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지구는 없다를 읽고 적어본 꿈
스무 살, 대학 2학년을 휴학하고 처음 떠난 해외살이를 나는 남아공을 갔었다. 지구 반대편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서 어디를 특별히 돌아다니지 않고 현지인들이 사는 대로 케이프 타운 한 곳에서 6개월간 집계약을 해서 살았었다.
그렇게 해서 대학을 졸업할 때 취업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은 남아공에서의 경험이었고, 나의 첫 직장은 한 환경단체가 되었었다. 첫 사회생활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환경에 대해 이야기를 하던 터라 모든 것이 새롭기도 하고 낯설기도 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낯설었던 일은 바로 어느 여름날에 일어났다.
학교가 아닌 직장에서 맞는 첫여름, 나는 처음으로 이 사무실에 그동안 알지 못했던 여름철 규칙이 하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규칙은 바로 에어컨을 언제 틀어도 괜찮은 가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되었다. 대학시절에는 여름이면 방학을 했고, 여름 방학이 거의 없었던 고등학교 시절에는 거의 학교에서 살다시피 하는 학생들을 위해 땀이 송글 송글 맺히기도 전에 학교에서 알아서 에어컨이 작동시켰었다. 덕분에 나는 에어컨을 트는데 더운 이유를 빼고 다른 이유를 더 생각해야 하는 그 상황이 신기했었다.
과연 언제 사무실에 있는 사람들이 마음 편히 에어컨을 틀어도 괜찮은 것일까? 15년도 지난 일이라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신박했던 개념 중 하나는 에어컨을 켜기 전에 확인해야 하는 것이 온도는 물론 습도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전까지 굳이 생각해보지 않았던 에어컨을 언제 틀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새삼스레 다시 생각해 봤다. 보통은 언제나 일정 온도 이상 넘어가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덥다고 느껴서 그러면 에어컨을 틀어도 된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우리 사무실에서는 온도와 더불어 습도의 조건도 함께 충족되어야 했는데 예를 들면 온도가 29도 이상이면서 동시에 습도가 80% 이상인, 두 조건을 충족할 때만 에어컨을 틀 수 있다는 것이었다.
조건만 들으면 그런 날이 설마 없겠어 싶었는데 놀랍게도 그때는 그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하는 날이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보통 온도는 30도가 훌쩍 넘었는데 습도가 80%가 안돼서 틀지 못하는 날도 많았고, 습도는 90%를 웃돌았는데 에어컨 틀기에는 1, 2도가 부족해서 에어컨을 틀지 못하기도 했다. 물론 그 두 가지 경우의 날들 모두 정말 숨 막히게 더웠다.
나는 점심때가 가까워지면 처음으로 온도계는 물론이고 습도계까지 시계만큼이나 자주 간절하게 쳐다보게 되었다. 매일같이 어느 조건 하나가 겨우 숫자 한두 개의 차이로 에어컨을 틀지 못하는 날들이 마침내 여름의 절반을 넘어가던 어느 아침, 나는 선배들 사이에서 격한 논쟁이 오고 가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온도계 앞에서 입김을 불어볼까, 습도계 앞에 가습기를 틀어볼까 싶다가도 그럴 기운조차 나지 않는 여름이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환경교육 자료를 만들다 마주친 북극곰을 보며 나는 그때 처음 진심으로 북극곰의 마음을 아주 조금 알 것 같았다.
그렇게 한국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필리핀에 넘어갔을 때, 나는 내가 마시는 공기의 절반은 에어컨이 만든 나라에 온 느낌이 들었다. 쇼핑몰과 영화관, 대중교통 어디든 이가 시리게 차가운 에어컨 바람이 불어 닥쳤는데, 처음에는 청량하다가도 어느 순간엔 차라리 끄고 싶은 순간이 들어 버튼을 찾아보면 없었다. 마치 인도의 자동차 중 백미러가 없는 것이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닌 것처럼, 필리핀에서는 대중교통에서 에어컨 조절버튼이 없거나 심지어는 끌 수 있는 버튼이 없는 것이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은 특별히 필리핀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극단적인 더위가 있는 동남아, 동아시아, 중동까지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특히나 에어컨 적정온도는 커녕 에어컨 온도를 조정하거나 심지어는 끄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 무척 충격이었다. 게다가 기후변화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을 나라들에서 이렇게 에어컨을 너무 강력히 남용한다는 것이 화가 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편안하게만 이해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지만, 이런 열대 지역에서 5년을 넘게 여름을 넘겨보며 이해하게 되는 부분도 생겼다.
