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don calling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넘어가는 새벽까지 야근을 하고, 빠르기가 가히 KTX 수준인 택시를 타고 집으로 왔다. 열흘 전부터 펼쳐만 놓고 아무것도 넣지 못하고 있던 슈트케이스에 대강 짐을 구겨 넣고 잠시 눈을 붙였다. 그리고 토요일 오후 비행기를 타고 인천에서 출발했다. 비행기에서 밥을 두 번 먹고, 꾸역꾸역 라면도 한 번 챙겨 먹었다. 영화를 두 편 보았고, 내리 3시간을 푹- 잤다. 당장 나태 지옥에 끌려가더라도 불평 한 마디 못하고 벌을 받아야 할 정도로 한심한 시간을 보내며 10시간 넘게 날아왔는데도 아직 토요일이다. 아, 서울하고 시차가 9시간 났었지... 런던에서 지낼 곳은 4년 전에도 묵었던 레지던스 타입의 호텔이다. 한 번 왔던 곳이라서 그런지 공항에서 숙소까지 가는 길이 익숙했다. 길치인 주제에 단 한 번도 구글맵을 켤 필요가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이 익숙했다. 게다가 여행자들은 비싸서 거의 안 탄다는 히드로 익스프레스까지 타고 20분 만에 패딩턴 역에 도착하니, 진짜로 런던에 사는 돈 많은 미들 클래스 사람이 된 거 같아 유치하지만 어깨가 으쓱해진다.
호텔에 도착해 체크인하는 동안, 아무 말도 없는 상황이 어색해 4년 전에도 여기에서 묵었다는 시답잖은 이야기를 건넸다. 나 같은 히토미시리가 침묵이 어색해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다니- 평소 한국에서라면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강한 프렌치 악센트의 영어를 쓰는 리셉션 직원은 외국인 특유의 몸짓으로 호들갑스럽게 반가워한다. 내가 왔었던 4년 전에는 아직 학교에서 급식 먹고 있었을 거 같이 앳된 얼굴인데... 그들에게는 별 의미 없는 제스처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내 존재가 환영받았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당장 이틀 뒤인 월요일부터 플라워 스쿨 수업이 시작된다. 아침 10시부터 4시까지, 일주일 동안 수업을 들어야 한다. 집에서 플라워 스쿨까지는 걸어서 10분 거리이긴 하지만, 그래도 쉬고 싶다고 휴가까지 내고 런던까지 와서 매일 가야만 하는 곳이 있다니... 휴가를 온 게 아니라, 주말을 끝나고 다시 출근하는 기분이다. 어쨌든 우선은 좀 자자. 내일 점심 약속에 늦으면 안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