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 숙박, 선물까지!
에릭네 친가에는 삼촌과 고모들이 총 10명이다. 그들의 아이들 (그니까 에릭의 사촌들), 그 사촌들의 아이들 등등을 합치면 진심 100명은 훌쩍 넘는다. 다들 사이가 좋고 끈끈하게 잘 지내기에, 누군가가 결혼을 한다고 하면 이 100명 넘는 사람이 죄다 온다. 그중 첫째 고모가 가족을 아주 끔찍하게 여겨서, 누군가 생일이거나 기념일이면 이메일을 쫙 돌린다. 하도 사람이 많다 보니 이메일이 거의 매일 온다. 오늘은 누구 생일, 그다음 날은 누구 결혼기념일 등등. 나와 에릭은 피로연만 미국에서 했는데, 이때 친가 쪽 친척만 100명이 넘게 왔다.
얼마 전 에릭 사촌 중 한 명이 결혼을 했다. 그래서 또 이 100여 명이 총출동! 나의 시아빠는 비행기를 타기가 어려워서 운전해서 가기로 했다. 운전은 무려 15시간. 여기다가 밥 먹고 기름 넣고 하는 시간 포함하면 17시간은 족히 걸린다. 나는 도저히 그렇게는 못 하겠어서 안 간다고 했는데 에릭이 너무 속상해했다. 아이구 이런 게 결혼한 사람의 의무인가. 타협해서 시엄마와 나는 비행기를 타고 가기로 했다. 에릭과 에릭의 남동생은 시아빠를 데리고 운전 당첨!
이번엔 미국 결혼식과 하객에 대해 쓰겠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결혼식이 부모님들의 잔치인 경우가 많은데, 미국은 조금 더 신랑과 신부의 잔치에 가깝다. 우리나라에서는 나는 알지도 못하는 부모님의 친구분들, 직장 동료, 만난 적도 없는 먼 친척까지 전부 하객으로 부른다. 그러다 보니 하객 수가 꽤 많아지고 정작 신랑 신부는 알지 못하는 손님들도 있다. 물론 미국에서도 부모님의 친구들이나 먼 친척이 간혹 오기도 하지만, 대체로 신랑 신부와 친하게 지내던 사이인 경우가 많고 난생처음 보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고 보니 내 경우도 그렇다. 참고로 내가 한국에서 결혼했을 때는 하객이 총 1200명이었다. 헙... 지금 생각하니 정말 많긴 많았다. 한국에서 내 친구들 결혼식에 가면 거진 최소가 200명 정도였던 것 같다. 좀 많으면 4-500명 정도? 상대적으로 미국에서는 하객 수가 확실히 적다. 내가 처음으로 갔던 미국 결혼식은 트레이시네 결혼이었는데, 너무 작아서 깜짝 놀랐다. 트레이시가 초대한 친구들은 단 10명이었다. 어릴 때 친구 4명, 대학교 때 한 친구(와 남자 친구), 회사 친구 한 친구(와 남자 친구), 나와 에릭. 트레이시 남편도 이름이 에릭인데, 에릭이 초대한 친구들은 총 4명이었다. 그리고 신랑 신부의 부모님 두 분, 친척 두 세분 정도가 다 였다. 그러니까 결혼식 총하객이 25명이 넘지 않았다.
그다음으로 갔던 미국 결혼식은 에릭의 남동생인 데이비드네 결혼식이었다. 시가네 가족 한 100명 정도를 제외하고 친구들과 신부 측 하객들이 한 60명 정도 됐던 것 같다. 그러니까 총 160명 정도? 그것도 꽤 많은 편이라고 했다. 또 최근에 갔던 에릭네 친척 결혼식도 한 150명 정도 됐던 것 같고 (역시 시가네 대가족 100명 포함), 또 최근에 갔던 직장 동료네 결혼식도 150-180명 정도 됐는데 나름 꽤 큰 규모였다.
한국은 워낙 땅덩이가 작으니까 아무리 먼 곳에서 결혼을 한다고 해도 제주도가 끝이다. 서울 사는 사람이 많으니 결혼식도 대체로 서울 내인 경우가 많다. 만약 지방에서 결혼한다고 하면 서울에서 관광버스를 대절해서 타고 가는 식이다. 그러니까 서울 사는 사람 기준으로 치자면, 서울 내 결혼식에 가기 위해서 드는 비용은 서울시내 교통비 몇 천 원 (+축의금)에 주말 중 한두 시간 정도? 서울 사는 사람이 지방 결혼식을 간다면 반나절 정도는 걸리지만, 관광버스 대절 덕분에 교통비는 안 든다.
