿌리를 내리고 위로는 가지를 틔우는 일을 경험하다 보면 여기서부터 생명의 경이로움을 느끼게 된다. 도토리는 다람쥐의 먹이라거나 묵을 쑤어먹는 원재료로만 알았지, 이렇게 키우면 참나무가 되는 줄은 전혀 몰랐다.



실제로 노고시모가 관리하는 '나무자람터'에 가보면 1년생, 2년생, 10년생까지 자란 참나무를 비롯해 각종 나무를 볼 수 있다. 키가 일반 나무만큼 쑥- 커진 참나무를 보면, 내가 키운 도토리 하나가 진짜 숲이 될 수 있겠다는 희망이 발아된다.


그다음부턴 도토리 한 알 = 곧 생명이란 생각이 들면서, 한 알 한 알 허투루 할 수 없게 된다. 그렇게 도토리의 신비를 알게 된 후로 나는 노고시모에 푹 빠져버렸다. 이 모임에서는 시민 활동가를 '개미'라고 부르는데, 181번 개미 00온님! 하고 활동가 선생님들이 불러주시면 어딘지 모르게 숲을 만드는데 일조한다는 막중한(?) 사명감도 생기고 책임감도 커지는 듯하다. 한 달에 한 번은 가려고 노력 중인데, 갈 때마다 나는 새로운 자연의 힘과 더불어 함께 하는 삶에 대한 감각을 깨우고 온다.


첫 봉사에서는 개미(시민)들이 가져온 집씨통에서 아기 도토리 싹들을 조심히 꺼내고, 흙에 고랑을 파고, 고랑을 판 곳에 그것들을 옮겨 심었다. 두 번째 봉사에서는 잡초를 뽑고 들메나무 한그루를 심었다. 거의 생태학습에 가까울 정도로 지천에 널린 꽃과 나비, 나무의 이름을 활동가 선생님이 알려주셔서 자연의 기쁨을 맛보는 시간에 가까웠다.



그다음 봉사는 가장 힘들었는데, 낮 온도가 33도쯤 되었을까. 땀을 뻘뻘 흘리며 층층나무, 쉬나무 총 5그루를 심었다. 비탈길을 내려가 삽질로 구덩이를 파면 온갖 쓰레기를 만난다. 그 순간 깨닫는다. 여기 진짜 쓰레기산이구나. 정말 쓰레기는 썩지 않고 고대로 있구나. 깡깡! 삽으로 파면 자꾸 벽돌이나 철근 같은 것이 부딪히며 소리가 났다. 옷 뒤에 달린 텍이며 화투장까지 나온다. 그렇게 쓰레기를 파내고 묘목을 심고, 흙으로 다시 덮고 흠뻑 물을 준다. 2시간 동안 다섯 그루 심는데도 너무 힘이 드는데, 노고시모에 상주하는 활동가 선생님들은 200그루씩도 심는다고 하신다.


갈 때마다 와줘서 고맙다며 환한 웃음으로 맞이해 주시고, 시원한 물이며 간식도 틈틈이 챙겨주시는 선생님들 덕분에, 늘 나무 심으러 간다는 명목하에 받기만 하고 돌아오는 것 같아 죄송하고도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숲을 만드는데 진심인 이들과 함께하고 싶어 고민도 않고, 목수책방 출판사에서 나온 책 <씨앗부터 키워서 천이숲 만들기>를 산 이유도 있다.


정말 노고시모에서 나무 한 번 심어 보면, 이 책이 술술 잘 읽힌다. 동시에 내가 생명, 자연,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터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노고시모가 어떻게 활동을 시작했고 지속해오고 있는지를 중심으로 내용이 전개되지만, 중간중간 철학적인 사유를 불러일으키는 좋은 문장들로 가득하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가진 그 힘을 펼치기로 선택하는 것이다. 숲의 일원으로 자연의 일원답게 지금 내딛는 한 걸음을 모두 살리는 방향으로 내딛는 것, 그렇게 모두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진실한 마음을 내가 마주하는 모든 순간에 아낌없이 담을 수 있다면 설령 굴곡이 있다 해도 삶은 빛을 향해 열릴 것이다.

