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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선인장 Sep 24. 2024

호숫가에서 길을 잃다

흘러가는 대로 살아갈 때 주의할 점

살다 보면 길을 잃은 것은 아닌가 싶을 때가 종종 있다. 나의 삶이라는 게 다른 누군가의 삶은 아니라서 분명 내가 결정한 선택들이 모여 만나게 된 지금의 나의 삶인데도, 나는 왜 이 순간이 이리도 남의 삶처럼 낯설게 느껴질까. 싶은 그런 순간들 말이다.


잠시 다른 사람의 삶에 들어온 것일까. 아니면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걸까. 그것도 아니면 혹시 그전에 살았던, 나의 삶이라고 생각했던 그때가 오히려 꿈은 아니었을까 싶은 순간.


길을 잃은 것이다. 누군가에겐 서서히 사라지는 촛농처럼 그렇게 자신도 알게 모르게 길을 잃은 것일 수도 있을 터이고, 누군가에겐 그저 흘러가는 대로 따라갔을 뿐인데 갑자기 너무 낯선 곳에 있는 느낌이 드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십 대의 나는 열망이라는 마음이 너무 강력해 몸이 고생한 케이스였다. 몸은 잘 따라주지 않았는데도 머릿속의 의지가 워낙 소리가 커서 자기가 궁금한 대로 세계 이곳저곳으로 몸과 마음을 끌고 다녔다.


그 이성이란 녀석에게 전생이 있었다면 아마 노르웨이 앞 북해에서부터 남아공을 거쳐 오호츠크해 연안까지 오고 가는 연어 한 마리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나를 아직 아메리카 대륙까진 끌고 가진 못했지만, 그 녀석은 세상의 바다 끝이라 불리는 곳들에서 그 바다 너머를 보는 것을 좋아했다.


정말 세상의 끝이 있는 건 아닐까, 아니면 저 바다 너머엔 진짜로 미지의 세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혼자 상상의 세계를 펼쳤지만, 그럼에도 혹시나 자신이 진짜로 다른 세계로 사라져 버리는 건 아닌가 싶어 철저히 인간세계의 현실 이슈에만 관심이 많았던 아이.


그런 세상의 이슈들이 나에겐 쏟아지는 강물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연어에게 강물이란 힘차게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숙명이 주어져 있었다. 그렇게 인생이란 쏟아지는 강물을 거칠게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살아봐야 그래도 한 번뿐인 삶을 나름 뿌듯하게 살았다고 뒤돌아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만 이십 대의 절반을 살아가던 어느 날, 나는 그 강물에 거칠게 떠밀려 가버린 나를 발견했다. 거슬러 올라가기는커녕 가만히 떠있는 것도 어려운 지경에 이르고, 그러다 내가 혹시 죽은 건지 살아있는 건지 불분명한 연옥에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때 즈음 문득 새로운 생각에 다 달았다. 그냥 한번 떠밀려 가보면 어떨까. 떠내려가 봤자 내가 만나는 거라곤 오히려 거대한 바다가 아닌가.  


그 후로 나는 한번 흘러가는 대로 살아갔다. 흘러가는 대로 살다 보니 내가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 나에겐 강물이 되어 필리핀으로 독일로 나를 데려다주었다. 덕분에 혼자 연어처럼 살았을 때 홀로 봤던 희망봉의 바다뿐만 아니라 그 옛날 대항해시대에 세계일주를 하고 떠나는 마젤란의 마지막을 품었던 필리핀의 바다, 내가 가봤던 가장 남쪽의 바다였던 희망봉과는 정반대 쪽 북쪽 끝의 바다 북해, 그리고 그 희망봉을 향해 포르투갈 사람들이 처음 떠났던 유라시아의 서쪽 끝 바다도 만날 수 있었다. 어쩌다 보니 정말 바다에 와있던 것이다. 그렇게 한참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다 문득 내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려고 주머니를 뒤졌는데 깨달은 사실, 나침반이 없는 것이다.


인생의 미스터리는 바로 문이 하나 닫힐 때 열리는 또 다른 문 뒤를 삶의 주인공이라는 당사자도 알지 못한다는 것이 아닐까. 혼자서 열심히 자신의 삶을 살고 있을 때도 종종 이게 내 삶이 맞는지 의문이 드는 순간이 찾아오곤 하는데, 거기다가 나만큼이나 강력하고 거대한 또 다른 우주와 만나 심지어는 이 다른 우주를 융합하게 만드는 변수까지 생각하면 확실히 이번생은 내 생이 아니었나 보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나 혼자 살았던 삶을 흘러가는 대로 둘 때 그 흘러가는 물의 크기가 개울이나 강물정도 느낌이라면, 그 강물 같던 삶이 갑자기 바다는 물론 대양이 되어 나침반 없이는 내 인생인데도 내가 방향감각을 잡을 수 없을 것만 같은 생각을 들게 만드는 인생의 변수들이 있다. 사람이라는 하나의 우주들이 서로 만나고 심지어는 융합해서 함께 바다 위를 항해하게 만드는 인생의 변수. 직장과 결혼과 출산.


이 세 가지의 변수는 한 가지만으로도 너무나 강력해서 어떨 때는 스무 살 전까지는 한국 밖은 나가본 적도 없던 사람을 뜬금없이 지중해 바닷가의 분주한 도시 바르셀로나로 옮겨놓을 수도 있고, 어떨 때는 바다는커녕 싱싱한 생선요리조차 찾을 수 없는 베를린으로 데려다 놓을 수도 있고, 그러다 갑자기 평생을 바다 근처에서만 살았던 사람을 어느 호숫가 근처로 초대할 수도 있다.


나는 하나만으로도 신기한 인생의 변숫값에 다른 변수가 하나가 더 곱해진 결괏값으로 인해 2년 동안 어느 호숫가에 살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세상의 바다 끝을 살펴본다며 수도 없이 펼쳐본 지도였지만, 그렇게 여러 번 봤던 지도 위에서도 한 번도 인지하지 못했던 호숫가였다. 그런데 그 호수가 무려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를 품고 있었다. 나는 어쩌다 이 호수에 오게 되었을까. 이 호숫가에서의 시간은 내 삶에, 그리고 나에게 어떤 의미로 남게 될까. 내 인생이라지만 나도 잘 모르겠는 순간에 만난 호수. 호수에서 나침반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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