우선 우리나라의 여름은 그 시간이 점점 늘어가고 있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끝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짧지만 나긋한 봄가을이 있고, 그리고는 다시 겨울도 온다. 그런데 이런 열대지역 혹은 건조 지역은 그 더위가 일 년 내내 이어진다. 물론 한국처럼 극단적인 더위의 여름은 비슷하게 3-4개월 정도 있고, 나름의 우기도 있고, 그다음에는 그에 비해 선선한 날씨도 있다. 하지만 일 년 내내 절대로 그 이하로는 떨어지지 않는 열기가 있기 때문에, 몇 년을 살아봐도 적응되지 않는 미열을 항상 몸에 담고 사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극렬한 여름이 찾아오면 집에 에어컨도 있고,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은 심지어 애완동물 방에 따로 에어컨을 설치해 줄 정도로 여름을 춥게 평소처럼 넘어간다. 다만 그렇지 못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열을 몇달이고 지붕 하나에 가려 참아내야 한다. 며칠 덥다 잠시 시원해지는 여름이 아니라 한 달 내내 그런 고온을 받다 보면 사람들은 코피가 터지고 열사병으로 목숨이 위험해지기까지 한다. 바닷가 근처 사람들은 바닷물에 들어가 체온을 내릴 수도 있지만 내륙의 사람들은 보통 개울이나 강, 호수를 찾는데 대부분 오염된 경우도 많고 수온도 높아 그리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럴 때 쇼핑몰이나 교통수단의 강력한 에어컨은 하루에 며칠 동안 쌓아온 체온을 아주 잠시동안이라도 떨어트릴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되는 것이다. 마치 당장 필요하지는 않지만 언제 다시 원하는만큼 살 수 있는지 몰라서 화장지를 쟁여놓던 코로나 시기의 사람들처럼 에어컨 바람이 여기 사람들에겐 몸 안의 열기를 식힐 수 있도록 맞을 수 있을 때 최대한 쟁여놓는 그런 냉기같았다.
그래서 나에게 에어컨은 비건과 비슷한 느낌이 되었다. 지구를 생각해서 나는 최소한의 육식을 하고, 에어컨보다 선풍기, 선풍기보단 호수로 가려고 노력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선택에 대해서는 무엇을 선택했는지로 판단하기 이 전에 먼저 그 사람이 누구인지, 어디에서 어떤 환경으로 살고 있으며 왜 그런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를 묻게 된다. 모든 사람이 같은 환경에 있지 않고, 또 지구가 끓고 있는 상황에서는 신선한 채식을 위해 유지되는 또 다른 에너지 비용도 모두 다르게 발생하며 또 모두가 경제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뭔가 에어컨과 비건은 그것을 덜 쓰고 또 덜 먹는 행동으로만 누군가의 윤리를 이야기하기엔 개개인이 처한 상황이 너무 다양했다. 무엇이 환경에 더 낫다는 것은 모른다면 알려주되, 개인의 최소한의 건강과 생활이 저하되지 않는 한에서, 개인이 실행하면 조금은 불편하지만 그래도 마음은 뿌듯한 실천 들을 이뤄간다면 그것도 충분히 칭찬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다시 5년이 지난 지금 나는 독일의 작은 도시에서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하나 없이 살고 있다. 선풍기도 없이 여름을 나고 있다고 하면 한국이나 필리핀 친구들은 기겁을 했다.
