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유리정원> / 신수원 감독
<유리정원> 브런치 시사회 후기 - 늘 감사드립니다.
생명과학 연구원 재은(문근영)은 생명 연장에 관해 다소 무모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사람의 적혈구 안에 엽록소를 집어넣어 합성하는 연구다. 그녀는 이를 ‘녹혈구’라 부른다. 그녀는 녹혈구 개발에 성공하면, 사람도 식물처럼 광합성을 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빛만 있으면 언제든 산소가 생겨나 죽어가는 몸에 생기를 불어넣어줄 수 있을 거라 자신한다. 그러나 그녀의 이런 기특한 발상에도 불구하고 학계는 시큰둥하다. 그녀의 연구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것이다. 더구나 녹혈구나 광합성 따위 꿈같은 소리라며 비아냥댄다. 자신을 지지해주던 교수이자 연인인 정교수마저 그녀의 뜬구름 잡는 소리에 등을 돌리고 만다.
그녀에게는 장애가 있었다. 그녀의 왼쪽 다리가 언제부터인지 성장을 멈춰버린 것이다. 그녀의 왼쪽 다리는 차마 다리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가늘고 가늘었다. 한 풀에 꺾일 것만 같은 고목과도 같았다. 몸은 성인이었지만 그녀의 다리는 소녀의 것이었다. 마치 저주에 걸린 듯한 다리였다.
사실 그녀의 연구는 자기 위로에 가까웠다. 말라비틀어진 듯한 그녀의 다리는 새 생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저주를 풀기 위해선 녹혈구가 절실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현실은 그리 살갑지 않았다. 믿음 역시 가벼웠다. 그녀의 저주는 비단 다리에만 있던 게 아니었다. 현실이 곧 저주였던 셈이다. 결국, 그녀는 이 모든 것에 환멸을 느끼고 현실에서 등을 돌리고 만다.
그녀가 향한 곳은 어떤 후미진 숲의 ‘유리정원’이다. 이곳은 현실로부터 도망친 그녀의 도피처다. 그녀는 이곳에서 둥지를 튼다. 그리고 이곳에서 현실과 정반대 되는 꿈을 꾸기 시작한다. 자신의 연구부터 삶의 태도까지. 상처로 얼룩진 일상을 그녀만의 언어와 몽상으로 서서히 메워간다.
<유리정원>은 몽환적인 텍스트로 가득하다. 유리정원과 녹혈구 그리고 재은이 걸린 저주까지. 이 모든 것이 꿈에 가까운 이야기다. 현실의 재은은 그녀의 장애가 병인 걸 알면서도 애써 저주라고 믿고, 자신의 연구가 성취되기 어렵다는 걸 알면서도 그녀는 계속해서 꿈을 꾼다. 그리고 점점 현실과 단절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점점 멀어져 가는 그녀와 현실의 사이에 또 다른 주인공 지훈(김태훈)이 있다. 지훈은 우연히 현실 속의 그녀를 관찰하다 그 경계를 맞닥뜨린다. 그 결과물이 지훈의 소설인 ‘유리정원’이다. 그는 글감이 떠오르지 않아 갖은 고생을 하던 소설가다. 소설가로서 추락한 인생이었다. 하지만 어쩌다 알게 된 그녀와 그녀가 인도한 공상의 산물은 그에게 다시 글을 쓸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재은의 어깨 너머로 본 현실과 동떨어진 매개들이 그에게 영감을 준 것이다. 난생처음 생경한 경험을 맛 본 그는 현실에 짓눌리기 바빴던 원래의 자신과 분리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나 지훈은 어디까지나 경계에 서있는 인물이었다. 재은과는 달랐다. 재은은 점점 경계를 허물어 나갔지만 지훈은 그 경계에서 허우적대면서도 어떻게든 자신을 붙잡았다. 자신의 소설 유리정원 때문이다. 그의 소설 역시 공상을 바탕한 매개에 불과했지만 소설을 쓰는 그와 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모두 현실 속의 사람들이었다. 같은 유리정원이라도 재은의 유리정원과 지훈의 유리정원은 달랐다. 재은의 유리정원(도피처)은 갇혀있는 반면, 지훈의 유리정원(소설)은 늘 열려있었다. 희미하더라도 출구가 보인다는 점에서 지훈의 유리정원은 현실의 도피처가 아니었던 셈이다. 오히려 그의 소설은 현실을 마주할 또 다른 계기를 마련해준 셈이다.
지훈이 재은에게 다가가 다시 한번 소설을 써보겠다고 다짐했을 때, 이 영화는 막을 내린다. 그리고 재은은 그런 그를 보면서 그제야 스스로를 반문해본다. 과연 나는 옳았던 걸까? 하지만 그녀는 후회할 수 없다. 이미 그녀는 유리정원에 갇힌 뒤기 때문이다. 숲의 무성한 잔상에 모든 걸 가려지고 만 뒤였다. 그녀는 그저 희미한 여운만을 머금은 채 원래 가던 길 그대로 자신을 고립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걸어온 곳은 그런 곳이었다. 쉽게 돌아갈 수 없는 곳이었다. 마치 그녀의 저주처럼. 족쇄와도 같았다.
신수원 감독의 유리정원은 짙은 잔상을 갖춘 영화다. 그만큼 여운이 가득한 작품이다. 현실과 비현실의 대치 과정에서 언뜻 무라카미 하루키가 보이기도 하고, 유능한 스토리 텔러인 김기덕의 영화들이 겹쳐 보이기도 한다. 특히나 김기덕의 <비몽>과는 상당히 유사한 점이 엿보인다. 두 남녀의 이야기인 점도 그렇고. 두 남녀가 공통되는 매개를 통해 어딘가로 나아간다는 점이 그렇다. 그리고 무엇보다 두 남녀를 수놓는 결여가 공허한 울림을 자아내는 동시에 과연 어떤 것으로 채워질 것인지 기대를 갖고 보게 되는 무언가가 있다. 좋은 작품이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몽환적인 텍스트가 이곳저곳에 충만한 나머지, 이 영화를 연출적인 부분으로만 급급히 바라보게 만드는 점이 아쉽다. 현실과 동떨어졌다고 해서 구태여 힘을 가득 줄 필요가 있었는지는 궁금한 부분이다. 문근영과 김태훈 두 주인공 모두 표현이 훌륭한 배우들이다. 그들의 표정과 그들이 구사하는 언어만으로도 이 영화의 의미가 온전히 전달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유리정원>은 외관에서의 유리정원이 아닌, 그들 각자의 유리정원에서 비롯된 이야기다. <유리정원>은 현실과의 단절을 통해 반사되는 양면이 서로 엇갈리는 그런 영화다. 하나는 본래의 면이었고 또 다른 한 면은 직조된 환상이다. 그리고 그 나눠진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건 어디까지나 두 사람이다. 재은과 지훈이다. 이 영화를 마냥 동화적인 환상으로 채색시키기엔 <유리정원>은 아주 무겁고 재은과 지훈의 삶은 너무나도 구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