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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딸기 Jan 29. 2021

러시아가 시끄럽다

1월 18일 체포돼 끌려가는 나발니. | AP


러시아가 시끌시끌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 반대하는 집회가 지난 주 곳곳에서 열렸다. 70여개 도시에서 일어났다는 보도가 있는가 하면, 민주화를 요구하는 진영에서는 100곳이 넘는 도시에서 동시다발 시위가 벌어졌다고 주장한다.

작년 여름부터 극동의 블라디보스토크나 하바로프스크 등에서 반푸틴 시위가 잇따랐다. 푸틴 대통령이 장기집권을 하기 위해 추진한 개헌안에 반대한 시위도 있었고, 하바로프스크 주지사를 잡아가둔 것에 항의하는 시위도 있었다. 어쨌든 극으로 치닫는 푸틴의 권위주의와 억압통치에 대한 반발인 것은 분명하다. 특히 지난주 시위는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스부르크 같은 대도시만이 아니라 전국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이 중요해 보인다. 시베리아의 야쿠츠크에서는 영하 53도의 추위 속에서도 시민들이 거리로 나왔다. 그 날의 시위로 러시아 전역에서 수천 명이 체포됐다.

나발니는 어떤 인물

발단은 반푸틴 인사 알렉세이 나발니의 체포였다. 알렉세이 아나톨리예비치 나발니. 1976년생, 만 44세. 인권변호사이자 부정부패와 싸우는 활동가, 정치인이다. ‘러시아의 미래’라는 정당을 이끌고 있다. 유튜브 구독자가 600만명이 넘고 트위터 팔로어가 200만명에 이른다.

나발니는 러시아 정부와 보안당국의 핍박을 받아왔고 이미 여러 차례 체포된 적 있다. 2013년 7월과 2014년 12월에는 기소됐다가 형 집행정지로 풀려났다. 2013년 나발니는 모스크바 시장선거에 나서서 27%를 득표, 결선에 올라갔다. 결선에서 푸틴이 지명한 세르게이 소뱌닌에게 밀리긴 했지만 크렘린을 놀라게 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고 나서 기소된 것이었기 때문에, 향후 선거 출마를 막으려는 정치적 기소라는 비판이 많았다. 실제로 나발니는 2018년 대선에 출마하려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대법원 결정에 막혀 입후보하지 못했다. AP통신에 따르면 푸틴은 "절대 나발니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고 한다. 

지난해 8월 나발니는 신경을 마비시키는 독극물에 중독돼 중태에 빠졌다. 다행히 국제사회의 도움 덕에 러시아를 벗어나 독일 베를린의 병원으로 후송될 수 있었다.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등이 개입된 독살 시도로 서방에서는 보고 있다. 비밀요원들이 국내선 항공편 안에서 나발니의 속옷에 독극물을 묻혀 살해를 시도했다는 보도들이 나왔다. 그 책임을 물어 독일과 영국 등은 러시아 제재를 강화했다. 나발니는 치료를 마치고 1월 17일 러시아로 돌아왔으며, 귀국하자마자 체포됐다. 이어 항의시위가 일어나자 당국은 나발니 대신 시위를 주도한 부인 율리아도 구금했다.  


Protesters - and police - braved freezing conditions in Yakutsk [REUTERS]


종신집권 길을 연 푸틴

시위를 촉발시킨 직접적인 계기는 나발니라지만, 사실 푸틴이 집권한지 너무 오래됐다. 푸틴은 보리스 옐친 대통령 말기인 1999년 8월 총리가 됐고, 넉 달 동안 대통령 권한 대행을 한 다음에 2000년 공식 취임했다. 헌법상 대통령은 미국과 마찬가지로 중임을 할 수 있지만 연임은 2번까지만 가능하다. 그래서 2연임으로 8년간 집권했다가 2008년 퇴임했다. 하지만 측근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를 대통령으로 앉힌 뒤 총리로 내려앉아 권력을 휘둘렀으며 4년 뒤인 2012년 '얼굴마담' 메드베데프를 다시 총리로 내려보내고 재집권했다. 지금 스무살이 된 러시아 젊은이들은 태어난 이래 내내 푸틴 체제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 사이에 푸틴은 헌법을 바꿔 대통령 임기를 6년으로 늘렸다. 그렇게 해도 2012년 재집권했으니 2024년이면 물러나야 한다. 그런데 지난해에 헌법을 고쳐, 현 대통령이 지금까지 집권한 것은 치지 않고 다시 임기를 0에서부터 세기로 했다. 2024년 푸틴이 대선에 재출마해 당선되면 또 12년을 집권할 수 있는 것이다. 84세인 2036년까지, 사실상 종신집권의 길을 연 것이나 마찬가지다. 반대 시위가 일어났지만 개헌안은 결국 통과됐다. 

