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브이아이피> / 박훈정 감독
3:1의 화려한 매치. 내용이야 어쨌든 <브이아이피>는 포스터만 보더라도 응당 그럴 것 같은 영화였다. 그런데 아니었다. 예상은 빗나가고 말았다. 매치 따위 없는 영화였다. 균형이 없었기 때문이다. 장동건과 김명민은 나름 강렬했던 반면, 이종석과 박휘순은 그렇지 않았다. 3:1의 드림매치를 다루는 이 영화에서 박휘순이야 뭐 3명 안에 끼어있으니 다소 묻어갈 수 있다고 치자. 그러나 이종석은 그러면 안됐다. 그는 <브이아이피>의 단 하나뿐인 빌런이기 때문이다. 3명의 역할을 다하는 거대악이 되어야 했는데 애석하게도 그러지 못했다. 웃는 연기만 소름 끼치게 잘하는 그저 그런 미치광이 사이코일 뿐이었다. 드림매치는 포스터에 한정된 이야기였다.
<브이아이피>의 문제는 무엇일까. 나는 박훈정 감독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과부하에 걸린 듯 보인다. 어찌 보면 한국형 느와르를 구축하는데 힘써온 박훈정 감독이기에 가능한 문제다. <대호>와 <혈투>를 제외한 그의 모든 작품은 느와르물이었다. <브이아이피> 역시 느와르다. 그간의 작품들만 보더라도 그가 얼마나 이 장르에 각별한지 알 수 있다. 더구나 한국형 느와르의 수작으로 손꼽히는 <신세계>를 연출한 박훈정이다. 장르에 대한 그의 이해도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아쉽다. 다른 감독도 아닌 박훈정이라서. <브이아이피>로 야심 차게 돌아왔지만 재빨리 퇴장해야 했으니 말이다.
박훈정 감독이 빠진 덫은 한국형 느와르의 정통성에 관련해있다. 이는 <브이아이피>를 설명할 가장 큰 요지로 보인다. 그 이유는 <브이아이피>가 한국형 느와르의 전형적인 표본으로서 기능할 여지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이 영화의 구성요소가 그렇다. <브이아이피>에는 한국형 느와르의 불문율인 부정부패나 사회악에 대한 묵시 그리고 뒤틀린 정의관 등이 모조리 담겨있다. 악을 전복시키고 나서야 영화적인 쾌감에 이르는 절차적인 원리 역시 갖추고 있다. 또 수컷이라며 으스대는 대단히 느와르 다운 과시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마치 보통의 느와르라면 갖추고 있을법한 것들을 상당수 갖추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인지 <브이아이피>는 보여줄 것에 급급하다. 국정원-박재혁(장동건)의 갈등, 경찰-채이도(김명민)의 갈등, 북한-리대범(박휘순)의 갈등 그리고 미치광이 김광일(이종석)의 당위까지 전부 다뤄야 하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산만하거나 내용이 깊지 못한 건 이런 이유다. 나름 상징적인 존재로 남아야 했을 VIP(이종석)가 별 것 아닌 빌런으로 전락하는 것 역시 이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브이아이피>의 무시 못할 또 다른 오류는 김광일(이종석)이란 인물의 당위가 불충분한 나머지 연출로 억지스레 무마시키려는 위험한 시도를 한다는 점이다. 초반부의 여성 살해 장면이 그 예다. <브이아이피>가 남겨버린 크나큰 오점이다. 화면에 담고자 하는 욕구가 지나쳤다. 수위가 도를 넘은 것이다. 물론 나름의 이유는 있어 보인다. 절대로 이해 못할 정도까지는 아니다. 이 같은 시도가 약간의 합리에 기대고 있다고도 믿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도 어디까지나 영화에 주효하게 작용했을 때의 이야기다. 아쉽게도 <브이아이피>는 그 목전에서 끝난다. 합리 따위 찾을 수 없었다. 당연히 여성 혐오로 도화선이 붙을 수밖에 없었다.
대체 박훈정 감독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다소 얄팍한 관점 내에서 보자면, 단순히 멋이 들어서 그랬다는 의혹을 지우기는 어려워 보인다. 허파에 무언가 단단히 낀 것 같다. 그도 그럴게 실제 김광일(이종석)은 그런 인물처럼 보인다. 뭐라도 있어 보이는 듯 이어폰을 귀에 꼽고 클래식을 듣거나 수술을 집도하듯 경건히 대상을 유린하는 그의 행동이 딱 그 모양새다. VIP라고 해서 이렇게까지 포장할 필요가 있었을까? 구태여 1인칭 시점으로 묘사한 것도 의문이다. 일종의 가오 잡기 혹은 만화 주인공 같아 보인다. 순간 나는 <닥터 이방인>을 떠올리기도 했다. 보는 입장 쪽을 고려 못한 감독의 미스로 보인다. 여러모로 조악한 캐릭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박훈정 감독은 느와르의 정통성에 발목을 잡힌 듯 보인다. 느와르물의 무수한 교집합 속에서 잠시 길을 잃은 것이다. 그 결과가 <브이아이피>다. 그렇게 밖에 설명할 수 없다. <브이아이피>는 한국형 느와르의 그럴듯한 평균치를 상징하는 영화다. 남자를 강조하고 여자를 최대한 억누르는 것이 기본이라고 여기는 단순한 믿음에 기반해 만들어졌다. 여성을 어떤 수단이나 노리개로 이용하려는 욕망 역시 이에 기반한 믿음이다. 그러니 초반부 연출이 당당하게 나온 것이다. 같은 느와르라도 <신세계>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어찌 보면 신기한 일이다. 한국형 느와르는 매번 이 같은 사안에 외부적인 압박을 받아왔다. 그런데도 좀처럼 점화되지 않았다. 되려 거세게 반발하고 보다 자극적이고 선정적으로 돌아왔다. 그 결과가 아이러니하게도 박훈정과 <브이아이피>에서 나타난 셈이다. 베테랑답지 않은 실수다.
<브이아이피>는 여러모로 아쉬운 작품이다. 그렇기에 조금 다른 방법을 통해 만나보고 싶다. 이를테면 <내부자들>처럼 감독판으로 만나 편집된 장면들을 하나하나 뜯어보고 싶다. 분명 러닝타임에 조금만 더 여유가 있었더라면 뭐라도 더 보여줬을 것만 같아서다. 또 영화가 전체적으로 엉성한 나머지 편집에 의해 난도 당했을 것만 같은 일말의 의혹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풀 필름을 통해 전체적인 윤곽을 다시 보고 싶은 이유다. 애초에 2시간 정도의 시간으로 <브이아이피>가 담고자 했던 이 영화의 모든 걸 설명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브이아이피>는 하나로 관통된 이야기지만 결국은 4명의 이야기니까. 사족이 붙어야 당연한 것이다. 물론 흥행하지 못한 관계로 어디까지나 감독판은 희망사항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