사실 독일에 온 첫여름, 나는 필리핀에서 6년을 지내다 바로 넘어와서인지 독일의 8월 늦여름이 너무 추웠다. 에어컨이 아니라 내복을 껴입은 날도 있었다면 믿기지 않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해가 갈수록 독일의 여름도 날로 더워졌다. 세 번째 여름에는 정말 선풍기를 사려고 온라인 장바구니에 넣어 놨는데 그러면 바로 날이 풀리는 것이 반복되어 사지 않았지만, 결국 네 번째 여름에는 선풍기를 하나 장만하고 말았다. 그렇게 독일 북쪽에서 네 번의 여름을 나고, 독일 남쪽으로 내려와 맞이하는 올해 첫 여름, 나는 이 뜨거운 날씨 때문에 다시 자주 확인하는 온도계를 바라보며 환경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정말 신기하게도 나는 여기서도 온도계와 함께 습도계를 보고 있다. 분명 온도계는 한국이나 필리핀에서 자주 봤던 숫자들이 보이는데 습도계는 한국이나 그 두 곳에선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숫자를 보고 있다. 30도를 웃도는 온도에 습도는 20% 이하로 내려가는 독일 서남부의 한 여름.
이사를 온지 첫 달, 한낮의 온도는 30도를 오르내리는데 비가 오지 않는 날이 20일 동안 이어져, 습도계가 20% 이하로 내려가는 경우에는 작동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습도가 낮은 게 높은 것보다 여름낙에 낫지 않나 싶겠지만, 온도는 이렇게 높은데 습도가 넉넉잡아 30% 이하로 내려가면 피부가 무척 따가워지고 숨쉬는 코도 뭔가 타들어가는 느낌ㅇ다. 바디로션이나 오일은 겨울에만 필요할 때 바르는 줄 알았지만 이렇게 뜨거우면서도 건조한 여름은 또 처음이라 살이 너무 따갑고 터서 결국 나는 한 여름에 처음 이런 제품들을 바르게 되었다.
이런 상황인데도 독일은 그나마 다른 서유럽, 지중해 국가들에 비해 나은 편이었다. 휴양지로 잘 알려진 유럽의 나라들 대부분이 40도를 훌쩍 넘는 여름을 이미 몇 해 전부터 겪고 있었고, 올해는 나 역시 함께 간접경험을 하다 보니 더 절실하게 느껴졌다.
최재천 교수님의 유튜브를 자주 보면서 마침 타일러 라쉬 님의 두 번째 지구는 없다를 읽으며 여러 생각들이 겹쳤다. 뭔가 정치 따로 경제 따로 사회 따로 공부하고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통섭적이고 전체적인 무언가를 찾고 있던 이십 대에, 환경단체에서 처음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개념을 알게 되고 그게 마침 내가 태어난 해에 발표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에도 이미 이런저런 비판의 소리가 나타났었지만, 나는 괜히 그 개념이라는 게 어찌 보면 나처럼 이제 겨우 이십 대 전반을 넘긴 건데 벌써부터 그렇게 매서운 비난을 받고 실패한 개념이라 말해버리는 것이 뭔가 섣부르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모든 개념들도 결국 인간들이 만들어 낸 것이고 한 사람의 삶을 20대부터 미리 실패했다고, 벌써 나쁜 물이 들어서 변질되었다고 판단해버리지 않는 것처럼, 결국 개념이라는 것도 그걸 사용하는 사람들에 의해 계속 변화하고 발전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지속가능한 발전의 개념 자체, "미래세대"의 자원을 함부로 먼저 사용하지 않는다라는 명제가 너무나 맞는 말이었고, 그리고 이제 내 친구들의 아이들을 직접 보는 나이가 되니 나는 쉽사리 그 개념을 포기하지 않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타일러 님의 말속에 그 "미래세대"가 사실은 내 다음 세대가 시기상으로 우리, 바로 내 세대였다는 것을 듣고 나니 머리가 멍해졌다. "미래세대"라는 단어가 신기하게도 그리고 아마 의도치 않게도(hopefully) 계속 자신의 세대는 아니라는 착각을 만들게 하는 트릭이었던 것이었다.
