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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스 Jan 04. 2024

포대기와 돌담길(14)

육아란 경부고속도로를 만드는 것

아이의 키가 무럭무럭 자라기 시작하면서, 인터넷에서 키재기 자를 주문했다. 한쪽 벽면에 붙여놓고 얼마 전 아이의키를 확인해보았다. 날짜와 키를 표시하고 나서 생각해보니 일년 남짓의 시간 동안 아이는 출생할 때보다 거의 2배가 자라 있었다. 그간 이앓이와 돌치레 등 아이가 겪었을 크고 작은 성장통이 스쳐 지나갔다. 그 모든 과정에는 물론나도 있었다.


가끔 밤에 잠든 아이를 위에서 내려다보면 언제 이렇게 컸나 싶을 때가 있다. 항상 같이 자는 침대의 크기는 변한 것이 없는데, 내 팔 한마디 정도였던 아이는 벌써 내 상체 길이를 훌쩍 뛰어넘었다. 이만큼 건강하게 자라 준 것을 내 눈으로 보고 있으니 성취감과 이루 말할 수 없는 보람이 느껴졌다.


그리고 생각해보았다.

엄마로서 나는 얼마나 자랐나.


34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엄마로 보낸 시간은 고작 2년 남짓이 전부다. 하지만 그 2년 동안 나도 엄청난 성장통을 겪은것 같다. 연약한 아기를 온갖 해로운 것과 위험으로부터 지켜내고, 또 제대로 자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그 시간 동안 내면과 외면의 성장을 겪었다.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다시 태어난 기분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내 행동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질 수 있는 시기를 맞이했을때부터 나는 되도록 흐릿한 계획이라도 세워놓고 생활하는 편이다. 학창시절의 방학 계획부터, 진로에 대한 방안, 무엇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가, 심지어 내가 죽음을 맞을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까지 나름대로의 청사진을 그려놓았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나서는 전혀 예측이 불가능한 아이의 성장을 보면서 버퍼링에 걸린 파일처럼 버벅대고 우왕좌왕했다.

내가 통제할 수 없고, 또 나의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 일련의 육아기를 거치며 이제 나는 어느 정도 ‘육아’란 온전히 나의 컨트롤범위라 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것을 수긍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도 잘 해결되는구나, 이런 방식으로도 아이는 무탈 하구나를 깨달으며, 문제는 내가 입력하는 실행값이 아니라 아이라는 존재 자체의 디폴트값이 결국은 결과값이 된다는 것을 여실히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는 엄마라는 나의 성장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나’가 아니라 ‘그래서’, ‘그러므로’, ‘그리고’로 이어지길 원한다.

그간 내가 손에 쥐고 놓지 못했던 나의 아집과 편견과 관습을 내려놓고, 앞으로도 길게 이어질 엄마인 나의 성장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아이도 좁은 세상에 갇혀있지 않고, 무궁무진한 상상력과 창의력으로 세상을 튼튼히 걸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공부하는 것은 마치 서울과 부산 사이의 경부고속도로를 만드는 것과 같다. 경부고속도로는 서울과 부산만이 목적지가 아니다. 그 고속도로가 만들어짐으로써 무수히 많은 또 다른 길이 생긴다.”라는 예전에 어딘가에서 본 글은 내 다이어리 한 켠에 적혀져 있다.


엄마로서 사는 일은 아이를 잘 키우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다. 그 인생을 살아감으로써 나는 또 다른 나의 새로운 모습을 찾아낼 수 있고, 또 몰랐던 길을 발견하기도 한다.


이 프로젝트 또한 나에게는 새로운 길이었다. 갈까, 말까 망설이고 있을 때, 아이의 잠든 모습을 보며 결심을 했다. 그렇게 아이는 나에게 나침반이 되고, 앞으로 달릴 수 있는기름이 된다.

또한 남편도 나에겐 북극성 같은 존재이다. 토독토독하고 노트북 키보드에 한창 몰두하고 있으면, 슬그머니 지나가며 집중해서 굽어있는 내 두 어깨를 펴 주고 간다. 가끔씩 어두컴컴한 바다 한 가운데에 떠 있는 기분이들 때마다 고개를 들어 마음을 환기하고, 또 나침반도 아무소용이 없을 때 하늘을 바라보며 내가 가야 할 길을 찾을 수 있게 손을 내밀어 주는 사람이다.


앞으로 내가 엄마로 걸어갈 길은 혼자 가는 길이 아니다. 우리 가족의 따뜻하고 포근한 손을 맞잡고 비포장도로이든, 폭신한 잔디밭 길이든 그 어느 길이든 우리는 행복하게걸어갈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이의 키는 무럭무럭 자라고, 엄마와 아빠인 우리의 키는 조금씩 줄어들겠지만, 언젠가 우리 세 가족의 키가 엇비슷해 질 때쯤이면, 우리는 지금보다 더 행복하고 풍요로운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최선을 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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