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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스 Jan 04. 2024

포대기와 돌담길(13)

컸구나. 컸어.

어린이집에 보낸 첫 날이 기억난다.

아침부터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고, 구름이 드문드문 퍼져있는 하늘은 맑았다. 소풍을 가는 아이처럼 전 날부터 기대반, 걱정 반 생각으로 아이의 첫 등원을 기다렸다. 깔끔하게 세수를 시키고, 그 때 당시 얼마 없었던 아이의 머리 숱을 손으로 매만져 주고, 선물 받은 꼬까옷을 입혔다. 선생님과, 또 한 반에서 매일 볼 사이인 친구들에게 좋은 첫 인상을 남겨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었다.

인터넷에서 찾아본 어린이집 첫 등원 후기에는 보통 어린이집에서 적응할 때까지 당분간은 엄마가 계속 옆에서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아이는 예쁜 옷을 입었지만, 아이를 케어하기 위해 나는 편한 트레이닝 복 차림으로 아이를 안고 등원을 했다. 입구에서 원장 선생님을 만나자 마자, 선생님께서는 엄마는 이제 집에 가셔도 된다고 말씀하셨다. “제가 옆에 없어도 되나요?” 당황하며 내가 묻자, 원장 선생님께서는 괜찮다고,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연락 드리겠다고 든든하게 대답해주셨다. 원장 선생님의 품에 안겨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보던 아이를 두고, 나는 집에 왔다.

이런 상황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막상 집에 오니 할 게 없었다. 아침에 부랴부랴 청소하고 나간 집을 다시 손보고, 아이의 이유식 준비를 해 놓고, 안마의자에서 짧은 휴식을 취하고 나니, 내가 지금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내 두 손에 안겨있던 아이가 내 시야가 안 보이는 곳에 이렇게 오래있었던 적이 없었다. 순간 뭉클해졌다.

컸구나. 컸어.

몇 번이고 상상하고 기대하던 순간이었는데, 막상 맞닥뜨린 이 상황에서 나는 잠깐의 외로움과 적막함도 느꼈다. 세시간 뒤에 어린이집에서 다시 만난 아이는 내 걱정과는 다르게 잘 있었다고 했다. 잠깐은 엄마를 찾는 듯 칭얼대기도했으나, 금방 다른 장난감을 가지고 놀며 나를 잊고 재밌게잘 놀았다고 했다. 아이가 엄마를 잊은 그 세 시간 동안, 나는 물수제비처럼 튀어 오르는 아이 생각에 애써 바쁘게 온 집안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지금 우리 아이는 어린이집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벌써 어린이집에 가게 된지도 이제 곧 1년이 되어간다. 퇴근 후 아이의 어린이집 가방을 정리하고 있으면 아이는 내 옆에 와서 가방을 같이 만지며 가끔은 본인의 몸보다 큰 가방을 손에 들고 현관으로 걸어간다. 인자하고 다정하신 선생님들과, 집에서는 어른들 밖에 없는데 어린이집에 가면 또래 친구들과도 깔깔거리며 노니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 같다. 어린이집에서 배워 온 동요 율동이나 개인기를 깜짝깜짝 보여줄 때면 언제 이렇게 자랐을까. 내가 그 첫 순간을 직접 목격하지 않은 것에 대한 서운함이 들기도 한다.


한 번씩 아이의 첫 알림장을 다시 들어가 볼 때가 있다. 그때는 걸을 수도 없었고, 열심히 기어 다니기 바빴었다. 앳된 얼굴로 선생님 휴대폰의 카메라를 쳐다보고 있는 아이의 표정은 매번 보아도 깜찍하고 귀엽다.

지금은 어린이집 놀이터에서 뛰어다니고, 퍼즐 맞추기도 하며 하루의 대부분을 그 곳에서 자란다. 평일에는 아이의 모습을 아침 출근 전 30분 남짓, 퇴근 후에 아이가 잠들 때까지 2-3시간 보는 것이 전부다. 그 사이 엄마가 곁에 없는 시간 동안 아이는 열심히 크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이 오히려 나의 변화를 더 잘 캐치해주듯이, 아이를 매일매일 보지만 가끔씩 두 세계 계단을 깡총 오르듯 자란 아이의 변화를 발견할 때마다 엄마인 나는 그 순간이 소중하다.


아이는 내 휴대폰의 옛날 자신의 사진과 동영상을 보여줄 때마다 “아가, 아가”라고 말한다. 요즘은 아가를 보여달라며 내 휴대폰을 가지고 내 손에 쥐어주기도 한다. 아이에게동영상을 보여주면 아이는 그게 본인인지 아는지 모르는지, 싱긋 웃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지금 너도 아가야. 엄마한테는 영원히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가야. 천천히 자라주렴. 엄마는 오래오래 네 옆에서 너를 지켜주는 든든한 그늘이 되고 싶어.’


내가 좋아하는 심보선 시인의 시 ‘축복은 무엇일까’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먼 훗날 내 죽음을 건너뛰고 나아갈 튼튼한 다리가 지금 내가 부르면 순순히 멈춰 선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아이는 앞으로도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랄 것이다. 언젠가 나를 제치고 씩씩하게 걸어갈 두 다리를 언제까지라도 나는 할 수 있는 한 옆에서 지켜 봐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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