87년에 그 개념을 유엔에 상정되게 만들었던 사람들이 바로 우리 부모 세대였고, 그 개념을 만들어낸 사람들에게는 그 해에 태어난 내가 바로 그다음 세대였던 것이다. 우리 세대인지도 모르고 미래세대라는 그 단어를 한참 뒤 어른이 되어 처음 들었던 나는 또 괜스레 아직 가지고 있지도 않던 미래의 내 아이들을 떠올려보며 다음 세대를 생각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리고는 예전과 여전히 비슷한 혹은 더 과한 삶의 방식대로, 심지어는 20억이 늘어난 80억 세계인구가 지구를 사용하고 있었다. 대학을 입학할 당시만 해도 60억 지구 인구라는 말이 너무나 자연스러웠는데 70억이 넘었는지도 모르게 어느새 80억이라고 하는 20년 사이의 인간세계에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유튜브나 책에서 보는 환경문제와 그에 대한 해결책을 보면 너무 맞는 말이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너무 서구 유럽의 시선만 담긴 것 같아 아쉬웠다. 내가 태어나고 살아가는 곳에서는 인구가 줄어서 문제라는데 도대체 내 눈에 보이지 않는 지구별 어느 곳에서 20년 동안 20억의 인구가 늘어난 것일까. 아무리 누군가가 자원 사용을 줄인다고 해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인구수를 보면 밑 빠진 독이다. 물론 그 대부분의 수가 한 다국적 기업이 사용하는 에너지만큼도 소비해보지 못한 채 다시 하나의 별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학자들은 22세기가 되기 전 지구의 인구가 100억이 될 것이라 예측한다.
윌리엄 맥어스킬의 책, "우리는 미래를 가져다 쓰고 있다"라는 책을 보면 지구를 잘 지켰을 때 지금 이 속도라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앞으로 지구에 살아 지금껏 인류가 이뤄온 긍정적인 업적들을 이어오며 지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낼지 이야기를 한다. 마치 1800년대 10억이었던 지구 인구가 300년 뒤에는 100억이 될 수도 있을지 몰랐던 것처럼, 지금의 우리도 앞으로 미래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지구에서 살았다가 사라질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생명들이 태어날 수도 있다는 것을 상상해 보게 만든 순간이었다.
보통 개개인의 삶에 대해서는 존재 자체만으로 생명의 의미가 있지, 무슨 조건들을 따지며 사람의 가치를 논하냐고 말했지만, 80억을 넘어 100억, 그리고 얼마나 더 늘어날지 모르는 지구의 인구수를 듣고 있자니 나는 도대체 우리가 왜 이렇게 많이 태어나서 존재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인류학에서는 누구에 대한 질문이 많다. 뭉뚱그려 '80억', '100억', '우리', '지구의 인구'라고 하는데, 나는 그런 숫자들을 들을 때마다 그게 그 자체의 규모로 들리기보다 그 80억 명이, 지구의 인구가 누구인지 되묻고 싶어 진다. 도대체 그 80억 명, 100억 명은 누구란 말인가?
한국은 이렇게 인구가 줄어드는 것에 걱정이 많은데, 이런 순간에도 지구의 인구는 80억을 훌쩍 넘어가고 있다니 대체 그 80억, 100억의 사람들은 누구일까? 우리도 모르는 지구의 늘어나는 인구수의 대부분은 지구 이슈에 대해 중요한 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나라들이 많이 살고 있다. 물론 인도와 중국이 가장 두드러지게 선두에 서고 있지만, 그 외에도 인도네시아, 나이지리아, 파키스탄, 브라질 외 대부분이 아프리카, 남미, 중동 등 서구의 이념과는 사뭇 다른 그들만의 종교와 문화, 이념을 가진 나라들이다.
필리핀 역시 사람들은 잘 모르는 사이 이제 6백만 명도 채 되지 않는 격차로 1억이 넘는 일본 인구수를 바짝 추격하고 있으며, 일본의 인구성장률은 -0.5%인 반면 필리핀은 1.5%로 일본의 인구수를 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1억 2천이 다 되어가는 사람들 중 20%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국민의 절반에 해당하는데 그 모든 사람들이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
세계 뉴스의 가장 첫 면을 장식하는 나라들이 아닌 세계 뉴스에는 자주 나오지는 않지만 세계 인구수를 큼지막하게 채우고 또 앞으로 채워갈 나라들을 보면 그곳에서도 역시 이렇게 늘어나는 인력을 어떻게 활용할지 가늠할 수 없음을 느낀다. 이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무엇으로 활동하고, 삶을 마무리해야 의미있게 혹은 인생을 한번 살아봤다고 말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도 하지 못하고 있는데, 다른 세상에서는 인공지능을 무한대로 개발해 사람들의 일을 하나씩 조력하거나 대체한다. 세상이 이렇게도 가깝게 발전했다고는 하지만 그렇게 더 많이 알 수 있음에도 철저하게 다른 세상의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고 있는지 놀라울 지경이다.