아직은 '강한 지도자', 하지만 커져가는 반발

푸틴이 첫 집권했을 때 러시아는 민주화 와중에 매우 불안정했고 경제도 무너진 상황이었다. 체첸자치공화국의 분리주의 투쟁과 테러도 격렬했다. 푸틴은 국가를 안정시키고 강한 러시아라는 국제적 위상을 만든 지도자로 국민들에게 각인됐다. 2000년대에는 미국 조지 W 부시 정부와 대립하면서 국제사회에서 위상을 높였다. 당시에는 고유가였기 때문에 석유, 천연가스 대국인 러시아 경제도 좋았다.

그러나 2012년 재집권 뒤 권위주의와 억압의 강도가 심해졌다. 언론을 장악하고, 비판적인 집단은 모조리 '외국 스파이'로 몰고, 외국인 혐오와 성소수자 혐오를 부추기며 지지자들을 규합했다. 미국 유럽 등의 선거에 인터넷 여론조작이나 해킹 같은 방식으로 개입해 갈등을 초래했고 러시아를 고립시켰다. 국내에서도 반발이 커지는 양상이다. 

2013년부터 줄곧 성장률에서 세계 평균에 뒤처진 러시아. 모스크바타임스


경제상황도 좋지는 않다. 결정적인 계기는 2014년 우크라이나 땅이던 크림반도를 병합한 것이었다. 이 때문에 서방과의 갈등이 극으로 치달았고 경제제재를 받게 됐다. 그럼에도 러시아가 크게 흔들리지는 않았다. 고유가 시절에 쟁여놓은 현금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해 코로나19로 인한 타격은 피하기 힘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가뜩이나 유가가 떨어졌는데, 코로나19가 그렇게 심각해질 줄 모르고 사우디아라비아와 기름값 낮추기 치킨게임을 벌인 탓도 있다. 유가가 떨어졌을 때 미국도 놀랐지만, 러시아는 당장 루블화가 폭락하면서 불안정을 드러냈다.

전체적인 추이를 보면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때 러시아는 다른 어떤 나라들보다 큰 타격을 입었고, 그 후에 회복세를 보였다가 미국과 유럽의 경제제재 이후인 2015년 다시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했다. 그 뒤로는 계속 세계 전체와 비교해 성장률이 뒤처졌다. 2020년에도 -4% 정도 성장률을 보인 것으로 추정된다. 루블화 가치가 1년 새 20% 떨어졌다는 보도도 있다. 타스통신에 따르면 미하일 미슈스틴 총리는 작년 2분기 이후 경제가 점진적으로 회복되고 있고 올해 말까지는 안정될 것이라 말했다. 중앙은행은 경제성장률이 올해 3~4%에 이를 것이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모스크바타임스는 2022년 말에야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회복될 것이라고 봤다.
 

푸틴 측근들이 장악한 경제


크렘린 안팎의 부패는 경제가 침체된 상황에서 국민들의 분노를 부르는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다. 나발니 측에서는 귀국에 맞춰 지난 19일 흑해 연안에 있는 푸틴의 호화 별장을 고발하는 동영상을 폭로했다.
 

(나발니가 던진 폭탄, 푸틴 호화저택 동영상은 여기에.) 

나발니 측이 폭로한 흑해의 푸틴 호화 별장. | AP


러시아의 최대 자산은 결국 에너지다. 천연가스를 쥔 회사가 가스프롬이고, 석유를 꽉 쥐고 있는 것은 로스네프트다. 모두 푸틴의 측근들이 장악하고 있다. 푸틴 대신에 대통령을 했고 푸틴 복귀 뒤 총리를 하다가 지난해 물러난 메드베데프가 바로 가스프롬의 회장 출신이었다. 

