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상황이 점점 심각해져간다. 군부가 1일부터는 인터넷도 차단했다고.
미얀마 언론 상황은 처참하다. 1962년 군사쿠데타 이래로 검열과 통제가 계속돼 왔다. 국경없는기자회(RSF)가 매년 발표하는 언론자유지수(Press Freedom Index)를 보면 미얀마는 2010년 178개국 중 174위로 북한, 투르크메니스탄 등과 같은 수준이었다.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2015년에는 144위로 올라갔고 작년에는 139위였다. 여전히 통제 하에 있지만 그래도 조금씩 자유로워지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 2월 쿠데타로 다시 상황이 뒤집혔다. 군부는 쿠데타 열흘 후 언론에 '쿠데타', '군사정부'와 같은 용어를 쓰지 못하게 했다. 그 와중에도 미얀마 소식 전하려 애쓰는 언론들은 모두 외국에 서버를 두고 외국에 나가 있는 민주화 운동가들과 연계해 만드는 미디어들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소셜미디어로 시위와 탄압 상황을 시민들이 공유하고 외부 세계에도 알려왔는데 그것마저 군부는 막으려 애쓰고 있다.
시위가 벌어지면 인터넷을 끊는 것은 억압정권들의 패턴이다. 2019년 8월 인도네시아 땅인 뉴기니섬의 파푸아주에서 인종 차별에 반대하고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격렬한 시위가 일어났다. 경찰이 시위대를 사살했다. 그러고 나서 인도네시아 정부는 파푸아의 인터넷을 차단했다. 인도도 그 무렵 북부 카슈미르의 자치권을 없애면서 시위대를 짓밟고 인터넷을 끊었다.
미얀마는 쿠데타 전부터 수시로 인터넷을 차단해온 나라다. 이번 쿠데타 뒤 관심을 끄는 것일 뿐, 이미 2019년부터 소수민족들의 반정부 투쟁이 계속돼온 서부의 아라칸주, 친주에서 인터넷을 차단했다.
Myanmar’s military shuts down Internet, two months after coup
인터넷 통제로 가장 악명 높은 나라는 역시 중국이겠지만, 더 큰 문제는 중국이 인터넷 통제 기술을 외국의 권위주의 정부에 팔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 인권감시단체 프리덤하우스가 2019년 파악해보니 말레이시아, 파키스탄 등 최소 18개국이 중국으로부터 지능형 감시 시스템 등을 받았으며 인도와 인도네시아, 러시아를 포함한 36개국이 중국에서 정보 관리 정책을 전수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 중에 미얀마도 있었다.
하지만 미얀마의 시위대 진압은 학살로 가고 있고, 감추려 해도 감출 수 없다. 지난달 27일 140명 이상이 군경 총탄에 숨졌다. 태국에서 활동하는 미얀마 매체 이라와디뉴스에 따르면 사망자는 540명에 이른다. 희생자들 가운데 미성년자가 40여명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신한은행 양곤지점 현지인 직원도 총격을 받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현지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 역시 긴장하고 있고, 한국 정부는 교민들에게 귀국을 권유했다. 각국이 미얀마에서 자국민들을 철수시키는 분위기다.
[신화통신] Chinese envoy elaborates China's position on situation in Myanmar
국제사회는 무얼 하고 있냐고? 유엔 미얀마 특사 크리스티네 슈라너 부르게너가 안전보장이사회 비공개 화상회의에서 “피바다(blood bath)가 임박했다, 만행을 막지 않으면 세계가 큰 비용을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1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군부의 민간인 살해 규탄 성명을 냈을 뿐 제재에는 합의하지 못했다.
중국은 미얀마가 민주주의로 이행해야 한다고 했지만 안보리가 경고를 넘어 제재 단계로 갈 수 있다는 뜻을 담은 ‘추가조치 검토’라는 표현을 성명에 담는 것에 반대했다. 군부의 민간인 살해라는 표현도 거부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이라는 모호한 말을 썼다. 미얀마 시위대는 군부의 후원자인 중국에 거세게 반발하면서 양곤의 중국 공장에 불을 질렀다. 중국은 미얀마인들의 사보타주가 더 격화될 것에 대비, 송유관을 보호하기 위해 미얀마 접경지대에 군대를 배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Chinese Troops Gather on Myanmar’s Border to ‘Protect Pipelines’
미얀마 군부의 또 다른 지원세력은 러시아다. 러시아는 한술 더 떠 시위 진압과정에 숨진 군경들까지 희생자에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러시아는 공식적으로 '미얀마 상황은 미얀마 내부의 일이며 국제사회가 관여할 일이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지난주말 시위대 대량사살하면서, 미얀마 군부는 ‘군인의 날’이라며 관제 행사를 열었다. 그 때 러시아 국방부 차관 알렉산드르 포민은 미얀마를 방문해 군부 관계자들을 만나고 있었다. 이 행사를 축하하기 위해 대표단을 보낸 나라는 러시아와 중국,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태국, 라오스, 베트남이었다. 이 나라들이 미얀마 군부의 지지세력인 셈이다.