매번 인간을 위한, 환경을 위한 에너지 정치 기업이라고 하지만 그 인간과 환경은 누구를 말하는 걸까? 너무나도 다른 환경에 처한 인간과 환경이 빠진 발전과 기술이라면, 우리는 왜 그것들을 이뤄야 하는것일까?
인공지능이 인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개발하는 것처럼, 이미 태어나서 살아있고 이렇게 늘어난 사람들을 어떻게 활용하고 또 조절할 수 있는지를 함께 개발자들이나 정치인들이 고민했다면 이만큼의 사람들의 공포심, 그걸 넘어선 무기력함이 이렇게 마음 속에 생겼을지 의문이다.
세계 주류의 교육과 시스템 안에서 조절이 가능한 사회에서만 산다면야 지금 논의되는 기후변화에 관한 설루션들이 그들이 바라는대로 대응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지금 기후변화에서 논의되는 구조적, 산업적 변환에 더해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다른 세상에 대한 상황과 해석을 포함하지 않는다면 절반의 논의라고만 생각이 든다. 아쉽게도 지구는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버리기 귀찮아서 길가에 버리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과 쓰레기를 버려서 그나마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라도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하는 세상이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명백하게도 지구에 사는 사람들은 후자의 사람들이 더 많은데도 불구하고 지구에 대한 결정은 전자의 사람들이 후자의 사람들을 잘 알지도 못한 채 결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난 주말 스위스와 독일 국경 사이로 이사 온 후 처음으로 기나긴 자전거 여행을 떠나던 중이었다. 아직 집을 찾지 못해 집을 지원하는 중이었는데, 집주인 노부부께서 이메일이나 온라인 접수는 일체 거부하고 편지로만 계약을 진행하고 싶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우편을 보낼까 했는데 집 주변 동네들을 돌아보고 싶은 마음에 자전거를 타고 직접 배달을 나섰다. 배달 뒤에는 근처에 마침 지역의 작은 명소가 있다고 해서 돌아보게 되었는데 그게 지도 위에는 표현되지 않은 경사가 펼쳐지면서 예상보다 훨씬 긴 5시간의 투어가 되고 말았다.
그렇게 다섯 시간 동안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서 내가 독일과 스위스 국경을 네 번이나 넘어 다닌 것을 핸드폰 로밍 안내 때문에 알게 되었다. 스위스와 독일 국경 근처에는 정말 여기가 독일인지 스위스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국경선들이 존재한다. 라인강을 따라가다 갑자기 독일 쪽에 스위스가 있는 것인지 스위스 쪽에 독일이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선들이 지그재그로 넘나 든다. 무슨 이런 국경선이 있나 싶었지만 잠시 지나고 보니 이곳이 남의 땅이 아니라 자신들의 땅이었다면 누구라도 땅 한 톨이라도 이렇게 싸우고 지켜내서 선을 그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무릇 원래 국경선이란 이런 느낌이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러고 나니 아프리카, 중동의 자를 대고 그린 듯한 반듯한 직선의 국경선이 얼마나 인위적으로 느껴지는지, 얼마나 남의 땅으로 생각했는지가 새삼 더 와닿는 듯했다.
유럽은 기후위기 뿐만 아니라 난민 이슈가 21세기의 메인 주제가 되는 것처럼 매일같이 뉴스에 나온다. 모든 것을 하나의 원인으로 돌릴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스위스와 보덴제는 지구촌에서 무슨 사건이 생겨나든 한결같이 평화로워 보였다. 독일은 그나마 전쟁의 여파로 옛 건물들이 파괴되고 새건물이 많은 경우도 있는데, 스위스는 그 평화로운 풍경 속에 심지어 어떤 전쟁 속에서도 오랫동안 살아남은 듯한 생활 속 건축물, 풍경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생각해보니 세계문화유산뿐 아니라 사람들의 일상 생활 속, 마을들이 예전의 모습을 잘 간직한 나라들의 경우는 그들이 잘 관리해서도 그렇지만 대대적인 침략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일본이 그렇게 외국인을 끌어들일만한 매력의 마을을 갖고 있는 것은 그들의 독특한 문화와 관리가 큰 몫을 했지만, 또한 그만큼 우리나라와는 달리 외세가 침략해 파괴한 일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거대한 문화유산들은 전쟁이 끝나고 다시 재건을 하겠지만, 이렇게 작은 마을들의 생활건축물들이 전통적인 모습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외세의 침략이 덜했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그런 문화유산을 잘 간직한 유럽은 많은 나라들이 다른 대륙의 생활터전을 끊어놓은 죄가 있었다.
