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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nee Nov 24. 2016

라바북스 & 시스베이글

lababooks & sisbagel

 여행을 다닐 때 항상 그 동네의 작은 책방을 둘러보곤 했다. 거의 까막눈 수준인 일본에서도, 아예 하나도 읽을 줄 모르는 스페인에서도, 프라하에서도 그랬다. 책들이 쌓이면서 종이가 뿜어내는 냄새와 평일 낮에 즐길 수 있는 여유로운 햇빛을 동시에 느끼고 있노라면 진정 그 시간만은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 되는 기분이다.

아주 낯선 활자에도 반응하는데 하물며 한국에서의 작은 책방, 게다가 독립서점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고 고민 없이 오랜 시간을 보낸다. 그러고는 마음에 드는 책과 작은 엽서를 골라 마음을 채워준 공간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고 나오곤 했다.


 자주 다녀온 제주여행이기에 제주시 쪽에 있는 책방은 거의 다 다녔고, 서귀포는 늘 시간이 없거나 이런저런 핑계로 책방에 들리는 일을 게을리했었다. 이번 제주 여행에서도 서귀포 책방은 틀렸구나 하던 차에, 탑승 시간 4시간여를 남겨두고 서귀포에서 갈치 낚시를 꼭 하고 싶다는 아빠의 말에 그래, 온 김에 한 시간이라도 다녀오자 하고 차를 돌렸다.


  체력적으로 유난히 힘들었던 이번 여행 탓에 낚시를 하는 동안 나는 잠깐 커피를 마시겠노라 이야기하고 지도를 꺼내 주변을 보던 중, 꼭 가보고 싶던 라바북스가 근처에 있었다. 1km가 조금 넘는 거리여서, 데려다준다는 걸 만류하고 타박타박 산책하며 라바북스로 찾아가는 길에는 여우비가 내렸다. 라바북스 가는 길은 마침 제주도 올레길 5코스.


 산길을 따라 혹은 해안을 따라 걷는 코스는 아니었고, 동네길을 둘러가는 소박한 코스였다. 잠깐 내리던 비는 그치고 다시 맑은 하늘 :) 오래된 건물 1층에 덩그러니 깜찍한 느낌을 주는 라바북스와 시스베이글.

들어서자마자 만나는 입구의 풍경은 깨끗하고 여유롭다.

 책을 샀으니 담을 가방이 필요하단 핑계로 에코백 하나를 더 구매하고 나온 라바북스. 여기에서 하루 종일 일한다는 느낌은 어떨까. 출근하고 커피를 한 잔 내려마시고 잔잔한 음악을 틀어놓고, 쉬는 시간에는 놓인 책들 중 한 페이지를 무작위로 넘겨보기도 하고. 아마 판교에서 느끼는 치열함과 앞뒤 없이 날들과는 다름이겠지. 이런 공간이 있다는 건, 여행자들에게 참으로 소중하고 고마운 것이다.



 라바북스에서 한 발자국 옆으로 이동하면 시스베이글이 나온다. 원래 빵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도 하고(향기는 사랑한다.) 갈치구이와 밥 두그릇을 섭취한 탓에 아쉽지만 베이글은 도저히 못 먹겠고 가볍게 라떼를 한 잔 시켜보았다.

카페에 가볍에 내려앉은 틸란드시아가 활짝여보였다.


 손님이 별로 없어서 장사가 될까 싶었는데, 동네 주민들에게 사랑받는 가게인 듯했다. 잠시 앉아서 책을 읽는데 근처의 은행원들, 동네 아주머니들이 와서 "나 오늘은 아메리카노, 나 오늘은 라떼"하시며 서로 반갑게 인사하는 모습이 살가웠고, 대부분이 테이크아웃을 해갔다. 여행객들이 오기에 꽤나 번거로운 위치에 있어서인지, 내가 운이 좋았던 건지.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지만 자리는 앉아있는 내내 넉넉했고 소란스럽지 않았다.

주문하지 않은 토끼과자는 나를 설레게*-*

 펜을 빌렸더니, 밑에 있는 고무판과, 혹시 글씨를 틀릴 것을 염려해주신 건지, 종이 하나를 함께 올려주는 정성스러운 마음에 혼자 설레고, 반했던 시스베이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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