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우리가 남이가를 말하려 한다면
다른 나라 메인 뉴스에 가장 많이 뜬 코리안은?
계엄령이 갑작스레 떨어지면 별똥별이 떨어지듯 순식간에 군대에 있는, 경찰로 일하는 내가 아는 친구, 동생, 친척, 아들이 괜찮은지 걱정되는 것처럼, 해외에 살면서 한국 뉴스가 이 먼 곳까지 전해지면 현지 사람들은 나에게 한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물어본다.
BTS나 블랙핑크나 한강님이나 모두 분명 우리나라의 국격을 높이신 분들이지만 보통 해외 뉴스에서 이런 뉴스가 보도된다면 대부분은 뉴스의 가장 마지막 부분에 해당하는 날씨 바로 전에 잠깐 비치는 수준이다.
그래서 전 세계적인 언론매체를 소유한 미국과 영국의 언론은 물론 유럽의 주요 공영매체, 그리고 이 서방 세계와는 또 다른 세계인 중동, 인도, 러시아와 중국 등의 매체까지, 전 세계 동시에서 우리나라의 뉴스가 자국의 메인 뉴스만큼이나 일면으로 보도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리고 그 드문 뉴스의 대부분은 우리나라 정치 상황에 무슨 큰 변화가 생겼을 때이다.
사실 우리나라가 Kpop이나 한식으로 유명해지기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해외에서 코리아라는 이름의 뉴스가 현지 메인 뉴스에 오르던 경우는 보통 남한이 아닌 북한에 대한 이슈였다.
아무리 우리나라에서 뽑힌 대통령의 수가 더 많고, 그들이 더 자주, 더 많은 나라들을 국빈방문해서 그 나라 사람들과 더 깊게 눈을 맞추고 더 오래 대화를 나눠 봤더라도 그 나라 뉴스에 가장 많이 오르내렸던 ‘코리안’은 김정은일 것이다. 그가 특정 핵미사일을 특정한 곳이나 시기에 발사했거나 트럼프와 단둘이 밀땅을 했을 때, 그리고 싫든 좋든 남북의 정상들이 서로 만났을 때가 그랬다.
외국인 친구들은 최순실 국정농단을 어떻게 이해할까?
이렇게 우리나라가 북한과 관련해 해외 현지 뉴스에 나온 것 외에, 우리나라가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으로 해외 뉴스에 온전히 실렸던 적은 없었나 생각해 봤다. 해외에 산지 10여 년이 된 것을 기점으로 떠오른 뉴스가 하나 있었다.
수천 명 수만 명의 사람들이 사계절이 다 지나도록 촛불을 들고 거리에 모였고, 처음엔 관심이 별로 없던 외신들의 시선도 어느 순간부터 그곳, 우리나라에 모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궁금해했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왜 이리 오랫동안 촛불을 들고 있을까?
그리고 마침내 탄핵이라는 뉴스가 다른 나라 뉴스들에도 전파되었을 때, 나는 대통령 탄핵 사유에 있어 최순실이라는 영적인 영향력과 실제적 권력을 어떻게 외국인들에게 논리적, 사법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 무척이나 애를 먹었었다.
나는 내가 애정하는 우리나라의 대표라는 사람이 국민을 속이고 무당과 함께 국정을 농단했다는, 나조차도 잘 이해되지 않는 이 상황을 외국 친구들에게 그것도 영어로 설명해야 하는 것이 어려웠다.
내가 아무리 정치학을 공부했고, 그녀의 직책도 대통령이라는 정치인이었으며, 탄핵 역시 정치적 주제 중 하나임이 분명했는데도, 나는 내가 배운 정치학 교과서에서 나온 영어로는 이 일련의 사건들을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신기했다. 마치 외국인에게 정치면 신문에 나오는 단어가 아니라 장화홍련이나 연오랑과 세오녀에 나오는 단어들로 이 상황을 설명해야 그나마 더 이해가 될 것 같은 정치 게이트.
분명 무속신앙이나 믿음은 인류학에 가까운 주제라고 들었는데 왜 우리나라는 인류학보다 정치학에 더 들어가야 할 것 같은 느낌일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어디서부터 설명을 하는 것이 맞는지도 모르는 이상한 관계들이 실질적으로 나라를 쥐고 펴는 권력을 만들었고, 그 판을 만들고 놀아난 사람들이 내 나라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 내 얼굴에 침을 뱉는 것 같아 창피하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그래서 사람들이 모였고 잘못을 고치려 움직였으니 그 의미를 담아 나는 자초지종을 친구들에게 설명했는데, 친구들의 반응이 내 예상과 달랐다.
너무나 한국적인 정치배경과 무속신앙이 엮인 한국만의 독특한 맥락이라 내가 설명을 해도 친구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하지만 웬걸, 신기하게 이 친구들은 내가 신당동 하니 떡볶이라고 말하듯 찰떡같이 알아듣는 것이었다.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 등 누군가에게 한 번쯤은 식민지배를 겪었던 각국에서 온 친구들은 내가 탄핵 관련 정치상황을 설명하고 나니 상당수가 자기 나라에도 사람과 상황은 조금 다르지만 비슷한 일이 벌어졌거나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다만 자신의 나라에선 그 사람을 끌어내리기는커녕 그것이 잘못된 일인지도 의견이 갈려 행동을 조직하지도 못하고 있는데, 한국은 시민들이 다 같이 이것이 잘못된 일임을 인지했고 분노했으며, 움직여서 결국 탄핵을 시켜 죗값을 받게 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정치뉴스가 세계적으로 특별한 이유
부끄러운 일을 저지르는 것은 무척이나 쉬워서 세계적으로 특별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부끄러운 일을 인정하고, 이를 고치기 위해 시민 개개인이 뜻을 합쳐 함께 행동한다는 것은 세계적으로 특별하다.