Russia's gamble in post-coup Myanmar
Russia's Deputy Defence Minister Alexander Fomin, left, receiving a medal from Myanmar armed forces chief Senior General Min Aung Hlaing in Nay Pyi Taw. (Photo: AFP)
정말 심각한 상황은 소수민족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다. 부르게너 특사도 그 부분을 짚었다. 군부의 잔혹 행위가 심각하고 소수민족 무장단체들이 거기 맞서고 있어, 자칫 내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미얀마 사태는 복잡한 것이다. 라카인주 등에 살던 소수민족 로힝야는 70만명이 박해를 받아 난민이 되고 최소 2만7000여명이 끔찍하게 살해됐다. 국제사회는 이 사태를 종족말살, 제노사이드로 규정했다. 카렌족이라는 소수민족도 극도의 탄압을 받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난민이 됐다. 정부군은 소수민족들을 상대로 고문과 조직적 강간을 저지르고 강제노동을 시켜왔다. 미얀마가 민주화 과정을 밟아왔지만 아웅산 수지 정부의 기반인 주류 버마족들만을 위한 민주주의라는 비판도 끊이지 않았다. 소수에 대한 차별과 탄압을 다수가 눈감을 때 결국 그 억압이 모두에게 돌아간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가 미얀마 아닐까.
태국과 접경한 미얀마 남동부 카렌족은 1948년 미얀마가 버마라는 이름으로 독립한 뒤 그 이듬해부터 분리주의 투쟁을 시작했다. 독립 이후 모든 정치과정이 버마족 중심으로 이뤄지고 소수민족들이 소외된 것에 반발해 카렌민족동맹(KNU)이라는 조직을 만들고 2012년까지 군부를 상대로 무장투쟁을 벌였다. 카렌주, 카인주 등에 사는 카렌족은 약 160만명에 이른다. 카렌민족동맹은 자체적으로 세금도 걷고 태국과의 국경무역에서도 돈을 거둬 조직을 유지하고 있다. 산하 무장조직인 카렌민족해방군(KNLA)은 미얀마 군부 땃마도(Tatmadaw)에 맞서는 가장 큰 세력이다.
2011년 민주화 과정이 시작되자 이들도 무기를 내려놓고 정부와 휴전협정을 맺었다. 그 후에도 산발적으로 교전이 벌어지기는 했지만 어쨌든 2012년부터는 유혈충돌이 크게 줄었다. 그런데 이번 쿠데타 뒤 군부의 공격이 심해지자 다시 총을 들었다. 3월 31일 카렌 반군이 정부군 초소를 공격해 군인 10명을 사살했다. 그러자 정부군은 전투기를 띄워 반군 지역을 폭격했다. 카렌 지역을 공습한 것은 20년만의 일이었다. 북부 카친에서도 무장반군이 정부군 초소를 공격하는 등, 쿠데타 이후 미얀마 상황은 '군부 대 시민사회'에서 소수민족과 군부의 유혈분쟁으로 가고 있다.
공포에 질린 주민들은 태국으로 도망치고 있다. 정부군이 2016~2017년 로힝야 학살을 저질렀을 때 아시아에서 ‘베트남전 이래 최대 난민 사태’가 발생했다. 태국에는 이미 로힝야와 카렌족 등 미얀마 난민 10만명 정도가 들어가 있다. 그런데 공습 뒤 주말 새 3000여명이 태국 국경을 넘었다. 태국이 이들을 미얀마로 강제송환한다는 소문이 돌았으나 태국 정부는 부인했다. 로이터통신은 태국 정부가 난민들이 몰려올 것에 대비해 4만3000명을 받아들일 수 있는 난민 수용계획을 짜놓고 있다고 전했다.
군부는 카렌 지역 공습 뒤 4월 한 달은 휴전한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하지만 이를 믿지 못하는 카렌민족동맹은 정부군 수천명이 밀고들어와 전투를 벌이고 있다면서 국제사회가 군부의 소수민족 학살을 막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Identity Crisis: Ethnicity and Conflict in Myanmar
미얀마 5700만명 인구 가운데 버마족이 68%, 샨족 9%, 카렌족 7%, 라카인족 4% 등이다. 정부가 공식 인정한 민족집단만 135개다. 소수민족 무장조직만 해도 20개가 넘는다. 그동안 주류 버마족은 군부에 맞서 싸워왔지만 소수민족 탄압에는 상대적으로 눈을 감아온 측면이 있다. 민주화 과정이 시작된 뒤에도 군부의 힘을 제어하지 못한 것도 있지만 경제개발의 결실을 버마족이 독식하는 문제가 늘 있었다.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전체적으로 시민 자유의 수준이 올라갔고, 소수민족들도 물론 그 혜택을 입었다. 하지만 자유의 폭이 늘어난 것에 힘입어 소수민족들이 민족정체성을 더 강화하게 됐다는 분석도 있다. 군부정권 시절에 금지됐던 민족 기념일들을 기념할 수 있게 됐고 버마족과의 차별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민주진영도, 소수민족 반군도 모두 군부에 반대하는데 이들이 힘을 합칠 수는 없을까. 다시 쿠데타가 일어나고 군부의 폭압이 심해지자 민주진영은 소수민족들에게 손짓하고 있다. 민주진영은 쿠데타 정권을 인정하지 않고 임시정부 격인 ‘연방정부 대표위원회(CRPH)’를 만든 바 있다. 이들은 의석 25%를 군부에 배당한 2008년 헌법은 폐기됐다고 선언하면서 민주진영과 소수민족이 힘을 합쳐 새 헌법을 만들어 통합정부를 출범시키자고 말한다. 현 군부를 대체할 연합군 창설까지 거론하고 있다.
카렌민족동맹 지도부는 양곤 등지에서 벌어진 군부의 시민 학살을 비난했고, 라카인족 무장조직 중 하나인 아라칸 반군(Arakan Army라는 조직이 2개나 있다)도 ‘혁명의 봄’에 동참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민주진영의 손짓에 응할지 아직은 불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