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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nee Jan 24. 2023

엄마의 까치발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엄마는 내가 일하는데 조금이라도 방해가 될까 두 통 이상의 부재중 전화는 잘 남기지 않는다. 그런 엄마가 그날따라 남긴 전화는 쌓여만 갔다. 회의 중이라 다시 전화하겠다는 메시지만 남겨두고 줌미팅에 집중하고 있는데 남편에게 메시지가 왔다. "외할머니 돌아가셨데. 장모님 많이 우셔. 걱정되니까 얼른 내려가자"


 카메라를 켠 채 회의 중이었어서 순식간에 붉어진 내 얼굴과 가빠진 호흡이 모니터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무슨 일이 있냐는 리더의 말에 외할머니의 부고를 전하고 회의를 종료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엄마에게 전화를 했는데 전화기 너머의 엄마는 엉엉 울면서도 "급하게 오지 마라. 내복 단단히 챙겨 입고 두꺼운 옷 입고 와라. 엄마도 명절 제사준비 얼추 해두고 갈 테니" 라는 말에 나는 또 화를 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또 그놈의 김 씨 집안 제사 이야기냐고. 항상 내가 뱉은 말을 후회하지만 덜컥 나가버리는 말들을 주워 담기가 힘들다. 설날이니 맏며느리인 본인이 하지 않으면 누가 하냐는 말에 화나지 않을 딸이 있겠냐마는.


 나는 평생에 외조부모님을 본 날이 손에 꼽는다. 유교문화가 강한(진짜 유교인지 모르겠지만) 경상북도에 시집온 엄마는 명절에도 맘 편히 외가에 가본 날이 없다. 그래서 내가 운전을 하게 된 뒤로는 엄마를 모시고 항상 외가에 가려고 노력을 했었다. 하지만 내 상황과 달리 풍족하던 집이 어려워진 시기였고, 아빠의 죄스러운 마음과 부끄러움 때문에 무거워진 엄마의 마음은 외할머니에게 쉽사리 발걸음하기 어려웠나보다. 그래도 내가 모시고 갔었어야 했는데. 이제와서 후회하며 흘린 슬픈 눈물을 잠시 진정시키고 외할머니가 계신 하동으로 향했다. 좁은 땅에서 마음만 먹으면 달릴 수 있는 이 길을 가는 게 왜 이리 어려웠을까.  


 분향소에 도착하니 엄마의 얼굴은 부어있었지만 무너져 울지 않는 모습이 대견하기까지 했다.

분향소의 식사는 재첩국이었다. 외갓집에 가면 항상 외할머니는 재첩국을 주셨는데, 깨끗하고 맑은 섬진강가에서 잡으신 거라며 쉽게 보기 힘든 귀한 손주들이 올 때마다 아낌없이 내주셨다. 나는 맑고 시원한 재첩국을 유난히 좋아했는데 역시나 맛있다고 느끼는 내 자신에게 화가 나기도 하고 외할머니가 그리워 어쩔 줄 모르는 감정이 일었다.

 엄마는 이 와중에 친할머니가 고모에게 전화해 라면을 먹었다고 했다며, 노인이 라면을 먹어서 걱정이라고 했고, 나는 또 내가 엄마처럼 굴면 안 서운하겠냐고 여기 외할머니 장례식장인데 친할머니 끼니 걱정해야 되겠냐며 미운소리부터 앞섰다. 씩 웃고 마는 엄마는 평생을 그렇게 살았다.


이모 삼촌들 앞에서는 몰라도 내 앞에서는 꽤나 담담하게 장례를 치른 엄마는, 할머니를 발인장소로 모시고 갈 때에도 우리가 서울로 올라가는 길만 걱정하고 있었다. 엄마도 슬프지만 담담한 마음인 걸까.


발인 전 고인에게 드리는 마지막 말을 전하는 시간이 주어졌다.

첫째 이모는 말이 없었고, 외할머니에게 정말 잘했던 둘째 이모는 내내 울었다.

칠 남매 중 셋째인 우리 엄마 차례가 왔고, 엄마는 그제야 눈물을 참느라 숨이 넘어갈 지경인 모습을 보였다.

그냥 울지 참고 있는 엄마가 안타까운 생각이 들 때쯤 엄마가 노잣돈과 함께 울음을 토해내며 말했다.


"엄마. 내가 애들 키우며 먹고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시어머니 모신다는 핑계로 엄마가 아픈데도 들러보지도 못했다. 우는 것조차 엄마랑 형제들한테 부끄러워서 참고 싶은데 참을 수도 울 수도 없다. 너무 미안하고 아버지 곁에서 편히 쉬어"


토해내듯 외할머니에게 전한 엄마의 말에 나는 돌아가신 외할머니보다 우리 엄마가 안타까워 눈물을 그칠 수가 없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하고 싶은 말을 전하는 엄마의 마음을 내가 감히 헤아릴 수 있을까.


 한 시간쯤 지나 외할머니는 작은 유골함으로 옮겨졌다.

유골함에 할머니를 모실 때 가족들에게 그 장면을 보여주는데, 엄마는 가까이 가보지도 못하고 뒷줄에 서서 입을 막고는 작은 키로 까치발만 힘껏 세웠다. 조금 앞으로 가면 될 것을 그조차도 바라지 못하는 엄마가 너무나도 안쓰러웠다.


유골함에 담긴 할머니를 모시고 장지로 가던 버스에서 엄마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사천바다에 눈을 떼지 못했다.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할머니를 할아버지 곁으로 고이 모시고, 엄마와도 오랜만에 본 이모 삼촌들과도 헤어질 시간이었다. 이제 할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다시는 못 볼 것 같은 사촌과 그들의 아이들에게도 조잘조잘 마지막 이야기들을 뱉어보며 아쉬움을 남겼다.


 장례가 끝난 뒤, 더없이 무뚝뚝해 술에 취하지 않고는 먼저 전화하는 일이 없던 경상도 출신의 우리 아빠는 엄마를 걱정하는 내 마음을 이해하듯 엄마랑 어디에서 뭘 먹었는지 어딜 가서 좋은 구경을 시켜주었는지 며칠 동안 전해주었다. 가까운 날 엄마에게 가봐야겠다.



할머니네 오래된 평상에 놓여있던 말린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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