말도 안 되는 정치 상황으로 전 세계 많은 나라들이 한 번쯤은 꿈꿔봤지만 달성하기엔 너무나 어려워서 어쩌면 불가능한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했던 것. 잘못을 인지하고 고치기 위해 직접 행동에 옮기는 많은 시민들.
그것이 바로 서구 세계는 물론 우리가 겪고 있는 상황을 주인공만 바꾼 채로 고스란히 겪고 있어 우리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다른 모든 세계 사람들까지 우리나라를 부러워하고 또 훌륭하게 생각하는 이유다.
우리가 남이가를 말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번 사태가 또 한 번 전 세계 뉴스 1면에 실린 것에 대해선 부끄럽지 않다. 그런데 이 부끄러운 일을 세계 사람들이 대한민국을 떠올릴 때 기대했던 그 올바른 방향으로 풀어내지 않는다면, 그동안 자랑스럽게 소개하던 우리 음식 우리 음악 우리 영화 우리 드라마들이 부끄러움과 사과를 모르는 대통령이라 불리는 사람의 얼굴과 겹쳐 무척 부끄러워질 것 같다.
Matial Law, 계엄령이라는 단어. 이 단어는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 뿐만 아니라 식민지 이후 이제 갓 독립해 험난했던 근현대사를 거친 전 세계 수많은 나라, 그 나라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서 한두 번은 들어보고 겪어봤을 전 세계적인 단어이다.
전 세계 어디에서나 누군가의 마음을 묵묵하고 묵직하게 만들어버리는 이 단어를 순전히 개인적인 목적을 위해서 너무나도 가벼이 사용해 버린 이 부끄러움을 모르는 대통령은 그래서 우리나라의 대통령이면서도 동시에 그만큼이나 가볍게 계엄령을 선포해 선량한 사람들의 일상을 앗아간 수많은 다른 나라 사람들의 대통령이기도 하다.
그래서 작금의 이 사태를 지켜보는 한국을 좋아하는 외국사람들은 응답하라 1988을 보며 얼굴과 언어는 달라도 어딘가 닮아 있고 알 것 같은 자신의 어린시절, 마을, 친구들을 떠올리듯 한국의 계엄령 사태를 이해할 수 있다. 오월의 청춘을 보며 장소와 시간은 달랐지만 계엄령이 몰고온 억울함과 분노, 슬픔에 공감할 수 있고, 그래서 그 단어의 무게감을 지역을 초월해 알 수 있다. 그런 그 단어를 그렇게 뜬금없고 사사로이 악용한 그의 잘못은 이제 우리나라 사람들 뿐만 아니라 이 뉴스를 들었던 전 세계의 계엄령이라는 단어를 겪어봤으며 동시에 우리나라의 노래, 드라마, 음식을 좋아하는 모든 외국인들도 알게 되었다.
이제는 우리나라 국민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 관심이 있는 전 세계 사람들까지 모두 우리나라의 대통령 자리에 대통령으로 앉아 있으면 안 되는 사람이 버티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도 여전히 우리가 남이가라고 말하며 그동안 공들여 쌓아 온 우리나라의 국격을 떨어트린 사건을 일련의 해프닝이라고 넘겨버린다면 국민들은 매우 부끄럽고 분노할 것 같다.
우리가 진정한 국뽕을 느끼고 싶다면, 그리고 국민의 대표라는 국회의원들이 국민들과 같은 편이라면, 다가오는 주말 우리가 누구이며, 누가 우리를 남으로 대했었지를 현명하게 결정해야 한다.
서양 뉴스가 아니다보니 우리에겐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많은 나라들이 우리와 비슷하게 부끄러운 상황을 겪었고, 결국에 잘못을 바로 잡지 못한 나라들은 갈라지고 내전이 일어났다. 도대체 무엇이 이러한 혼란을 권력이양으로 만들거나 내전으로 이끄는 차이일까 싶었는데 계엄령 이후의 그 사람의 태도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탄핵, 탈당은 안된다고 감싸는 세력들을 보니 이유를 알 것 같다.
너무나 분명한 귀책사유가 있음에도 인정하지 않고 끝까지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여 세를 키우고 뻔뻔하게 권력을 이어갔을 때다. 저렇게 자신이 잘못을 했음에도, 심지어는 7-80년대와는 달리 모든 상황이 모든 사람들 앞에서 생중계로 보여졌던 상황에도 끝까지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우기는 것.
그렇게 잘못한 사람임에도 처벌은 커녕 억울하다며 우리가 남이 아이가라며 품고 세를 키우면 그때는 어쩔 수 없는 내전이다. 아프리카나 중동의 이야기 같은가? 거기도 언어나 생김새만 다를뿐 그들이 우리 드라마를 이해할 수 있듯이 우리도 그들과 비슷한 정치상황으로 양말 뒤집듯 한순간에 바뀔 수 있다. 지난밤 6시간 처럼.
만약 이번 주말 국회에서 너무나 중요한 투표권을 실행할 우리지역 국회의원이 전 지구에서 지켜보고 있는 이 투표 결과에 우리나라와 또 전 세계의 민주주의보다 당과 자신의 이익에만 눈이 멀어 투표를 행사할 것 같다면, 부디 전화를 걸든 연락을 하든 찾아가든 해서 제발 현실을 직시하고 이 사태를 진정시킬 수 있도록 표를 대의를 위해 사용할 수 있도록 함께 행동해요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