근데 미국 사이즈가 어떤가? 좀 큰 게 아니다. 어느 정도냐면 미국에 있는 웬만한 주가 우리나라보다 크다. 차로 4-5시간 거리는 이옷동네라고 할 정도로. 그러니까 누군가 결혼을 하게 되면, 사방팔방에서 하객들이 온다. 미국에서 누구 결혼식에 가려면 대체로 2박 3일이 소요된다. 트레이시네 결혼식은 플로리다 북부에 있는 친정 부모님 집 근처에서 열렸다. 트레이시의 어릴 때 친구들은 텍사스에서, 대학교 친구들은 뉴욕과 캘리포니아에서, 그리고 나와 직장 친구들은 미 중부에서 전부 비행기를 타고 플로리다까지 갔다. 심지어 우리 동네에서는 직항도 없어서 비행기를 갈아타야 했다. 그나마 가까이 살던 트레이시네 언니는 4시간 운전 거리라서 비행기를 안 타도 괜찮았다. 보통 결혼식은 토요일 4-5시에 시작하는데, 비행기 타고 멀리 가야 하니까 다들 하루 전에 온다. 그니까 금요일에 비행기 타고 가서 1박 하고, 토요일에 결혼식 갔다가 밤늦게까지 파티하고, 일요일에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일정이 대부분이다. 그러니 친구 결혼식에 가려면, 금요일 저녁에 반차를 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에릭 사촌네 결혼식은 노스 캐롤라이나에 있는 애쉬빌이라는 곳에서 했는데, 위에 적었듯이 우리 집에서 차로 15시간 거리였다. 비행기도 직항 없음. 게다가 그 주변에 사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ㅋㅋㅋ 100여 명이나 되는 시가네 가족들 전부 비행기 타거나 12시간 넘게 차로 운전해서 결혼식에 참석했다.
물론 같은 동네에서 결혼을 한다면 한 반나절 일정이다. 얼마 전 우리 직장 동료네 결혼식은 차로 1시간 거리였다. 역시 토요일 4시 즈음에 결혼식이 시작했고, 밤 12시까지 파티하고 집에 왔다. 지금까지 참석했던 결혼식 중에 가장 시간이 적게 들었던 결혼식이었다. 휴~ 가까이서 하니 좋구만ㅋㅋ
이렇게 소중한 주말을 다 바쳐가며 누군가의 결혼식에 가는 만큼, 신랑 신부는 굉장히 하객에게 고마워한다. 에릭과 나는 결혼식은 한국에서 했지만, 피로연은 미국 시가네 동네에서 했다. 시가네는 진짜 쪼오그만 동네라서 주민이 5000명도 안 되는 시골 동네다. 가장 가까운 공항도 40분 거리ㅋㅋ 심지어 큰 공항도 아니라서 직항이 있는 곳은 아틀랜타나 시카고 정도뿐이다. 이렇게 멀다 보니, 우리 피로연에 오려면 일단 금요일에 비행기를 타고 공항에 도착하면, 또 차를 렌트를 해야 했다. 이렇게 먼 데 누가 과연 올까 싶었는데, 막상 캐나다 토론토, 워싱턴 DC, 텍사스 달라스, 뉴욕, 뉴 헤이븐 등지에서 나를 보러 친구들이 와 줬다. 진짜 눈물 나게 반갑고 너무너무 고마웠다.
이게 시간만 많이 걸리는 게 아니다. 가는 데 드는 비행기 값 (혹은 운전에 필요한 기름값 등), 2박 하는 숙박료 전부 본인 부담이다. 이번에 애쉬빌 결혼식 가는 데 비행기 값은 $300 정도였던 것 같고, 트레이시네 결혼식 가는 데 비행기 값은 한 $400 정도 들었다. 그리고 2박을 해야 하니까 호텔값 1박에 최소 $140은 됐다. 결혼식에서 저녁밥을 주지만, 그 외 식사는 알아서 해결해야 하니까 식비도 또 따로 든다. 게다가 축의 해야죠! 미국에서도 축의를 돈으로 하는 경우가 꽤 있더라. 요즘은 레지스트리를 인터넷으로 다 올려놔서, 축의를 인터넷에서 카드결제로 낼 수 있다. 그치만 어르신들은 카드 봉투에 돈이나 체크를 넣어서 축의금을 낸다. 내 피로연에 왔던 친구들은 대체로 $100을 냈다. 나도 친구네 결혼식에 가면 축의금으로 $100 정도를 낸다.
휴~ 그러니까 친구 결혼식 한 번 가려면 최소 $6-700은 든다. 그래서 난 결혼식에 간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냥 주말 맞이 휴가 가는 겸에 친구 결혼식도 간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맞는 말이다ㅋㅋ 주말 맞아 다른 동네 가서 맛있는 거 먹고 구경하고 그러다가 결혼식 갔다 오는 식이다.
물론 미국에서도 destination wedding이라고 칸쿤이나 하와이 등 휴양지에서 (연고지가 아닌) 결혼식을 하는 경우, 비행기 값이나 숙박비를 대 주는 경우가 있다고는 한다. 근데 그러려면 돈이 얼마나 많아야 하는 건지...? 훠우
아참, 그리고 하객들은 반드시 참석한다 안 한다를 대답 (RSVP) 해야 한다. 인원수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다. 답을 할 때 누구 한 명을 더 데리고 오느냐를 물어본다. 여기서 누구 한 명은 여자/남자 친구 혹은 배우자를 뜻한다. 가끔 아이들을 데리고 올 거냐고 묻기도 한다.
생각보다 결혼식 관련해서 다른 문화가 많다. 시리즈로 작성해보겠다.
다음 편 보기
https://brunch.co.kr/@ilovemypinktutu/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