푸틴은 집권 뒤 친구들 사업에 이권을 몰아줬다. 경제 권력을 소수 측근들에게 분배해주고 국가의 자산을 자신의 돈지갑으로 만든 것이다. 예를 들면 2004년에 가스프롬의 보험회사 지분을 방크로시야에 넘겨줬는데, 방크로시야는 푸틴 측근이 경영하는 은행이었다. 정치적 라이벌이던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옛소련이 무너진 뒤 국영 석유회사 유코스를 불하받아 승승장구했던 올리가르흐(신흥재벌)이었다. 푸틴은 유코스를 빼앗아 분해한 뒤 로스네프트에 넘겼다. 로스네프트를 경영하는 이고르 세친은 푸틴의 측근 중의 측근이다.  


로스네프트는 그러고 나서 석유거래 계약들을 군보르라는 회사에 몰아줬는데, 역시 푸틴 친구가 하는 기업이었다.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을 했는데, 올림픽 시설 만드는 계약 상당수는 푸틴 친구들에게 돌아갔다. 이런 식으로 운영돼 왔고, 이를 폭로하는 활동을 나발니 같은 사람들이 해왔다.

그래서, 푸틴 체제는 결국 흔들릴 것인가 

코로나19가 퍼진 뒤 크렘린이나 모스크바 외곽의 관저에 콕 박혀 있던 푸틴은 최근 얼음물에 풍덩 뛰어들면서 건재를 과시했다. 늘 하던 액션맨 쇼다. 미국 조 바이든 신임 대통령과도 첫 통화를 했다.

하지만 이미지 정치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민들의 신뢰다. 아직 신뢰를 잃었다, 푸틴 정권이 흔들릴 것이다 예측하기는 힘들다. 여전히 지지율은 60%를 웃돈다. 하지만 여론조사의 신뢰도 자체가 낮고 언론 자유도 거의 없다. 80%를 웃돌던 지지율이 최근 몇년 새 떨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AP는 전문가 분석을 인용해 “사람들이 나발니를 지지하느냐 아니냐가 문제가 아니라, 푸틴이 패배하는 인상을 주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워낙 국가기구를 공고하게 장악하고 있으나, 작은 균열에도 예상을 뒤엎고 무너지곤 하는 것이 억압주의 정권들의 특징이다. 현재 상황은 안갯속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 어쩔 수 없이 궁금해지는 노르드스트림2.

이미 공정이 94% 진행됐다는데. 메르켈은 곧 있으면 떠날 것이고. 독일은 어떤 선택을 할까.  


*워싱턴포스트 기사의 몇몇 구절이 눈에 띈다.
“This is my home, I’m not afraid!” 
“He’s like a hero, I think. It’s very inspiring. He’s brave, so we should all be brave today.” 

알자지라에 인용된 말도 비슷한 내용이다.

“경찰이 야만적이라는 것은 새롭지 않다. 하지만 지리적으로 모스크바에서 서부와 북부로까지 지리적으로 시위가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들이 계속해서 거리로 나오고 있다. 두드려맞고 잡혀가고 범죄 자로 기록될 것을 알면서도 나온다." 



"이제, 가장 중요한 순간이 온다. 경찰 한 명이 초소에서 나와 군중들 중 맨 끝에 있는 사람에게 다가서는 것이 그 순간이다. 경찰은 목소리를 높여 그 사람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명령한다. 내가 소리를 지르며 곤봉을 치켜들면 저 사람은 두려움에 얼어붙을 것이고, 발걸음을 옮기겠지. 그러나 이번에는 모든 것이 다르게 돌아간다. 경찰이 소리를 지르지만 시위대 끝의 사람은 달아나지 않는다. 그냥 거기 서서 경찰을 지켜본다. 아무도 달아나지 않는다. 결국 경찰은 고함을 멈춘다. 잠시 침묵의 순간이 온다. 시위대 끝 사람은 두려워하기를 멈췄고, 정확하게 이것이 혁명의 시작이다."


러시아와는 아무 상관 없지만, 언제 다시 읽어도 좋은 카푸시친스키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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