지구가 정말로 전지구적으로 문제를 풀고 싶다면 국제정치학의 목차가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의 현실주의, 자유주의가 가장 맨 앞에 가장 많은 내용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구성주의나 탈식민주의 역시 어느 지역을 연구하고 싶은지에 따라 목차의 순서를 앞에 두어야 한다면 두고 내용의 질을 더 채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지금 지구의 인구수가 늘어나는 나라들을 살펴보면 특히 여성의 권리나 사회참여가 낮고 특정 종교들이 이성을 넘어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곳들이 많다. 종교와 환경, 성평등에 대한 주제들이 국제정치학의 가장 마지막 챕터에서 배우든 말든 그만인 부속주제처럼 다뤄질 것이 아니라 앞으로 늘어나는 세계인구 수의 비율을 고려할 때 그만큼의 중요성을 획득해야 한다.
또한 국가를 넘어 소득을 얻는 기업들은 자신들의 헤드쿼드가 자리한 국가만이 아니라 그 소득을 얻게 된 나라와 그 환경 또는 그 물건을 만드는 현지 생산자들의 임금에 분배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가와 자국 내 기업들이 자신의 땅, 환경에 대해 책임질 것들이 있듯 국경과 인종을 넘나들며 수익을 얻는 다국적기업들은 특별히 더 지구 환경을 위해져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 당연한 게 아닌가.
오랜만에 이런 허무맹랑한, 대학 시절 교수님이 말하시던 발을 땅에 닿지 않고 떠다니며 말하는 듯한 생각을 길게 적어본 이유는 타일러 님의 책 "두 번째 지구는 없다"속의 구절 때문이었다.
"내가 완벽하지 않다는 게 목소리를 내지 못할 이유가 될 수 없다. 그 마음으로 작은 용기를 낸다.... 꿈이란 현실이 아니라서 꿈이다. 이루기 힘들어서 꿈이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아도 되고 현실성이 없어도 되는 게 꿈이다."
그는 어느새 한국에선 꿈은 곧 진로, 직업을 의미해 버려서 더 이상 사람들이 꿈을 꾸지 않는 것 같아 슬퍼했는데, 나는 사실 사람들은 꿈을 여전히 꾸고 있을 것 같다. 우리나라처럼 이렇게 시민 한 명 한 명이 모든 선거와 정치에 반응하고 의견을 드러내며 심지어는 뒤집어엎기도 하는데 또 그게 가능했던 나라들은 20세기 식민 경험이 있는 나라들 중에서는 거의 유일한 나라가 우리나라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꿈과 열정 없었다면 내가 만났던 수많은 남반구에 살고 있는 친구들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일을 가능하게 했을까.
다만 환경과 자본은 이제 우리 손을 넘어 버린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또 환경은 특히 이만큼 중요하며 급격하게 관심사로 떠오른 적이 없었기 때문인 것도 같다. 뭔가 말하기 복잡하고 생각 정리도 안되고 말해도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뭐 하러 말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나도 자주 든다.
그러나 어차피 방법을 잘 모르겠다면 타일러 님이 말했듯 꿈이니까 꿈처럼 말하다 보면, 그 꿈들 속에 생각지 못한 뭔가를 발견하거나 아니면 그것들이 이어져서 무언가 새로운 것이 생겨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현실을 파헤칠수록 더 어렵게 느껴진다면, 그래서 더 우리에겐 꿈이 더 필요한 시간이 아닌가도 생각해본다. 다시 사람들이 꿈을 꿀 수 있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