-p.222~223



모든 존재는 빛의 씨앗을 품고 세상에 온다. 누군가는 그것을 잊고 살아가고 누군가는 기억하며 살아간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자신이 빛의 씨앗을 품은 존재임을 기억하는 사람은 그 씨앗이 나뿐 아니라 너의 길도 밝히는 등불의 나무로 자라도록 소중히 돌본다.

-p.243



나무를 심으면서 나는 이 일이 지구를 위한 일이라고 거대하게 생각하기보다 나를 위한 일이라고 몸소 느낀다.

우스갯소리로 나중에는 어디서 살 지 사람들이 지역을 고를 때, 물에 가라앉지 않을 곳, 산사태가 나지 않을 곳을 선택하지 않을까?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근데 이렇게 비가 많이 내리고 갈수록 날은 더워지고, 계절의 구분이 이전과 달라지는 걸 피부로 느낄 때마다, 이렇게 더워질수록 사람들은 에어컨을 더 틀어대면, 그럴수록 더 이산화탄소는 많아지겠지? 하며 무서움을 느낀다. 그렇다고 집에서 걱정만 할 게 아니라,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실천하는 게 맞다는 생각으로 기울었다. 단편적으로는 플라스틱 쓰지 않기가 되겠고, 더 나아가 이렇게 노고시모의 일원으로 숲을 만드는 일에 동참하는 쪽이 가깝겠지.



솔직히, 이곳에서 나무를 심고 있으면 마치 성당에서 고해성사를 받을 때 기분처럼 속죄하는 마음, 죄책감을 씻어내는 마음이 살짝 들기도 한다. "평소 제가 쓰레기를 버리고 에너지 자원을 낭비한 일에 대해 용서해 주세요~"의 마음으로, 자연을 돌보게 된다.



나무를 심기 위해 기꺼이 허리를 숙이고 몸을 낮추는 일. 자연 앞에 겸손해지라는 말을 새기는 순간이다. '인간은 결국 자연, 땅에 닿기 위해 구부리고, 겸허한 마음과 자세를 가질 수밖에 없구나'싶다. 손톱 및이 까매지고 더러워진 옷을 봐도 기분이 나쁘지 않다. 오히려 좋다. 이렇게 한껏 겸허해지고 자연스러워지는 게 인위적이지 않고 이거야 말로 인간답다고 생각하니까. 우리도 자연과 별개가 아니라 결국 우리도 이런 흙 한 줌에서 왔다가, 그렇게 또 갈 테니까.

얼마 되진 않지만 그래도 몇 번의 활동을 거듭하니, 진정으로 내가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는 곳이 되었다.

이곳까지 가려면 집에서 편도로 넉넉히 2시간은 잡아야 하는데, 가는 길은 언제나 설레고 즐겁다. 이곳에 가면 그냥 기쁘다. 현실의 고민이 사라진다. 흙냄새 맡고, 공원에 산책 나오는 사람들에겐 알려지지 않은 구석진 곳에서 나무를 심고, 정성껏 다른 시민들과 활동가 선생님들이 가꾼 나무들을 보면서 행복을 느낀다. 약간의 안도감도.


이 마음을 고이 간직하고 싶은 사람부터, 그래서 숲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한 분들은 꼭 한번 <씨앗부터 키워서 천이 숲 만들기>를 읽어보셨으면 좋겠다. 연대하기. 같이 살아가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길만이 우리가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인간성을 회복하는데 꼭 필요한 태도인 것 같다.



나도 나무 한번 심어보고 싶다면?

노을공원시민모임


책 '씨앗부터 키워서 천이숲 만들기'



매거진의 이전글 호우 단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